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 비비르 비엔, 탈성장, 커먼즈, 생태여성주의, 어머니지구의 권리, 탈세계화, 상호보완성
파블로 솔론 외 지음, 김신양 외 옮김 / 착한책가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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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맥락이 없는 유일한 텍스트다. 다른 모든 것은 우주의 맥락속에서 조망되어야 한다. 우주의 이야기는 우주 속 각 개별 존재의 이야기이며, 따라서 우주의 여정(영원한 변화, 끊임없는 생성)은 우주 속 각 개별 존재의 여정이다. 우리는 우주의 이야기를 나무에서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우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람은 그저 상상으로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는 모든 곳에 흔적을 남기며, 그 이야기를 아는 게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그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당신은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것이며, 결국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Berry, 1999) - P164

‘지구법‘이라는 용어는 현대 법학이 인간중심주의적 틀을 극복해야함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야생법은 전체의 다른 두 부분을 함께보고 균형을 잡으려는 운동의 주창자들이 가진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코막 컬리넌은 야생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야생법‘이 넌센스처럼 모순되는 말로 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법이란 결국 구속하고, 제약하며, 규제하고, 교화하기 위한 것이다. 법의 규칙들은, 무력으로 뒷받침되면서, 인간 행동의 야생성을 자르고 가지치고 다듬어서 깔끔하게 손질된 잔디밭과 인공 정원의 관목숲으로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야생‘은 한편으로는 헝클어진, 야만적인, 정리되지 않은, 문명화되지 않은, 제약되지 않는, 제멋대로인, 질서 없는, 규칙 없는, 다루기 어려운, 전통적이지 않은, 규율되지 않는, 열정적인, 폭력적인, 다듬어지지 않은, 그리고 시끌벅적한 것과 동의어다. 그리고 야생법은 인간 행동이 지구와 지상의 모든 종들의 온전한 상태를 보호하도록 규제하는 법이다. 이렇게 되려면 인간이 자연 세계와 갖는 관계를 착취자에서 다른 존재들과 민주적으로 공존하는 자로 바뀌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지구공동체의 일원이고자 한다면, 당신의 권리는 지구, 동물, 강과 생태계의 권리와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 야생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파괴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자연 세계 착취는 불법이 될 것이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생태계의 기능을 파괴하거나 다른 종들을 멸종으로 내모는 것이 금지될 것이다." (Cullinan, 2011) - P165

어떤 살아있는 존재도 스스로 양분이 될 수 없다. 지구공동체의 각 구성요소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공동체의 다른 모든 성원들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의존한다. - P169

토머스 베리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상상력의 상실과 자연의 상실은 동일한 것이다. 하나를 잃는다면 다른 하나도 잃게 된다." 같은 선상에서 코막 컬리넌은 어머니지구의 권리 운동의 목표는 "획일성을 부여하기보다는 창조적 다양성을 고양"하고 "다양한 비전통적 접근이 태어나고 자라며 흐르다가 사멸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Cullinan, 2011). - P183

탈세계화라는 말을 처음 고안한 것은 월든 벨로와 남반구 포커스 Focuson the Global South이다. 그들의 목적은 지구적 경제로부터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경제와 국민경제가 약화되지 않고 강화되도록 세계 경제와 정치 체제의 구조를 바꾸도록 촉발하는 것이다(Bello, 2005). 탈세계화는 민중과 국가들의 의사결정 역량을 빼앗아가는 자본의 논리와 이른바 경제적 합리성에 지배되는 통합 과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탈세계화한다는 것은 민중, 국민, 지역공동체와 생태계의 필요에 바탕을 두고 세계의 통합 과정을 구상하고 건설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뜻한다. - P186

탈세계화 과정의 핵심은 모든 단위에서 관용과 수용과 연대를진작하는 일이다.
따라서 탈세계화를 이루려면 지구 시스템과 우리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탈세계화는 자연의 한계와 생명 순환에 대한 인식과 존중을 수반한다. 이는 지구가 우리의 집이며, 우리가 이미 겪고 있는 생태적 불균형을 심화시킬 경제적, 지정학적 또는 기술적 활동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함을 의미한다. 탈세계화를 위해서는 지구시스템이 국가나 민족의 이해보다 위에 있음을 전제로 해야 한다. 결국 탈세계화는 우리가 경제를 탈탄소화하고, 산림 파괴와 생물다양성 파괴를 멈추고, 물을 관리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보존할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자연과 인적 자원을 더 많이 착취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촉진하는 자본주의와 반대로, 탈세계화는 전체로 통합되는 과정 속에서 인간관 자연 둘 다에게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 P202

