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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십자가
크리스토퍼 J. H. 라이트 지음, 박세혁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9년 9월
평점 :
십자가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국의 신학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십자가’라는 책을 통해 인류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인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주목한다. 이 책은 도서출판 CUP에서 지난 9월에 출판되었으며, 저자가 런던에 있는 올 소울스 교회에서 직접 설교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십자가’라는 책의 제목 그대로 이 책에는 사복음서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묘사하고 있는 본문을 바탕으로 총 다섯 개의 설교문이 실려 있다.
구약학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국내에서는 ‘하나님의 선교’, ‘현대를 위한 구약윤리’, ‘BST 에스겔 강해’와 같은 책들의 저자로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나는 구약학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어떻게 예수의 십자가에 대해서 이야기할지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처음에 펼쳤었다. 저자는 이 책을 시작하며 자신이 어떻게 다섯 개의 설교문을 썼는지 알려주는 개인적 논평을 덧붙였다. 이 다섯 편의 설교는 여러 해에 걸쳐 저자가 부활절 기간 중 올 소울스 교회 랭엄 플레이스에서 설교한 메시지다.
저자는 이 다섯 편의 설교를 전하며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제약이 있었다고 말했다. 첫 번째 제약은 성경 본문을 저자가 직접 선택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본문을 선택해 알려준 것이었다. 따라서 저자는 부활절 설교를 위해 성경 본문을 임의로 선택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제약은 올 소울스 교회의 설교는 대개 30분에서 35분 길이였기 때문에 저자는 매번 이 정도 분량으로 설교를 준비해야지 설교를 더 길게 하거나 더 짧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었다. 세 번째 제약은 올 소울스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은 이미 성숙한 기독교인이기에, 십자가에 관한 설교를 십자가의 피상적 이해가 아닌 심층적 이해를 돕는 방향으로 준비해야 했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제약을 충분히 인식하고 이 제약을 넘지 않는 선에서 다섯 편의 십자가 설교를 준비했다.
나는 이 책에서 두 번째 실린 ‘베드로의 부인’이라는 설교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저자는 마태복음 26장 본문에서 예수를 세 번 부인하는 베드로의 실패가 바로 우리의 실패이기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실패자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읽는 성경 자체가 인류역사의 실패를 다룬 실패의 책이라 강조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성경 전체가 인간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다. 성경은 그저 우리가 그다지 훌륭하지 않은 정도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사실 우리가 철저하고 끔찍하게 흠이 있다고 말한다. 죄는 우리 인간 본성 깊숙이 그 악을 침투시켰다.” (83쪽)
예수의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실패를 짊어지신 예수의 대속적 실패라 말할 수 있다. 예수는 실패하실 수 없고, 실패하실 이유가 없지만, 인간의 실패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실패자의 모양으로 죽으셨다. 실패자가 되신 예수만이 실패한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십자가’를 통해 절망을 넘어서는 희망, 어둠을 밝히는 빛이 오직 예수의 부활에 있음을 강조하며 독자를 십자가로 초대한다. 십자가를 향한 저자의 초대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