사임당의 비밀편지
신아연 지음 / 책과나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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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에서 신사임당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신사임당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라는 가면을 쓰고 한국은행에서 발행되는 5만원 지폐에 떡하니 새겨져있기 때문이다. 왜 5만원 지폐에 신사임당의 초상이 있어야만 할까? 오늘 우리에게 신사임당은 누구일까?

‘사임당의 비밀편지’는 현모양처라는 가면을 쓰고,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신사임당의 가면을 가차 없이 벗겨낸다. 아니 소설 속에서는 조선시대의 인선 즉 신사임당이 현대의 인선에게 나타나 자발적으로 자신의 가면을 벗는다. 자신은 현모일지언정, 양처는 결코 아니라고 말이다. 소설 속에서 인선은 자신이 결코 자신의 남편인 이원수를 잘 내조한 내조의 여왕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오히려 자신의 욕심과 냉랭함으로, 마음 약하고 온순하였던 남편을 과거 시험이라는 무저갱으로 내몬 건 아닌지 번뇌한다.

조선시대는 남자에게는 과거시험 합격만이 의미 있고, 여자에게는 다산만이 의미 있었던 시대다. 그런데 사람마다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다르고, 모든 남자가 공부를 잘하고 모든 여자가 출산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진데, 획일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조선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매우 숨 막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신사임당의 인생에서 역설적인 것은, 신사임당의 남편인 이원수는 공부에 의욕도 없었던 난봉꾼이었지만, 이원수의 아들인 이율곡은 과거시험에서 9번 장원급제하였던 조선의 천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율곡이 어머니 신사임당의 천재성을 물려받고, 지혜로운 양육의 결과로 조선의 천재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율곡이 물려받은 유전자의 절반은 그의 아버지 이원수의 것이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원수와 이율곡의 삶을 보면 ‘그 아버지와 전혀 다른 아들’이란 말이 더 적절할 듯하다.

신사임당은 외도하는 이원수에게 자신이 죽으면 절대 권가 여자와 재가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러나 이원수는 신사임당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그 말을 유언으로 하니깐, 신사임당 장례이후 권가 여자와 당당하게 재혼한다. 신사임당과 이원수는 살아서도 원수였지만, 죽어서도 원수였다. 이율곡은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아 한 때 공부에 의욕을 잃고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되기 위해 절에 들어간다. 이율곡에게 신사임당은 그가 닮아야 할 정면교사였지만, 이원수는 그가 닮아서는 안 되는 반면교사였을 것이다. 인생이란 예나 지금이나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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