탈세계화는 모든 정치적·경제적 결정들이 문제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정치 단위 수준에서 채택되어야 함을 확인하는 보완성의 원칙principle of subsidiarity*을 기본으로 한다. 지역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고 의사결정의 결과를 가장 먼저 감내하게 될 이들이 가장 먼저 의견을 내고 자신들의 입장을 말해야 한다. 지역 범위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 결정은 근본적으로 지역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 의사결정 권력은 정말 불가피할 때에만 국가적, 광역적 또는 지구적 수준으로 이양되어야 한다. 탈세계화는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이룩할 수 없다. 전략적인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결정들은 가능한한 가장 광범위하고 민주적인 참여로 이루어져야 하며 시장이나 국가기술관료들이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 P203

탈세계화는 농업, 제조업, 커뮤니케이션, 정보기술의 영역에서 발전하고 있는 다양한 유형의 공동체에서 쌓인 경험에 기반한다. 탈세계화에 있어 세계화의 대안은 아직 오지 않은 무엇이 아니라, 사회에 이미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기획들이다. 하지만 월든 벨로가 말하듯, "시장체제는 거대한 초국적기업들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이러한 대안들 중 다수는 스스로를 지탱하거나 원래의 목적을 지켜가는 데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어왔다." (Bello, 2013) - P205

민중이 현재와 미래에 자신들의 역량을 보장받고 효과적인 참여를 하는지가 진보의 주요지표다. - P207

조장했다는 것이다. 대안적 통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회부문들의 자기조직과 자주관리 경험을 강화함으로써 그들이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고 소비주의 경향과 더불어 신자유주의의 가장 강력하고 보이지 않는 힘인 현대성의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한다. - P209

상호보완성은 서로가 서로를 완성해준다는 뜻이다. 이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는 전체whole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서로 다른 행위자 간의 대화이다. 이는 서로가 배우고 기여하는 것이다. 이는 각자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서로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서로 힘을 합하여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함으로써 다양한 차원이 조화를 이루는 전체를 완성하는 것이다.
비비르 비엔, 탈성장, 커먼즈, 생태여성주의, 어머니지구의 권리, 탈세계화가 상호보완성을 추구한다면, 시스템 위기의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긴밀하게 상호작용함으로써 서로에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서로를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다. 목표는 단일한 하나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얽히고 연관되어 있는 다양한 대안들을 총체적holistic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전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 P212

비비르 비엔은 성장에 대한 핵심 대안으로 역동적 균형상태dynamic equilibrium를 추구할 것을 제시한다. 경제적 진보와는 다른 문명의 새로운 지평으로서 인간들 간에, 그리고 인간과 자연 간에 조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한 과제는 끊임없이 더 많이 갖는 것을 목표로 개발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 간에 그리고 인간과 자연 간에 상호보완을 추구함으로써 시스템의 균형을 다시 맞추는 것이다. 즉, 역동적 균형이란 새로운 모순을 낳으면서도 새로운 균형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 균형을 의미한다. 새로운 근대성은 성장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적 근대성을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다른 인간과 자연을 탈취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전체를 이루는 모든 부분들의 적절한 결합을 이루어야 함을 강조한다. - P216

지난 세기의 경험을 통해 국가가 모든 영역을 통제하는 것이 자유시장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졌다. 재분배가 효과가 있으려면 시장과 국가가 아닌 다른 행위자들이 중심에 놓여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커먼즈의 커다란 몫이다. 스스로 조직하고 스스로 관리하는 커머너들이 없다면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재분배는 없다. 이는 더 나은 분배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생명자원들을 다른 적절한 방식으로 관리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비비르비엔이 지적하듯이, 인간의 역할은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한 지혜를 갖고서 조심스럽게 균형상태를 찾는 데 기여하는 다리, 즉 중재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산수단(민간은행, 초국적기업, 농기업, 화학기업, 군수복합체 등)을 사회화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자연의 순환을 존중하도록 생산수단을 완전히 전환하고, 채굴주의, 생산주의, 지식의 사유화, 생물다양성의 상품화, 대량살상무기의 개발 등과 단절해야 한다. - P217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면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전망이 필요하다. 그래서 탈성장이라는 전망을 목표로 하는 소박한 사회를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소비자원을 사용할 때 검소하고 신중하며 아끼고 절약하는단순하고 겸손한 사회다. 아니면 비비르 비엔이 표방하듯이 인간들 간에서로 경쟁하고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 간에 조화를 증진하는 사회다. 사회 변혁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만약에 그 목표가 모든 인간이 자본가나 중상류층처럼 소비하면서 사는 것이라면, 자본의 논리와 무제한적 성장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 P222

