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비대면 외면 - 뉴노멀 시대,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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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력은 도구적인 역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한다. "도덕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모종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며, 그럴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 도덕적 판단은 본질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한계의 범위는 확장될 수 있다." - P167

시선을 통한 사회적 협동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나와 타인들이 지금 무언가를 함께 바라보거나 듣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가리켜 ‘공동 주의집중joint attention’이라고하는데, ‘어떤 대상이나 과제에 자신의 관심(초점)과 상대방의관심을 일치시키는 사회적 행위’를 말한다.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은 어떤 사물에 시선을 보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그쪽으로 유도할 수 있다. 반면, 아무리 똑똑한 개나 고양이도 주인이 보고 있는 것을 눈으로 따라가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어린 아기들조차 상대방이 시선을 향하는 대상으로 눈길을 보낸다. 그것을 시선 쫓기gaze following라고 한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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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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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분들의 돌봄 경험은 어떤 것인가요?
저는 의료인은 아니고, 돌봄활동을 하는 사회복지사도 아니고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돌봄의 현장을 경험하고 있어요. 개인적인 돌봄경험으로도 아픈 가족이 있지는 않아서 아이 둘을 키운 육아돌봄이 전부네요.
이 책은 스스로에게 어떤 돌봄의 경험을 했는지 기억을 뒤돌아보게도 하지만, 저처럼 앞으로의 돌봄의 경험이 어떨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상상을 더 많이 떠올리게 하더라고요.

#2. 죽음, 어쩌면 너무 오래 또는 멀리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잖아요. 모두 죽음을 맞이하니까요. 하지만 자신이든 혹은 가까운 누군가든 돌봄의 순간이 도래했을 때의 구체적 상상을 해본 적은 잘 없었던 것 같아요. 작은 돌봄이 필요한 순간부터 죽음까지는 아주 긴 과정이 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참 많은 사람들(의료인, 가족, 돌봄 종사자 등)이 관여하게 되는 데도요.
돌봄이 필요해지는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레이드(난이도? 등급?)이 있다면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걸 가장 지키고 싶은지, 어떤 자기 존중을 바라는지, 얼마만큼 고통을 견딜 수 있는지 변화하는 돌봄의 단계마다 스스로 생각하고 관여된 사람들과 협의하고 선택하는 일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3. 돌봄, 좋은 경험과 기억이 될 수 있을까?
돌봄이라고 하면 힘듦, 어려움, 아픔, 불확실, 독박, 절망, 고립 이런 단어만 먼저 떠오르잖아요. 돌봄이 성취감, 효능감, 즐거움을 느끼는 경험과 기억이 되는 날이 올까요?
공동체의 소속감이 가장 기본이지 않을까 싶어요. 나는, 우리는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돌봄이 필요한 순간부터 애도가 필요한 순간까지 내가 사는 곳에서 서로 나이들며 서로 돌보는 협력이 가능할 것 같거든요.
의료사협에서 병만 치료하지 않고, 노동영화제, 동네퀴어위크, 무지개학교, 사전연명의료의향서교육을 하는 이유, 울림돌봄사협이 돌봄서비스 제공만 하지 않고, 조합원들과 돌봄책모임을 하는 이유도 그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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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사 사회
송병기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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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둘러싼 이 ’양극화‘가 생애 말기 돌봄을 곤경에 빠뜨렸다. 환자 곁에서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회적 보상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다. 가뜩이나 옹색하고 시혜적으로 보이는 공적 돌봄을 받기 위해서 환자는 자신의 몸과 집의 비참함을 증명해야 한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환자는 집에 고립되거나, 군말 없이 요양원 또는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환자의 일상은 열악한 돌봄 노동조건에 따라 출렁인다. 이런 맥락을 제쳐두고 생애 말기 돌봄과 죽음을 다시 집으로 끌고 오자는 주장은 허망하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커뮤니티 케어‘가 특정한 기준으로 선정한 환자 집에 비대면 의료 기기를 설치하고, 문턱을 제거하고, 가끔 사회복지사나 의료인이 방문하는 사업은 아닌지 우려된다. 집에서 죽으면 ‘좋은 죽음(혹은 자연사)‘이고, 시설에서 죽으면 ‘나쁜 죽음(혹은 객사)‘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 존엄한 죽음은 집 그 자체가 아니라 공적 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에 달려 있다.
-집- - P26

질병이 빈곤으로 연결되고 빈곤이 질병으로 이어지기 쉬운 사회에서 보호자의 돌봄은 환자가 죽음(생물학적이든 사회적이든)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개인의 돌봄이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는 아찔한 현실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강조는 자칫 ‘환자에게서 손을 떼라‘는 의미로 이해될수 있다. 오히려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타인의 돌봄을 딛고 섰을 때 비로소 행사되는 것이다.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돌봄의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환자의 목소리가 공적으로 울려퍼지려면 ‘환자의 자율성‘만 강조할 게 아니라 그의 일상을 떠받치는 ‘돌봄‘을 정의롭고 평등한 방식으로 재배치해야 한다.
말기 의료결정은 선언적 가치, 의료 윤리, 소통 기술 등으로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병원의 운영체계, 한국의 의료 다양성, 의료진의 태도, 보호자의 돌봄, 가족 삶의 조건, 환자의 몸 상태 및 인식 등이 뒤얽혀 협상을 벌이는 ‘정치적 행위‘에 가까웠다. 요컨대 말기 의료결정은 환자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환자가 ‘언제까지’ 살 수 있는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었다. 환자, 보호자, 의료진은 저마다의 이유로 ‘죽음의 타이밍’을 고민했다. 죽음은 타이밍의 문제였다.
-말기 의료결정- - P115

