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 삶과 죽음에 대한 스피노자의 지혜
스티븐 내들러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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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해서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신 또는 자연뿐이다. 오직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 존재하고 행동하는 것은 신 또는 자연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연이 야기하는 것은 모두 자연의 본질적 힘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뿐 아니라 신 또는 자연 외에 신 또는 자연에게 행동을 강제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외부의 유한한 다른 사물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자극받아 변화하는 자연 속의 유한한 개체들은 자유로울 수도 자유롭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는 유한한 개체들의 자기 결정력이 클 수도 작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P57

다시 말해 자유는 전적으류 자신의 인식에 따라 행동하는지 아니면 외부 사물에 의해 생긴 감정이나 그런 우연적 경험으로 형성된 견해에 따라 행동하는지에 관한 문제다. 자유는 다양한 정도로 나타난다. 어떤 사람이 부적합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작용을 받는다. 그 부적합한 관념이 그의 선택을 좌우한다면, 그의 행동은 오직 자신의 본성에서만 비롯되지 않고 자신의 본성과 외부 원인들의 본성의 결합에서 비롯된다. 강렬한 신체적 쾌감을 주는 무언가를 좇는 일은 자신의 본성만큼 그 대상의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행동이 외부 사물로부터 자극받아 변화된 방식이 아닌 자신의 적합한 관념에 의해 결정된다면,그는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의 행동은 그의 본성 (자신의 적합한 관념에서 나오므로 틀림없이 존재의 지속을 위한 본성의 노력에 부합하고 유용하다. - P58

그러므로 사람은 적합한 관념이 정념, 즉 부적합한 관념보다 정서적으로 더 강력할 때 자유롭다. 그래야만 적합한 관념이 지배적 욕망과 행동의 결정 요인을 형성하고, 그제야 비로소 그의 본성에서 행동이 나오게 된다.

"본성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방식으로 본성에서 비롯되는 욕망은 그것이 적합한 관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파악되는 한 정신과 관련된 것들이다. 다른 욕망들은 정신이 사물을 부적합하게 파악하는 한에서만 정신과 관계가 있으며, 그것들의 힘과 성장은 반드시 인간의 힘이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사물의 힘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매우 불완전하게만 자유롭다. 심지어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유로울 때가 거의 없다. 대개 정념에 휘둘리며 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분을 좋게 할 만한 것들을 좇고 고통이나 불편함의 원인처럼 보이는 것들을 회피하므로 우리의 욕망은 너무나 자주 부적합한 관념, 즉 감각과 표상에서 비롯된 신념에 좌우된다. 인식을 추구하는 데 전념하여 적합한 관념을 상당히 획득한 사람들조차 언제나 적합한 관념에만 근거해 행동하지는 않는다. - P60

자유인이 향유하는 "정서를 지배하는 정신의 힘"은 정념을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없애거나 의지라고 부르는 상상의 능력에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념으로 작용하는 것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능력에 있다. 자유인은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 특히 연장된 사물인 자신의 신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지녔기 때문에 부적합한 관념들을 저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적합한 관념들의 원인을 이해하여 명석판명한 인식을 획득함으로써 오히려 능동적인 정서로 변화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유인은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인은 언제나 자신에게 진정으로 유용하다고 알고 있는 것에 근거하여 행동한다. 그는 이 세상의 선과 악을 알고 그것을 아주 잘 헤쳐 나간다. 스피노자가 처음 자유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 말했듯이 이성에 이끌려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바람에 순응하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을 행한다."
그러니 자유인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그의 행동이 일관되게 적합한 관념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자유인에게도 정념이나 부적합한 관념이 있지만, 그는 절대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자유인은 언제나 적합한 관념의 정서적 힘이 부적합한 관념의 그것보다 강하므로 그의 욕망은 항상 인식을 따른다. 이처럼 예외 없이 일관되게 이성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점이 바로 귀감이 되는 인간의 전형과, 대개는 이성의 지시를 따르지만 반드시 항상 그렇지만은 않은 평범한 사람 사이의 차이다.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은 "완전히 능동적"(이 말이 수동성이 아예 없다는 의미라면)이라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 결정한다‘의 진짜 의미는 그저 인간이 "외부 사물들의 일반적인 성질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찰된 자기 본성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도록 결정된다는 의미다."
궁극적으로 자유인의 자유는 신의 자유가 아니라 (우리는 신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신과 같은 자유다. 이것은 고유의 유한한 방식으로 신 또는 자연이 누리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자기 결정 능력과 유사하거나 그에 근접한 실제 인간을 위한 자기 결정 능력이다. - P78

