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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시 - 외롭고 힘들고 배고픈 당신에게
정진아 엮음, 임상희 그림 / 나무생각 / 2019년 4월
평점 :
EBS 책 읽는 라디오에서는 평일 아침 11시마다 '시 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이 방송은 정애리 배우가 사회를 맡고 매일 그날의 시를 소개한다. 정진아 작가는 바로 이 '시 콘서트'의 방송 원고를 쓰는 작가로서, 방송 작가이자 동시 작가로서 글을 쓰며 살아간다. 정진아 작가가 엮은 '맛있는 시'는 2012년부터 '시 콘서트'에서 소개한 시들 중에서 음식과 관련된 시를 한 권으로 모은 시집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침이 고이고 마음이 따뜻해지며 눈가가 촉촉해진다. '맛있는 시'에 소개된 시들은 대부분 평범한 서민들이 먹는 일상 음식과 관련 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비빔밥, 순대국밥, 라면, 호박죽 등 누구라도 작은 추억을 한 가지씩 가지고 있는 일상 음식이 시의 소재가 되었다. 그래서 '맛있는 시'는 참으로 읽는 맛이 있는 시집이다. 딱딱하고 떫은 시는 단 한 편도 없고, 모두 다 목 넘김이 좋은 부드러운 시로 채워져있다. '맛있는 시'에 소개된 시 중에 정진아 작가 본인이 쓴 '라면의 힘'이란 시가 기억에 남았다.
라면의 힘
꼬불꼬불 산길
즉석 라면 배낭에 담고
성큼
아빠 발자국 따라
종종종
올라간다.
차오른 숨
힘 빠진 다리
배 속에서 꼬르륵
"아빠, 라면 먹고 싶어."
"산 꼭대기서 먹어야 더 맛있지."
올라간다
올라가
아빠 주먹만 한 라면이
헉헉 지친 나를
산꼭대기로 끌어올린다.
'라면의 힘'이란 시를 읽으며 문득 몇 년 전에 인도에서 잠깐 머물렀던 때가 떠오른다. 그 당시에 나는 인도에서 인도인들과 현지식을 50일가량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몇 주 동안 매일 카레만 먹다 보니 카레가 물려서 도저히 카레를 입에 넣기 싫은 순간이 찾아왔다. 그 당시 내가 진짜로 먹고 싶었던 건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도 콜카타의 큰 대형마트를 찾아가 혹시나 한국산 컵라면이 숨어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구석구석 마트를 뒤졌다. 결국 마트 구석진 곳에서 컵라면을 발견했다. 그러나 나는 그 컵라면의 뚜껑을 보고 절망했다. 그 컵라면에도 카레가 들어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컵라면을 사지 않고 다시 마트에 고스란히 납두었다. 나는 인도에 머물며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을 단 한 젓가락도 먹지 못했고 신라면 한 봉지만 얻을 수 있다면 10만 원이라도 줄 텐데라는 생각에 매일 입맛을 다셨다. 결국 50일이 지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분식집에 가서 가장 먼저 라면을 시켰다. 그 라면을 먹으며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외국에 장기 체류할 때는 꼭 라면을 챙겨가겠다고 말이다. 라면에는 힘이 있다. '맛있는 시'를 읽으며 옛날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잠시나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