하지만 개인, 가족, 지역공동체 수준에서 또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진정한 지구적 변화를 실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생태여성주의가 기여한 바 중 하나는 공공 영역과 민간 영역에서의 변화들 간에 상호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와 동시에 가장 내밀한 삶 속에서 인간관계가 혁명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전환은 없다. 공공정책과 사적인 행동 간의 일관성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 P225

실업의 구조적 원인에 맞서기 위해서는 생산주의 논리에서 벗어나서 재생산 노동을 가시화하고 인정하며, 이를 특히 자연과의 균형상태를 회복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새로운 영역들로 확장해야 한다. 오늘날 건강한 사회와 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연에 손상을 입힌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숲, 강, 해안, 대기, 지하수 등 지구 시스템의 여러 구성요소들을 회복시키고 돌봐야 한다. 그렇다고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필요성이 커지는 일자리는 생산 영역에 있지 않고 재생산과 생명의 돌봄에 토대를 두는 다른 유형의 일자리다. 우리가 맞닥뜨린 지구의 위급상황에 맞서기 위해서는 수억 개에 이르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 P228

비비르 비엔, 커먼즈, 탈성장, 어머니지구의 권리, 생태여성주의, 탈세계화,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제안들 간의 상호보완성을 이루는 과정은 다각적이고 또 다양하다. 앞서 우리는 이러한 상호보완성과 관련해 독자로하여금 이 길을 같이 가도록 독려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살펴보지 않았다. 우리는 결론의 목록을 만들기보다는, 독자들이 다양한 시각과 접근, 전망들에서 나오는 현실, 문제, 대안들을 살펴볼동기를 부여받길 바란다. 우리는 상호보완성이 이러한 전망들 각각을 더강화하고, 약점을 찾아내며, 실패를 극복하고, 함께 협력하여 폭넓게 논의되지 않았던 사안들에 대한 해답을 탐색하고, 시스템 대안을 건설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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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 비비르 비엔, 탈성장, 커먼즈, 생태여성주의, 어머니지구의 권리, 탈세계화, 상호보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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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가장 상징적 것은 인도 히말라야 지역에서 유래한 칩코Chipko 운동이다. 이 운동은 1970년대 인도에서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는 벌목정책에 대항하여 시작되었다. 히말라야 여성들은 그들의 고유한 역사를 재발견하고 그들의 조상이 했던 것처럼 나무를 끌어안고 둘러싸며 이 정책에 저항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성들은 300년도 더 지난 낡은 저항운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1730년, 비슈노이 Bishnoi 종교 공동체의 한 여성인 암리타 데비는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는 데 반대하여 그녀의 딸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350 명도 더 되는 주민들은 그녀를 따라 해당 지역에서 벌목이 금지될 때까지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는 것을 막아냈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방식의 투쟁은 1974년 힌두 여성 가우라 데비가 지역 당국이 베려고 했던 알라크난다 강 근처에 있는 2,500그루의 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마을 여성들을 모으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마을 여성들은 벌목을 중지시키는 데 성공했고, 우타르프라데시 주정부가 10년간 유예 명령을 내리도록 함으로써 지역에 있는 다른 벌목도 금지시켰다. 히말라야 삼림지역을 지켜낸 이러한 방식(나무 끌어안기)의 행동은 삼림벌목에 대항하는 평화운동의 상징이 되어 전 세계에 널리 소개되었다. 이 운동은 대안노벨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했고, 연민과 전통 지혜, 비폭력의 메시지와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운동은 남부국가 생태여성주의의 가장 상징적인 대표자인 반다나 시바에게 영감을 주었다. - P128

반다나 시바는 여성을 생명존중의 담지자로 여기고, 서구의 불량개발이 여성 및 원주민들의 지혜와 자연과 부를 약탈하는 주된 원인이라고생각한다.

