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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원히 살아있네
장 도르메송 지음, 정미애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9월
평점 :
전무후무한 소설.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있었는지 놀라웠다. 이 소설의 저자인 프랑스의 장 도르메송이 92세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쓴 ‘나는 영원히 살아있네’는 인류의 역사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석기시대부터 시작해서 21세기까지의 역사를 때로는 간략하게 때로는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머릿속에 문득 떠올랐다. 움베르트 에코는 ‘장미의 이름’의 초반부에 중세시대의 학문적 논쟁이 얼마나 심오했는지 보여주기 위해 현대 독자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100쪽 넘게 묘사했다. 아마 독자들은 그 부분을 읽으면서 단 한 문장도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무지함을 탓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무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움베르트 에코가 너무 똑똑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영원히 살아있네’를 독자가 읽으면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역사적 인물을 무수하게 만날 것이다. 그럴 때 그들을 알지 못하는 자기 자신의 무지함을 탓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가 무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장 도르메송이 너무 똑똑하기 때문이다.
‘나는 영원히 살아있네’는 인류보편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특정 국가의 국민을 넘어 모든 국가의 국민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이 지나치게 한국사 중심으로 편향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한국사를 보편적인 세계사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를 보편적인 세계사에 비추어 볼 때 한국사의 역사적 가치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 세계보편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 우리의 역사의식을 세계적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역사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보편적이며 전체적인 나, 자유와 필연성 사이에 존재하는 나는 아름다움도, 정의도, 진리도 아니다. 나는 역사이다. 나는 배은망덕했고, 정의롭지 못했고, 단편적이었으며 거짓말을 일삼았고, 폭력적이었고, 잔인하기까지 했다. 그 수많은 긴 소설 같은 장들을 얼마나 지우고 싶은지! 나는 당신의 위대함과 형편없음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311쪽)
장 도르메송은 역사가 정의도, 진리도 아니라고 말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 안에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지만 수치스럽고 지워버리고 싶은 역사도 있다. 인류의 역사가 위대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형편없는 이유는 역사를 만드는 인류 자체가 선함과 악함을 다 갖춘 이중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이중적이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이중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300쪽 남짓 되는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내가 이 소설을 절반정도라도 이해했는지 자신은 없다. 다만 나는 이 위대한 소설을 끝까지 읽은 것 자체로 만족하고 싶다. 앞으로도 이 소설을 넘는 역사 소설이 이 세상에 탄생하기란 참으로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