"탁월한 모든 것은 어려운 만큼 드물다." 다른 무엇보다 자유인이 되는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품을 수 있는 최고의 바람은 더욱더 자유로워지는 것,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이성의 지배 아래서 존재를 지속하는 것, 그래서 자유인이라는 이상적이지만 완벽하게 인간적인 상태에 최대한 근접하는 것이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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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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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민족의 이민, 그중에서도 주로 동유럽 출신의 매우 가난한 유대인들이 독일 한복판으로 몰려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짐멜은 낯선 사람들의 개입이 원래 주민들의 이 재미있고 사교적인 즐거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했다. 그는 외국인들 속에서 산다는 것이 사회성을 억압한다면, 그들의 존재가 사회적 인식을 심화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낯선 이들의 도래는 원래 주민들이 자신들이 당연시해오던 가치들에 대해 재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P74

짐멜에게 사회성sociality이 갖는 미덕은 일상적인 인상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은 차원에서 작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는 사회성과 페어빈둥 Verbindung을 대비시켜 이 점을 설명한다. 페어빈둥은 한데 묶고, 다시 온전하게 만들고 치유한다는 의미의 독일어이다. 사회성은 상호간의 경험이 남긴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인식될 때 비극적인 의미를 띨 수 있다. 미국의 불운한 전쟁이 끝난 지 20년 뒤 하노이로 돌아온 미국인들에게 베트남인 택시 운전사가 한 말은 짐멜이 생각했던 것을 내게 상기시켜주었다. "우린 당신들을 잊지 않았소." 그는 단지 그렇게만 말함으로써 치유가 되는 말을 해주기보다는 단순히 고통스러운 관계를 인정했을 뿐이었다. 나와 동행한 지인은 현명하게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회성은 이 모든 것에 대해 타인에게 능동적으로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함께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성은 연대와 대비된다. - P75

개혁가들은 교육의 공백이나 가족생활의 관리, 주택 문제, 도시로 새로 진입하는 계층의 고립 같은 사회적 질문에 관심을 보였다. 사회적 좌파 진영의 공동체와 노동 조직가들은 이런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 바닥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이 점에서 그들은 연합주의 associationism라고 불리는 19세기의 유서 깊은 운동을 자신들의 운동의 뿌리로 삼았다. 현대의 풀뿌리 조직은 바로 그 연합주의에서 유래한다. 이 운동은 타인들과의 협력이라는 순수한 행동을 전략적 도구가 아니라 목적 자체로 강조했다. - P81

1900년까지 정치적 좌파와 사회적 좌파는 대략 이런 식으로 줄곧 이어진 경계선을 따라 나뉘었다. 이론적으로는 두 진영 모두 공동의 불의와 대적하고 있었으므로 함께 섞여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하향식과 상향식 노선 사이의 차이는 기질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분리가 현대에 우리에게 전해진 바에 따르면 그렇다. 그런 기질적 차이는 좌파 내부의 투쟁보다 더 넓은 나침반에 따라 움직인다.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 개혁가들 역시 외관상 이런 분리선을 경험했다. 요점 정리 형식으로 발언하는 정책 두뇌들로 채워진 싱크탱크들은 모두 옛날의 정치적 좌파의 정신을 물려받은 상속자이다. 때로는 상충하고 때로는 일관성이 없는 상이한 목소리들을 포용하는 풀뿌리 조직은 옛날의 사회적 좌파 정신의 상속자이다. 한쪽 길은 공유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변증법의 목표이다. 다른 길은 대화적 과정을 강조하는데, 여기서는 상호 교환이 어떤 결과물도 만들어내지 못할 수도있다. 한쪽 길을 따라가면 협력은 도구이고 수단이지만, 다른 쪽 길에서는 그것이 목표 그 자체이다. - P85

앨린스키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노조 조직가와 공동체 활동가가 각기 탄압받는 자들과 어울리는 방식의 차이였다. 그는 이 차이를 퉁명스럽게 설명한다. "알고 보니 노조 조직가들은 공동체 조직가로서의 실력은 없었다." 남 앞에 단합된 모습을 보이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밀실제휴의 습관 덕분에 도시의 이웃들 사이에서는 강력한 연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단합하여 투쟁하기‘라는 공식은 재고되어야 했다. 명료성과 정확성으로는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P94