"불량개발은 생각과 행동에서도 불량하다. 분절적이고, 단순화시키며, 이원론에 기초한 불량개발의 관점은 현실에서 인간과 자연 간의 조화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조화도 깨뜨린다. 또한 여성성과 남성성의 협동체를 부수고, 자연과 여성으로부터 남성을 분리시켜 자연과 여성의 상위에 두며, 남성에게서 여성적 요소를 없애버린다. 이로 인하여 자연에 가해지는 폭력은 생태위기로 드러나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복종과 착취로 드러난다. 이 두 가지 폭력 모두 여성적 요소의 노예화로 탄생된 것이다." (Shiva, 1995)

다른 한편, 이 운동은 사실상 파괴 지표‘일 뿐인 근대사회를 지배하는 ‘성장 지표‘를 비판한다. 이른바 본질주의적이라 불리는 이 여성주의는 생명 존중과 생명의 영속성은 여성이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가지는 자질이라고 결론짓는다. 왜냐하면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리아 미즈는 "여성은 만물을 자라게 한다"고 한다.

•여성은 자신 및 자연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외부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호혜적인 과정을 형성한다. 여성은 자신의 몸과 자연이 같은 방식으로 생산력을 가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비록 여성이 자연을 취하더라도 그 방식은 전혀 지배관계나 소유관계가 아니다. 여성은 ‘자라도록 하고, 자라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이나 땅과도 협동한다.
•새로운 생명의 생산자로서 여성은 또한 사회관계 및 사회와 역사를 생산하고 창조하면서 1차 생산 경제의 생계 수단의 1차 생산자가된다. (Mies, Shiva 인용, 1988) - P129

여성주의 경제학과 사회 전환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 생태여성주의가 소개하는 구체적인 경험은 진정 놀라운 문명사적 가치를 가진다. 이런 점에서 그 경험은 사회조직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지도록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현재의 사회가 지속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생태여성주의의 경험은 신자유주의의 독단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돌봄과 자연과의 조화와 연대의 노동이 사회를 키우는 진정한 초석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그렇게 건설한 사회는 삶을 돌보는 사회,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돌보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 P142

지속가능한 개발의 신화가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 까닭을 살펴보면, 그 원인의 하나는 지속가능한 개발이 ‘우리‘라는 개념, 즉 인간과 자연이 맺는 관계와 상호의존성을 그 개념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속가능한 개발에서는 약탈의 구조적 토대에 자연만이 아니라 여성의 억압 문제도 있다는 점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로 인하여 자연과 인간은 마치 고립된 두 개체처럼 분리되어 존재하고, 그리하여 약탈이 지배 모델로서 강요되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를 이루려면 사람의 신체를 아우르고,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체계와 윤리를 구상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모든 형태의 생명과 지혜와 문화를 창조하고 재창조하는 데 필요한 태도와 더불어 소속감, 공감, 관계, 시간에 대한 인간의 인식에 온전한 의미를 다시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과 새로운 문명의 모델은 ‘복구하고 고치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치유하고 돌보고 아래로부터 저항하는 데 적합한 여성적 에너지를 분출하게 하려면 기억과 망각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길로 접어듦으로써 ‘지속가능한 개발‘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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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은 고립된 비사회적 인간이나 타인과의 관계를 멀리하고금욕적으로 세상과 교류를 피하는 이성적 은둔자가 아니다. 자유인의 삶에서 이성이 하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우리 외부의 사물과 관계 맺는 법을 규정하는 것이다. 외부 사물도 (그것이 개인의 코나투스, 즉 능력의 증대를 야기할 때)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으므로, 이성은 우리에게 존재 보존과 능력 증대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좋은 것들을 찾아 나서라고 명령한다. 여기에는 다른 인간들과의 사회적 교류는 물론 일반적으로 생명의 유지, 즐거움, 성취감의 근원이 되는 대상과 활동이 포함된다.
스피노자는 "이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 즉 이성의 지도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에 대해 욕망하지 않는 것을 자신에게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정하고 정직하며 고결하다." 라고 주장한다. 자유인은 또 쾌활하고 친절하며 관대하다. 그는 기질적으로 대인 관계의 갈등을 야기하는 다양한 정신 상태, 즉 미움, 질투, 조롱, 경멸, 분노, 보복을 비롯한 여타의 악한 감정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이성의 지도에 따라 사는 사람은 가능한 한 자신을 향한 다른 사람의 미움, 분노, 경멸을 사랑과 관대함으로 대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희망과 두려움의 지배를 받아 행동하지 않으며 자만, 경멸, 비하, 낙담을 하는 일도 없다. - P96

