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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2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평점 :
한국에서 역사적 사실(fact)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fiction) 만드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김진명 작가가 새로운 한국형 팩션(faction)인 ‘직지, 아모르 마네트’를 집필했다. ‘직지’는 기본적으로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직지’를 이끄는 메인 스토리는 서울에서 벌어진 기괴한 살인사건의 범인을 중앙일보 기자와 서원대 교수가 유럽을 오가며 추격하는 일종의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다.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이 살인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 아니고 유럽인이고 그 끝에는 로마 교황청이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흥미롭다. 그런데 이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출판물인 ‘직지’의 비밀과 연관되어 죽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했다. 중앙일보 기자는 ‘직지’와 관련된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운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구상한다. 이 이야기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던 당시에 조선의 한 여인이 금속활자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유럽에 가게 되고 그 여인을 통해 구텐베르크가 서양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게 되었다는 게 ‘직지’의 숨겨진 스토리다. ‘직지’에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가지고 42행 성서를 출판하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 바로 쿠자누스라는 대학자다. 그는 조선에서 온 여인을 통해 세종대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글을 창제한 것에 큰 감명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그 정신을 이어 받아 유럽의 새로운 출판문화를 꽃피워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쿠자누스는 출판도시 마인츠를 관할하는 에어바하 선제후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대리인 교황은 백성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대신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려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은 지식과 지혜를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이었음에도, 교황은 지식과 지혜를 꽁꽁 묶어두고 있습니다. 선제후께서는 어느 길을 가시렵니까? 그리스도의 길을 가시렵니까, 아니면 교황의 길을 가시렵니까?” (200쪽)
소설에서 쿠자누스는 그리스도의 길과 교황의 길을 대비한다. 그리스도의 길은 백성들을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하는 길이고, 교황의 길은 백성들을 거짓으로 억압하는 길이다. ‘직지’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알지 못하는 세종대왕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간 인물로 묘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는 교황을 예수 그리스도와 반대의 길을 걸어간 인물로 묘사한다. 세종대왕과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 백성을 지극히 사랑했던 ‘애민정신’의 왕이었다. 이렇게 ‘직지’는 중앙일보 기자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스토리가 전개된다. 소설에서 세종대왕과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시키는 저자의 상상력이 놀랍긴 하지만 소설에 비약이 있고 한국의 문화유산을 너무 치켜세우는 부분은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그동안 잘 조명되지 않는 출판업과 인쇄술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