애덤스는 차이와 참여의 문제에 놀랄 만큼 단순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즉 부모 노릇, 학교생활, 장보기 등 일상의 경험에 집중한 것이다. 그녀는 사회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정책의 공식이 아니라 일상적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이 점에서 그녀는 솔 앨린스키의 선구자였다. 연합 행동은 정책 공약 같은 결과물이 아니라 일상적 생활에 미치는 구체적 영향으로 시험되어야 한다. 일상의 경험을 이룬다라는 문제에서 직접 부딪히게 되는 협력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애덤스가 여기서 내놓은 대답 역시 앨린스키가 한 대답의 어머니 격이다. 애덤스가 세운 헐 하우스는 엄격한 교환이 아니라 느슨한 교환을 강조했으며, 비공식성을 장점으로 삼았다. - P97

공동체 조직가는 외국인이건 자본주의 게임에서 패한 사람들이건, 마비된 것 같은 기분에 빠진 빈민들을 공동체 활동에 참여시켜야 했다. 조작가는 수동적인 상태에 잠겨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기 위해 자본주의의 악덕을 극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직접적인 경험에 집중해야 했다. 큰 그림속에서만 상황을 보다 보면 열에 아홉은 참여해도 소용없다는 느낌이 더 깊이 새겨지게 된다.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만들기 위해 조직가가 헐 하우스의 영어 수업에서처럼 암묵적인 교전 규칙, 즉 교환을 위한 관례와 의례를 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시카고의 사회활동가이며 제인 애덤스의 문하생인 샬럿 타월Charlotte Towle은 직원들에게 격식 없음의 논리를 지침으로 제시했다. "돕기는 하되 지시하지 말라"는 지침은 제인 애덤스에서 솔 앨린스키에 이르는 공동체 조직의 전통을 요약해주는 말이다. 게다가 타월의 지침을 실행하려면 조직 자신이 격식 없음을 즐겨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연대감은 사교성sociability의 경험으로 바뀌는데, 이것이야말로 공동체 조직이 전통적으로 희망해온 것이다. - P98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격식 없음은 항상 무질서로 전락할 위험이 따른다. 또 이렇게 말하면 복지관의 복도와 방안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복지관 생활이 바깥 세상에서 누릴 삶의 지침이 되지 않고 그저 이따금씩 맛보는 좋은 경험에 그칠 위험도 있다. 공동체적 협력의 경우에는 대체로 이런 우려가 적중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좋은 경험은 되지만 삶의 방식은 아니다. 협력하니까 기분은 좋았지, 그래서 어쩌라고? 오늘날 공동체 조직의 대표적인 전문가인 마누엘 카스텔스Manuel Castells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솔 앨린스키와 그의 추종자들이 틀렸다고 지적한다. 공동체에서 연대의 결과는 어딘가에 연결되어야 한다. 행동은 구조를 필요로 하며, 지속 가능한 것이 되어야 한다. - P100

사회적으로 오웬은 움직이는 연대의식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을 구상하여, 작업장의 뿌리를 한 공동체에만 고정시키지 않으려 했다. 생산의 네트워크란 곧 노동이 이리저리 움직여 다닐 수 있다는 뜻이며, 노동의 내용이 실험에 의해 진화하고 변형되는 것처럼 작업장 내의 협력도 유연해져야 하며 이동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협력의 기술은 원래 노동자의 자아 속에 쌓여 여러 장소로 옮겨 다닐 수 있게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순회 연주자 스타일의 협력이다. 순회 연주자들은 구성원과 장소가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연주할 수 있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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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 삶과 죽음에 대한 스피노자의 지혜
스티븐 내들러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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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있는 모든 개물을 형성하는 능력의 유한한 일부를 스피노자는 코나투스(conatus)라 부르는데, 이는 추구, 경향, 노력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스피노자는 이것을 "활동 능력" 또는 개체의 "존재하려는 힘"이라고도 부른다. 각각의 유한한 사물에서 이 능력은 스스로를 그 사물로서 유지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 P34

인간에게 코나투스란 개인이 다하는 모든 노력의 근원에 자리하는 실천력을 의미한다. 성취하거나 획득하거나 피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인간이 욕망하고 행하는 것은 모두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자신의 능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노력에 의해 자기 본위로 추동된다. 코나투스는 자신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에 대한 혐오이자, 자신이 아는 한 자신의 행복을 증진하고 능력을 보존 및 증대하는 것들에 대한 욕망이다. 스피노자의 이론에서 이보다 인간의 행동을 추동하는 근본적인 동기는 없다. - P37