세상이 주는 이러한 즐거움에 참여하다 보면 이성의 지시에 따라 사는 현인의 정신에도 부적합한 관념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유인 내부에서 이러한 수동적 정서와 부적합한 관념들이 즐거움을 주고 유용하기는 하지만 적합한 관념에 비하면 실천적 요소로서 부차적인 수준에 머문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그것들은 자유인의 행동을 추동하지 못한다. 자유인의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아름다운 신체의 시각적 유혹이나 값비싼 와인의 향기 같은 정념들은 욕망을 결정할 만큼 정서적으로 강하지 않다. 오히려 자유인이 하는 만큼, 다시 말해 자유인이 선하다고 인식하는 딱 그 정도까지 세속의 기쁨을 좇고 그것에 참여하라고 이끄는 것이 바로 이성이다. 따라서 그렇게 이성의 지배를 받는 욕망은 중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인은 폭식, 만취, 욕정, 탐욕, 야망을 모른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악덕을 "음식, 음주, 성적 결합, 부와 평판에 대한 지나친 사랑 또는 욕망" 이라고 정의한다. 일종의 사랑의 형식인 이것들은 기쁨과 쾌락을 가져다주지만, 궁극적으로는 슬픔으로 귀결된다. 그 사람의 전반적인 코나투스, 즉 신체와 정신의 능력을 결과적으로 약화시키고, 특히 그 사람이 진정한 선, 곧 인식과 오성을 추구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심지어 그런 노력을 아예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감정들을 누그러뜨리는 정신의 힘"을 통해 자유인은 절제되어 있고 냉철하며 정숙하다. 그가 음식이나 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놀이들을 즐기는 것은 이성의 지배 아래서 이루어지는 한 능동적인 즐거움이다. 자유인이 그의 방식대로 먹고 마시는 이유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감각적 쾌락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P99

사물의 필연성을 이해하는 사람은 사물의 이행을 침착하게 평정심을 갖고 바라본다. 그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일들에 의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과도하게 분별없이 자극받아 변화되지 않는다. 그것들을 모두 영원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는 강한 자제력과 차분한 마음으로 운명의 부침에 맞선다. 그 결과 그의 삶은 더욱 평온해지고 갑작스러운 정념의 훼방에도 굴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고,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고 바라고 꿈꾸는 외부 대상이 예상치 않게 연달아 찾아오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판단과 대응을 통제하여 타인과 외부 대상들 그리고 그들이 일으키는 정념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간의 능력은 매우 제한적이고, 외부 원인의 힘은 무한히 그것을 능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외부에 있는 사물들을 우리에게 유용하게 만들 수 있는 절대적 능력이 없다. 그러나 우리 이익의 원칙이 요구하는 것과 반대되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도,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는 사실과 우리가 가진 능력이 그런 것들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연장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자연 질서에 따르는 전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그런 일들에 침착하게 대처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명석판명하게 이해한다면, 오성에 의해 정의되는 우리의 그 부분, 즉 우리의 더 나은 부분은 이에 전적으로 만족할 것이며 그런 만족감 안에서 존재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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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 비비르 비엔, 탈성장, 커먼즈, 생태여성주의, 어머니지구의 권리, 탈세계화, 상호보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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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롬은 자신이 쓴 책에서 커먼즈의 운영구조를 특징짓는 여덟 가지 원칙을 밝혔다.

*명백히 규정된 멤버십을 가진 조직 : 구성원들은 자신이 어떻게, 그리고 왜 그 집단의 구성원이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커먼즈를 운영하기 위한 일관된 규칙 : 누가, 언제, 그리고 얼마만큼 커먼즈를 이용하거나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
*집단적으로 대표자를 뽑는 민주적인 시스템
*모니터링 시스템 : 운영자는 조직에 보고해야 한다(감사제도).
*규칙을 어기는 자에 대한 제재에 관한 제도• 갈등해결 메커니즘
*국가나 자치단체에게서 자율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
*공동자원을 활용한 활동은 이해관계자 조직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 - P94

