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영상관련 수업을 하는 교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문득 이런 질문을 하셨다. "문사철이 뭔지 아는사람?" 우연인지 뭔지, 마침 그 당시 바로 일주일전에 책을 통해 '문사철 600권은 읽어야 사람노릇을 할 수 있다' 라는 문장을 읽었던 나는, 벙쪄있는 아이들 사이로 당당하게 손을 들고 말했다. "문학, 역사, 철학입니다."
그러자 교수님이 흐믓해하시며 이렇게 물었다. "그렇지. 학생은 인문학에 대해 관심이 좀 있나?" .. 쏴 - 방금전까지만해도 교수님의 질문에 대답했다는 뿌듯함에 의기양양했던 나는, 곧 눈을 내리깔고는 기가 팍 죽어버리고 말았다. "뭐..쬐끔요"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을 읽은 이후, 나는 인문학공부를 해야겠다고 강하게 다짐했었다.
하지만 인문학이란 내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인지라.. 그 결심은 언제나 흐지부지.. 유야무야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문학책도 읽고, 철학책도 좀 보고, 역사책까지 가~~끔 보긴 하지만(역사랑 과학은 나의 아킬레스건이다-_ㅜ), 뭔가 깊이있는 인문학에 대한 갈증은 언제나 가시지가 않았던 것이다.
깊이 있는 인문학의 우선 과제 = 고전의 독파, 라는 생각으로 고전들을 몇 권 읽어보긴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나를 찾아오는것은 '깨달음' 의 기쁨보다는 '무지' 의 쓰라림뿐이었다. 카프카의 <심판>을 읽고 안심하는 찰나 넘을 수 없어뵈는 <성>이라는 작품이 발목을 잡았고,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과제를 핑계삼아 완독하고 자신감에 넘쳐 있기가 무섭게 맑스의 <자본론>이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다.('막'스베버와 '맑'스는 ㄱ 받침과 ㄺ의 받침의 차이만큼이나 내게는 건너기 힘든 강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막스베버가 쉬운건 또 아닌데;)
그렇게 인문학에 대한 한바탕 소동(?)이 끝난 뒤, 나는 어느새 다시 토익공부를 위해 토익책을 들고, 퍽퍽한 현실에 내게 위안을 주는 잠언형식의 글들을 읽었으며, 경제위기에 휩쓸리는 현실을 보며 손에 잡히는 대로 경제서적을 펼쳐 보고 있었다.
물론, 책이야 다 가치가 있어서 굳이 '인문학' 공부를 위한 '고전' 이 아니라한들, 가치가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요즘들어.. 다시금 슬며시 '인문학' 에 대한 부채가 고개를 드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건 최근에 읽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 자극이 된 것 같다.)
아직은 겨울인것만 같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올 2009년의 봄.
나는 그간 눌러놓기만 했던 그 인문학에 대한 부채를 조금씩 갚아가려고 한다. 아트 앤 스터디 강의를 신청해 볼까? 혹은 오늘부터 문 걸어 잠그고 고전을 하나하나씩 독파 해볼까. 방법은 그닥 떠오르지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공부에 열을 올려볼까 하는 기특한(?) 마음이다. 그 신호탄으로 방금 신청하고 온 고병권님의 특강이 당첨된다면 좋으련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