정부의 방역 저편에 또 다른 형태의 생명과 죽음이 존재한다. 코로나19 사태에 가려진 죽음의 단위를 ‘복수(複數)로서의 죽음‘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이 단위는 죽음을 개별화하고 서사적인 방식으로 나타낸다. 사람들은 죽음도 삶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입장, 상황, 고인과의 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인식한다.
노환으로 임종하신 부모님,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자녀, 투병 생활 끝에 사망한 친구, 생활고로 자살한 이웃은 모두 다른 죽음이다. 이 단위를 통해서 주목할 점은 불평등한 삶의 조건과 죽음의 관계다. 언론보도로 접하는 빈곤사, 하청노동자 사망 사고, 아동학대 사망 사건,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 사망 사건 등을 떠올려볼 수 있다. 여기서 죽음은 지역, 학력, 연고, 시간, 나이, 성별, 직업, 노동조건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열악한 삶의 조건이 생명을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과정을 주시하게 된다.
‘복수로서의 죽음‘이란 단위로 나타낸 세계에서 만인에게 평등한 신성한 생명은 온데간데없다. 그 대신 불평등한 삶과 죽음이 어수선하게 엉켜 있는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독박 돌봄을 하던 보호자가 ‘간병 살인‘을 하게 될 때, 성폭력을 당한 여성이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어린이가 어른의 학대로 사망할 때 정부는 부랴부랴 미봉책을 내놓는다. 수많은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허술한 안전 관리, 위험의 외주화, 비정규직 체제, 초과 근무, ‘갑질 문화‘에 대해서 정부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코로나19- - P198

정부의 방역은 ‘평등한‘ 생명과 죽음을 선험적으로 전제하고 있지만, 오히려 현존하는 ‘불평등‘한 생명과 죽음을 가리고 더 악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죽음에 호들갑을 떨고, 다른 쪽에서는 죽음에 침묵하는 이 양극적 현실이 불평등한 삶의 조건과 사회의 생산방식, 그 해법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죽음의 두 가지 단위, 즉 ‘단수로서의 죽음‘과 ‘복수로서의 죽음‘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범주로 봐야 한다. 신성한 생명은 불평등한 삶의 조건을 엄밀하게 논의하고 개선할 때 비로소 지켜질수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말은 무엇이며, 생명이 신성하다는 말은 또 무엇인가? 오늘날 통용되는 생명과 죽음이란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혹은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 질문해야한다.
-코로나19- - P203

웰다잉이 강조될수록 ‘잘 죽기‘는 요원하다. 앞서 살펴봤듯이 웰다잉이 전제하는 ‘죽음‘은 연명의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명의료를 둘러싼 환자·보호자·의료진 간의 갈등 및 쟁점은 웰다잉이란 광의적 표현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한국의 기이한 의료체계, 빈약한 사회보장, 정의롭지 못한 돌봄의 배치에 대한 깊은 관심과 논의가 필요하다. 호스피스 확대, 왕진, 간병 급여화 같은 제도도 절실하다. 각 사안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검토해야 한다. 또 건강한 몸을 정상으로 여기고 아프고 취약한 몸에 낙인을 찍는 인식을 갱신해야 한다. 돌봄을 집에서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활동이나 시혜성 사업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문제, 즉 정치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좋은 죽음은 좋은 사회에 대한 고민과 분리될 수 없다.
-웰다잉-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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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몸과 타인들의 파티
카먼 마리아 마차도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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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성매매여성이 살해당한다. 그녀는 너무 지쳐서 유령이 되지 못한다.
분노: 성매매여성이 살해당한다. 그녀는 너무 화가 나서 유령이되지 못한다.
순수: 성매매여성이 살해당한다. 그녀는 너무 슬퍼서 유령이 되지 못한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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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몸과 타인들의 파티
카먼 마리아 마차도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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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벤슨은 이제 종소리를 아주 잘 해석할 수 있다. 소녀들이 울리는 신호와 그녀의 이해 사이에 시간차가 발생하지 않는다. 벤슨은 베개로 얼굴을 덮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때까지꽉 끌어당긴다. 우리에게 목소리를 줘. 우리에게 목소리를 줘. 우리에게 목소리를 줘. 그에게 말해. 그에게 말해. 그에게 말해. 우릴 찾아줘. 우릴 찾아줘. 우릴 찾아줘. 제발. 제발 제발.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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