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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눈이 보여 주는 것 - 문학, 질문하며 함께 읽기
홍종락 지음 / 비아토르 / 2022년 11월
평점 :

한때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더그라운드’의 집필을 위해 옴진리교 교인들을 직접 만난 적이 있었다. 옴진리교는 1984년 생성된 일본의 신흥종교단체로서, 1995년 3월 20일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하는 테러를 저지르면서 유명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옴진리교 교인들을 직접 만나고 당혹감을 느꼈다. 테러에 가담한 교인은 대개 이공 계열 출신의 엘리트였기 때문이었다. 소위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엘리트가 옴진리교에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한 가지 실마리를 찾았다. 그들은 일평생 소설을 즐겨 읽지 않았다. 소설을 읽으며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구별하는 안목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옴진리교라는 가상세계에 푹 빠져 교주의 노예가 되어 무차별 테러를 저질렀다. 소설을 읽었다면 쉽게 보이는 것들이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 2022년 11월에 비아토르라는 기독교 출판사에서 ‘악마의 눈이 보여 주는 것’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 책의 표지 그림 역시 독특했다. 커다란 악마의 손이 편지를 쓰는 듯한 표지 그림은 독특함을 넘어 기이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번역가 홍종락 선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악마의 눈이 보여 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홍종락 선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C. S. 루이스 전문 번역가이다. ‘악마의 눈이 보여 주는 것’은 C. S. 루이스의 대표작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담긴 중요한 통찰을 그 제목으로 삼은 것이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악마가 악마에게 보내는 편지로써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천사의 눈이 아니라 악마의 눈으로 인간의 내면을 투시할 수 있다.
‘악마의 눈이 보여 주는 것’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포함해 총 24편의 문학작품을 홍종락 선생이 직접 읽으며 느낀 점을 깊이 있게 소개한다. 책 소개 이후에는 ‘함께 읽고 나누기 위한 질문’이 수록되어 독자가 문학작품을 읽고 독서모임을 할 수 있도록 각별하게 신경 썼다. 총 24편의 문학작품 중에 C. S. 루이스의 작품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나니아 연대기’ 이렇게 3편이 소개되었다. C. S. 루이스 전문 번역가답게 홍종락 선생의 ‘나니아 연대기’ 소개는 군더더기 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니아 연대기’의 주인공인 아슬란을 ‘길들지 않는 사자’라고 설명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아슬란의 별명은 길들지 않는 사자다. 아슬란의 야성을 강조하는 이 별명은 그가 가진 자유와 주권을 강조한다.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나타나 자신의 방식대로 일하고 자신의 때에 사라진다. 아슬란을 길들이거나 그와 협상하여 원하는 것을 얻어 내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313쪽)
익히 알려진 것처럼 ‘나니아 연대기’의 아슬란은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길들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야성적 사랑으로 우리는 모두 십자가에서 구원받았다. 소설을 읽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소설을 읽으면 사람이 새롭게 보이고 성경이 새롭게 보인다. 영국의 소설가 체스터턴은 “좋은 소설은 주인공에 관한 진실을 들려주고, 나쁜 소설은 저자에 관한 진실을 들려준다”라고 말했다. ‘악마의 눈이 보여 주는 것’에 소개된 24편의 소설이 아마도 우리에게 주인공에 관한 진실을 들려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