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지식문화사 - 세상 모든 지식의 자리, 6000년의 시간을 걷다
윤희윤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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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없으면 신은 침묵하고, 정의는 잠자며, 자연과학은 정체되고, 철학은 불구가 되고, 문학은 벙어리가 되며, 모든 것은 키메리안의 어둠 속에 묻힌다." (바르톨리니)

덴마크 의사 바르톨리니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윤희윤 교수의 '도서관 지식문화사'는 책의 어느 한 쪽도 버릴 부분이 없는 참으로 알찬 책이다. 이 책은 일단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도서관에 자주 가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고, 혹시 책을 사랑하지 않고, 도서관에 자주 가지도 않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 도서관을 바라보는 관점이 새롭게 바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놀랄 수 있다. 첫 번째로 독자는 아마도 이 책의 깊이에 놀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도서관의 역사를 다루며 신아시리아 제국(기원전 934~609년)의 아슈르바니팔 왕립 도서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구약성경에 '앗수르'라고 등장하는 신앗시리아 제국에 이러한 도서관이 있는 지도 몰랐는데 저자는 이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이 그 당시 신전 도서관, 왕립 도서관, 개인 도서관으로서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세계를 호령한 신앗시리아 제국뿐 아니라 바벨론, 이집트, 그리스, 로마와 같은 제국들은 모두 그 당시 세계 최고의 도서관을 각각 소유하였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세계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도서관이 국력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책과 도서관을 하찮게 여긴 나라치고, 오래 간 나라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독자는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의 넓이에 놀랄 것이다. 아무래도 공공 도서관의 역사는 동양보다는 서양의 역사가 훨씬 더 길기에 도서관의 역사를 쓰다 보면 불가피하게 서양의 역사 특히 서구 유럽의 역사에 지면을 많이 할애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 서구 유럽 중심의 도서관사를 탈피하고자 노력하며 이슬람 지역과 동아시아 지역의 도서관 역사를 이 책에서 많이 소개한다. 만약 이 책에서 이슬람 지역의 도서관 역사를 서술하지 않았다면 나는 과거 이슬람교가 얼마나 책을 숭상하고 도서관을 통해 지식과 지혜를 잘 보존하는 문화를 가졌는지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자칫 서구 유럽 일변도의 도서관사를 탈피하고자 이 책에서 최대한 넓게 다양한 지역과 나라의 도서관 역사를 다루고자 애썼다.

마지막으로 독자는 한국도서관의 현주소에 대한 저자의 비판에 많은 부분 공감할 것이다. 부천으로 최근에 이사 오고 나서 나는 집 근처 역곡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 역곡도서관은 원미산 기슭에 지어진 신축 도서관으로서 깔끔한 외관과 쾌적한 내관을 자랑한다. 그런데 하드웨어로서의 역곡도서관은 나무랄 데 없지만, 소프트웨어로서의 역곡도서관은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역곡도서관이 아무리 신축이어도 결국 그곳을 이용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준비하는 '시험'의 종류는 다양하다. 대학생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공시생은 공무원시험, 취준생은 취업준비 등 '시험'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 사람들이 앉아있는 책상을 지나가면 이곳이 도서관이라기보다는 그저 노량진 입시학원의 독서실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내가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며 느끼는 이러한 문제의식은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 한다.

"한국 공공도서관의 가장 큰 효용 가치는 '수험생을 위한 독서실'이다. 현재 도서관 열람실은 독서실처럼 운영되고 있고, 문화프로그램은 주입식 교육으로 변질했다. 공공도서관의 의미가 책이 있는 문화 공간보다 대형 독서실이라는 느낌이 강하다라는 비판에 도서관계는 침묵한다. 게다가 도서관 스스로 민원의 온상인 독점형 일반열람실을 유지함으로써 도서관은 곧 취업 준비 장소임을 사회에 각인시킨다." (397쪽)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주로 시험을 준비하는 경향은 단지 역곡도서관의 문제는 아니다. 이는 내가 전에 거주했던 관악구의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관악도서관에 가보면 저자가 이 책에서 비판했던 것처럼 한 층 전체가 시험공부를 위한 독서실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시험을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일 자유롭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야말로 최고의 공부 장소 일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한국의 공공도서관이 시험 준비 장소로만 머무는 것은 처음 도서관이 건립되었을 때의 그 거창한 이념과 목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공공도서관은 앞으로도 이렇게 거대한 독서실로만 머무는데 만족할 것인가? 사람들이 책상 앞에서 건조하고 삭막하게 문제집만 푸는 도서관에서 역설적으로 책의 향기를 맡으며 책을 읽는 게 때때로 어색하게 느껴진다. 결국 공공도서관을 짓는 것은 공공기관의 몫이지만, 그것을 온전히 완성하는 것은 시민의 몫이라 할 수 있다. '도서관 지식문화사'를 다 읽었다고 해서 도서관에 대한 질문을 멈추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더 좋은 도서관, 더 온전한 도서관 그리고 더 아름다운 도서관은 시민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스스로 질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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