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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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F 소설을 읽은 게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정말로 오랜만에 김초엽 작가가 쓴 SF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었다. 김초엽 작가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했지만, 저자 소개를 잠깐 보니 그녀는 1993년 생으로서 포스텍화학과를 졸업하고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은 과학도라고 하였다. 그녀는 2017년에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했다. 저자의 작가로서의 경력은 짧지만, 과학도로서의 경력은 길어서인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된 7편의 단편소설 모두 심오한 과학지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단편소설집보다는 장편소설을 읽는 것을 더 선호하는 데 오랜만에 이 책을 통해 SF 소설을 읽는 재미와 단편소설집을 읽는 재미를 동시에 누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 책에 수록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 가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실제로 소설을 읽기 전까지 제목만 봐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지 상상이 안되었다. 특히 전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단편 소설은 과연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 제 소설을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었다.

막상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어보니 이 소설은 우주의 한계를 초월하는 따뜻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을 몇 광년 떨어진 행성으로 먼저 보내고 자신도 이후에 따라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 행성으로 갈 수 있는 대중교통편이 경제적인 이유로 폐쇄되고, 그녀는 200년 가까이 그곳에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대중교통으로도 가기 힘든 그곳을 자신의 고물 셔틀을 타고 출발하기로 결심했다. 아마도 그녀는 그 행성에 도달하지 못하고 셔틀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셔틀은 빛의 속도보다 훨씬 더 느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감내하는 것에 행복을 느낄 지 모른다. 그곳에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빛의 속도를 넘어서는 인간의 가족애를 감동적인 필체로 서술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SF 소설은 과학기술로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시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구상에서 시간은 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가지 않고, 공간은 너무 멀면 도달할 수 없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SF 소설에서 과학기술로 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이키고, 먼 거리를 짧은 시간에 도달하고, 인간의 죽음을 최대한 지연시키고자 하지만 실상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한계를 완전히 넘어서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된 단편소설을 하나하나씩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나의 감정은 아련함과 안타까움이었다. SF 소설은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쓰이지만, 동시에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문학 장르이기도 하다. 오래간만에 SF 소설다운 SF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앞으로 김초엽 작가의 더 성숙한 문학 행보를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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