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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학자의 눈에 비친 두 얼굴의 한국어 존대법
김미경 지음 / 소명출판 / 2020년 1월
평점 :
2016년에 나는 인도에서 외국인 신학생들과 선교 프로그램을 7주 정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신학생들은 다양한 지역에서 참석했기 때문에 프로그램 내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야만 했다. 그런데 나는 그들과 영어로 소통하면서 한 가지 어려운 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교수를 ‘교수님’이 아닌 그의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교수의 이름이 이삭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이삭 교수’님 이렇게 호칭해야 하건만, 영어에서는 그냥 ‘이삭’이었다. 나는 그를 ‘교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삭’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나 어색했다. 그러나 한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신학생들은 그 교수를 향해 ‘이삭’이라 부르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영어에 적합한 마인드가 먼저 내면에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은 바로 수직적, 위계적 마인드가 아닌 수평적, 민주적 마인드였다. 상대방과 내가 계급장을 떼고 서로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는 수평적, 민주적 마인드가 갖추어지지 않는 한 아무리 영어 단어를 많이 외우고, 부드러운 발음을 구사해도, 영어회화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영문학자인 김미경 박사는 ‘두 얼굴의 한국어 존대법’에서 한국어가 가진 존대법이 한국인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한국어 존대법은 지금과 같은 수평적, 민주적 사회에 걸림돌이 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어의 존대법 때문에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번역하는 데 생기는 그 미묘한 딜레마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을 반말로 번역해도 문제가 생기고, 존댓말로 번역해도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독일어, 영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어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예수 존대법은 단순한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신앙관의 문제이자 인간관의 문제이다. 존대법은 사람 간에는 높낮이가 있다는 기본 가정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2000년 전 예수는 자신의 높낮이를 백성과 비교하지 않았다. 예수에게는 그런 생각 자체가 없었다. 한국어 존대법은 예수가 성경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만민평등사상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이것이 한국어 성경을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81쪽)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는 원래 존대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예수님이 스승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적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존대하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어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하대하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존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이 한국어 성경에 나타난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의 예수님이 실제 예수님의 모습과 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의 많은 성경학자들이 다양한 번역 방식을 제시했지만, 아직까지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번역 방식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당분간 성경에서 반말을 하는 예수님을 주로 만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존댓말을 하는지, 혹은 반말을 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을 얼마나 존중하며 말을 하는 지 일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상대방이 정중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 차가운 분노가 실려 있음을 느낄 때가 있고, 상대방이 반말로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 따뜻한 사랑이 담겨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한 경어법에서 자유롭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경어법의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상대방에게 사랑을 담아 말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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