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들 - 허용오차 제로를 향한 집요하고 위대한 도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누구라도 사이먼 윈체스터의 '완벽주의자들'(The Perfectionists)라는 책 제목을 보면, 심리적인 차원에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은 심리적인 차원의 완벽주의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영역에서 고도의 정밀성을 추구한 완벽주의자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이먼 윈체스터는 영국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유명한데, '완벽주의자들'이란 신간을 통해 그의 깊고도 넓은 지식 세계를 독자는 만날 수 있다.

'완벽주의자들'은 전체 400쪽이 훌쩍 넘고 10장으로 나누어진 두툼한 책이다. 과학기술의 역사에 평소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려가기가 쉽지 않겠지만, 책 읽기를 포기하고 싶다는 욕구를 내려놓고 이 책을 완독하다 보면 정밀성의 역사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를 얻을 수 있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정밀성의 역사에서 네 가지 사실을 새로 배울 수 있었다.

먼저, 발명가의 특허권을 보장하는 사회제도가 정밀성 향상의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사실이다. 즉 저작권이나 특허권처럼 발명가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독점적으로 보장해 주는 제도가 없이는 정밀성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밀성의 향상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사람들은 정밀성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제임스 와트는 실험을 하고 시제품을 만들고 시연을 하고 기금을 마련하는 데 꼬박 10년을 썼으며 신속하게 특허'1769년 1월 913호'를 취득했다. 특허권 명칭은 '화력 엔진의 증기와 연료 소비를 감소하는, 새로 발명한 방법'이었다. 겸손한 제목 때문에 이 발명품의 중요성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완성이 되면 그것은 다음 세기와 그 이상으로 먼 미래까지 영국과 전 세계의 모든 공장, 주조소, 교통 시스템의 핵심 동력원이 될 터였다." (67쪽)

그다음으로, 정밀성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실은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결국 공간을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시간의 지배자가 공간의 지배자가 된다는 사실은 인간의 시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해리슨 시계들이 대단히 중요한 이유는 또 있었다. 이 시계와 뒤이어 등장한 시계들 덕분에 선박들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효율적으로 정확하고 정밀하게 항해를 계획할 수 있었고 큰 무역 이익을 냈다. 또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지만, 해리슨 시계가 영국에서 발명되었고 뒤이어 나온 시계들이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덕분에 전성기의 영국이 한 세기 이상 세계 바다의 통치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정밀한 시계가 정밀한 항해를 가능하게 했고 정밀한 항해는 해양 지식, 통치, 권력을 창출했다." (50쪽)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사람들은 시간의 중요성을 더욱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시간이 밝기, 길이, 무게의 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정밀한 시간 측정이 만물의 척도임을 밝혀냈다.

"이제 과학은 정밀한 시간 측정이라는 희귀한 세계로 접어들었고 이상한 시간 측정에 돈과 장비와 인력을 쏟아붓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계측학자들이 시간이 모든 것을 관할한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중력까지 포함된다." (432쪽)

정밀성의 역사에서 또 기억해야 할 사실은 고도의 정밀성을 요구하는 항공, 우주 분야에서는 사소한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나사(NASA)에서 우주로 보낸 허블 망원경이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을 찍어서 나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사건과도 밀접하게 관련 있다.

"결과는, 계측 막대의 작은 오류와 그에 따라 영점 보정기에 생긴 오류가 주경의 형태를 측정할 때 변화를 일으켜서 거울 가장자리를 2.2미크론만큼 평평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그 유명한 사람 머리카락 두께 50분의 1이 설계에서 달라졌다. 문자 그대로 미미한 실수였지만 1990년 여름 우주에서 보내온 이미지들을 완전히 쓸모없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고 허블 망원경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307쪽)

마지막으로 정밀성의 역사에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정밀성에는 한계가 있고, 그 끝에는 불확실성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하이젠베르크의 양자 역학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 고도의 확실성을 추구한 인류가 그 끝에서 불확실성을 만났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혹은 정밀성이 치수를 가공하거나 계측하지 못하는 한계에 접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가 아니라, 기술이 더 작은 부분을 향하면서 사물의 본성이 애매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1920년대 양자 역학 개념을 선도한 독일의 이론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이것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현상들을 발견하고 수치를 제시했다. 미세 입자와 미세한 허용 오차를 다룰 때는 정밀한 측정의 일반적인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원자나 그 비슷한 수준에서 고체는 불가능한 개념이 된다. 물질은 그 자체로 식별할 수 없고 측정할 수 없는 파동이나 입자가 되어 심지어 가장 영민한 사람들조차 막연하게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270쪽)

이렇게 과학기술의 발전을 견인한 정밀성을 향한 열정은 여전히 이 세상에 계속되고 있다. 필자와 같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밀성의 향상에 눈곱만큼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없겠지만, 정밀성의 향상으로 우리의 일상이 더욱더 편리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조금 더 정밀하게, 조금 더 정확하게, 조금 더 완벽하게 하기 위해 노력한 인류가 과연 앞으로 이 우주에서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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