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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유산 - 역사와 과학을 꿰는 교차 상상력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기획 / 동아시아 / 2021년 1월
평점 :
남의 떡이 커 보인다. 남의 나라 박물관의 유물은 위대해 보이고, 우리나라 박물관의 유물을 보면 초라해 보인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제국 박물관의 유물을 보기 위해 입장료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어쩌다가 국내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라 하면 안 가고 만다. 왜 우리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이렇게 홀대하는 것일까? 실제로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이 우리에게 홀대를 받을 만큼 하찮은 것일까?
나는 최근에 고려대학교 공과대학이 기획하고 '동아시아아'에서 출판된 '첨단X유산'을 읽으며 우리의 문화유산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해 반성했다. 그저 남의 나라 유물 귀한 줄만 알았지, 우리의 문화유산이 이토록 값어치 있는 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첨단X유산'은 현재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동궐도, 고려청자, 조선백자, 사인검, 보성관, 대동여지도, 수선전도, 오마패, 혼천시계, 태항아리 등을 첨단 과학기술로 재조명하는 책이다. 이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장은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특강과 첨단 과학기술을 소개하는 특강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총 20개의 특강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나는 여태껏 여러 명의 저자가 공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아무래도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책을 쓰다 보면 글의 수준이 고르지 못할 때가 많았다. 놀랍게도 이 책은 저자들의 학식과 수준이 높아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글이 상향 평준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인문학자들과 공학자들의 콜라보로 만들어졌다. 만약에 인문학자들만이 모여서 이 책을 만들었다면 지금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아마도 어려운 역사책을 읽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흥미롭게도 이 책에서 공학자들이 과거의 유물을 드론, 디스플레이, 리소그래피, 기가스틸,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5G, 양자통신, 바이오기술 등과 연결해서 소개하니깐 박물관이 죽어있지 않고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과거의 유물을 그저 과거의 유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바로 우리를 위한 유물로 생각하고 참신하게 접근할 때 비로소 우리의 교차 상상력이 극대화되는 것 같다. 고려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조명철 교수는 이 책의 닫는 글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이번 콜라보는 우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 새로운 관점, 엉뚱한 상상력 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우리 민족의 유산이 당대 최고의 수준에 이르는 데에는 인문학적 창조력이 요구되었고, 이는 지금의 첨단기술이 발전하는 과정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문학적 창조력은 천재적인 개인 또는 집단으로 하여금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당대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유산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384쪽)
국보급의 문화유산은 당대 최고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기술력이 결합될 때 비로소 탄생한다. 과거의 선조들이 국보급 문화유산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적당한 수준에서 안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름다운 비색을 내기 위해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았다면 도공에 의해 고려청자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확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수천 번 혹은 수만 번 지도를 수정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대동여지도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국보급의 문화유산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기술력 말고도 최고의 장인정신을 필요한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 우리의 후손들이 2020년대를 바라봤을 때, 선조 된 자로서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문화유산을 남겨줄 수 있을까? 나도 우리의 선조들처럼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남겨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값진 인생일까?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선조가 아니라, 가치 있는 문화유산을 물려주는 선조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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