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왠지 예민한 사람은 성격이 다소 까칠할 것 같은 선입견이 있다. 그런데 예민한 것과 까칠한 것은 조금 다르다. 예민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고 까칠한 것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즉각적으로 타인에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예민하지만 까칠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까칠하지만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예민함은 감각의 직관과 관련 있고, 까칠함은 내면의 인격과 관련 있다. 실상 예민함과 까칠함은 별개의 영역이다.
롤프 젤린이 쓴 <예민함이라는 무기>는 나처럼 까칠하지는 않지만 매우 예민한 사람을 위하여 쓴 책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매우 피곤했고, 자극적인 영상이나 시끄러운 음악을 듣는 것을 꺼렸다. 나는 가능하면 조용하고, 가능하면 잔잔한 영상과 음악을 찾아다녔다. 그 이유는 내가 어릴 적부터 예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자극을 더 많이, 더 강하게 받아들이며 맺고 끊는 것을 잘 못하고, 경계를 긋는 걸 힘들어한다. 그 결과 더 많은 자극들을 처리해야 하고, 자극들에 더 오래,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더 다그치고, 더 쉽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주변 세계를 위험하고 위압적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177p.
그런데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가장 말하고 싶었던 건 예민한 사람이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예민한 사람이 없으면 이 세상은 더 혼란스러워지고, 더 어두워지고, 더 지저분해진다. 예민한 사람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며,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사람이며,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걸 느끼는 사람이다. 따라서 예민한 사람 중에 깊은 영성을 가진 사람이 많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예민한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감정이입할 뿐 아니라, 나아가 영감이 뛰어나고 심지어 영안이 트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흔한 직관 정도로는 알 수 없을 것들까지 감지할 때가 많다. -202p.
날카로운 칼을 들고 다니기 위해서는 칼집이 필요하다. 칼집에 들어있지 않은 칼은 안전하지 않다. 그렇기에 예민함이라는 칼은 반드시 인격이라는 칼집에 담겨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예민함이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큰 상처를 입힌다. 본인이 예민하기에 힘든 사람이나, 주변에 예민한 사람이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예민함도 능력이다. 진리를 위해 더 예민해지고 더 예리해지자. 진리에 무뎌진 이 세상에는 여전히 예민한 사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