수동적 정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다른 정념들은 모두 이 세 가지 정서에서 파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수동적 정서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기쁨, 슬픔, 욕망이다. 기쁨(laetitia)은 "정신이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정념", 즉 개체 외부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의해 야기된 더 큰 활동 능력으로의 이행이다. 이것은 자신의 상태가 다른 사물에 의해 개선되었다는 느낌이다. 정신-신체의 복합체에서 기쁨에 상응하는 정서는 쾌감(titillatio)이다. 한편 슬픔(tristitia)은 "(정신이) 더 낮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정념"으로, 자신의 상태가 악화되었다는 느낌이다. 이에 상응하는 정신-신체의 정서는 누구나 예상하겠지만 바로 고통(dolores)이다. - P41

이 ‘완전한 인간‘은 우리가 필연적으로 도달하려고 애쓰는 인간 본성의 전형, 즉 최선의 삶의 방식의 모범으로서 <에티카>에서도 계속 살아 숨 쉰다. 하지만 그 이름은 다르다. 이제 그의 이름은 "자유인"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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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일 조직은 이렇게 일합니다 - 비즈니스 가치와 성장 마인드셋에 집중하는 핵심 애자일 원칙 28
스티브 매코널 지음, 백미진 옮김 / 인사이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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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영역 프로젝트를 다루는 데 유용한 모델은 OODA이다. ‘OODA‘는 관찰observe, 방향 설정Orient, 결정Decide, 실행Act 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OODA 루프‘로 설명된다.
OODA는 미 공군 대령 존 보이드가 공중전 결과에 불만을 가진 데서 유래했다. 그는 의사결정을 가속화하고, 적보다 빨리 결정을 내리며, 적의 의사결정을 무효화하는 방법으로 OODA 루프를 발명했다. OODA는 컨텍스트를 확립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작업을 수행하고, 결과를 관찰하여 이번 주기에서 배운 것을 다음 주기에 통합하는 체계적인 접근방식이다. - P31

프로젝트에서 ‘검토’와 ‘적용’을 어느 정도 사용하고 있는가? 언제, 어디에서 ‘검토’와 ‘적용’을 사용할 수 있는가?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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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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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란 ‘우리‘를 만드는 능력이자, 우리 속에서 생겨나는, 행동의 잠재적 가능성이다.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면, "행위하고 말하는사람들 사이의 잠재적 현상 공간인 공론 영역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함께 행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서 사람들이 흩어지는 순간 사라진다. 주인들은 ‘우리‘를 만들 줄 알았기에, 권력이 있고 지배할 수 있다. 반면 노예는 고립되어 있기에 무력하다. 노예는 기껏해야 주인들에게 폭력violence으로 맞설 수 있을 뿐이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의 기원에 있는 원초적 폭력은 이렇듯 주인들이 폴리스를 구성하고 노예를 그 바깥에 두는 순간, 폴리스의 경계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게 된다. - P39

역설적이지만, 사형의 이 같은 비가시화와 ‘인간화‘는 사형수가 벌거벗은 생명이 되었다는 징후로 해석할 수 있다. 감시와 처벌첫머리에서 미셀 푸코는 국왕 시해 음모자 다미앵의 처형 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사형수의 고통받는 신체를 통해 스스로를 과시하는 권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범죄자의 신체를 극단적으로 사물화함으로써 그의 인격을 모독하려는 권력의 광기는 본의 아니게, 그 범죄자가 여전히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다미앵의 사지를 찢으면서 권력은 그의 인격이 뿜어내는 힘ㅡ 베버가 카리스마라고 부른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다. 범죄 행위가 대담할수록 범죄자의 카리스마도 커지며, 그의 인격을 박탈하는 의례 또한 그만큼 화려해져야 하는 것이다. 현대의 사형제도는 이와 대조적으로, 범죄자를 격리된 장소로 끌고 가서 소수의 입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안락사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범죄자가 이미 사회 바깥에 있다는 생각은 그를 좀더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한 생명에 불과하기에, 그의 고통은 어떤 상징적인 가치도 갖지 않으며, 그에 대한 마지막 배려 역시 ‘동물 복지‘를 논할 때와 유사하게,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문제에 집중된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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