번즈 웨스턴과 데이비드 볼리어는 커먼즈와 관련한 다양한 유형의 권리를 단순 묘사하는 것을 넘어 ‘공동의 것으로 만들기 make common‘ 혹은 커먼즈의 도래와 발전을 위해 행동함을 뜻하는 ‘커머닝 commoning‘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간다.
….
생성하는 권리인 커머닝을 통하여 우리는 모든 커먼즈에 동일하게 작동하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는 모든 커먼즈를 아우르는 하나의 원칙, 즉 커먼즈는 ‘돌봄caring(돌보는 활동)‘이라는 원칙을 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오스트롬은 여러 사례를 통하여 커먼즈가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그 방법은 사회 규범과 제도적 조율을 통하여 지역의 주체들이 자원을 운영하는 것이다. 커먼즈에 관한 여러사례를 살펴보면 각각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해당사자 공동체가 직접 운영하고 공동체가 돌볼 때만이 커먼즈의 지속성이 보장될 수 있음을 알수 있다. - P104

역사적인 견지에서 볼 때, 커먼즈 영역을 수호하고 확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직접 민주주의와 실질적인 사회적 소유를 실천하는데 용이한 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한순간의 투쟁이나 혁명의 경험으로는 얻을 수 없다. 또한 참여민주주의와 의원 소환제도의 도입, 투표권의 확장을 통하여 정치제도에 권력을 위임하는 대의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무척 어렵고,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찾아낸 참여민주주의와 같은 혁신적인 정치제도를 지속시키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커먼즈는 권력구조를 변화시킨다고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커먼즈는 잘 돌보고 직접 참여해야 하는 것이기에 실천적인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방법이 된다. 여기서 사회주의란 공산주의, 정치생태주의, 생태사회주의등을 총칭하는 표현이다. 그런 면에서 커먼즈는 오언과 푸리에 등 사회적 실천(교육, 협동조합, 남성·여성의 관계, 공동체적 삶 등)을 해방의 중심에 두었던 19세기 사회주의 전통과도 연결되며, 1960년 1970년대에발흥했던 저항운동의 열망과도 조우한다. - P109

민주주의 사회적 실천을 통한 집단소유, 공공 영역에 의해 관리되지 않는 기본권의 발흥과 수호라는 두 축은 사회의 전환을 실현하고자 하는 좌파의 중심 개입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축은 우리 사회에서 분출하고 있는 새로운 열망과 운동에 대처할 수 있게 해주며, 무엇보다도 국가 조직의 강화와 구별되는 다른 사회주의를 향한 걸음을 진일보하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첫째는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 커먼즈를 발전시킬 수 있는 법과 규율을 만드는 것이다. 생산협동조합, 공동구매협동조합, 집단 목초지, 공동체 숲 등과 같은 ‘구식‘ 커먼즈와 지식과 자연 같은 ‘신식‘ 커먼즈를 포함, 모두가 참여하여 집단적 소유를 가능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나눔과 타인에 대한 관심에 기초한 새로운 가치체계를 전파하는 일이다. 이러한 참여활동을 가능하게 하려면 어떤 가치체계에 기반하여 어떤 식으로 이를 촉진해야 할지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농업커먼즈와 생산협동조합의 생산을 유지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촉진 방안, 프리소프트웨어 공동체들의 주고 받고 되돌려주는 증여체계, 자연커먼즈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공동의 가치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개인적·사회적 실천의 확산 등이 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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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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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사회를 유기체나 시계, 또는 벌떼가 와글거리는 벌집에 비유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회는 그와 같이 물리적으로 분명한 윤곽을 갖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각자의 앞에 상호주관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는 각자의 앞에 펼쳐져 있는 잠재적인 상호작용의 지평이다. 우리는 이 지평 안에서 타인들과 조우하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신호를 주고받는다. 타인이 내게 ‘현상한다‘는 말은 그가 나의 ‘상호작용의 지평 안에 있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타인의 존재를 알아보고, 그가 나의 알아봄을 알아볼 수 있도록 내 쪽에서 존재의 신호를 보내는 것은 그의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하는 의미를띤다. 동시에 나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나 역시 그에게 현상하고 있다는 믿음 -우리가 함께 사회 안에 있다는 믿음-을 표현하며 상대방이 나의 믿음을 확인해주기를 기대한다. 물론 상대방은 나를 ‘무시’할 수 있다. 즉 나의 신호에 화답하지 않고,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행동할 수 있다. 상호작용의 의례는 언제나 위반과 중단의 가능성을 내포하며, 그 때문에 문화적 코드의 단순한 실행-‘국지적 활성화‘-으로 간주될 수 없다. 의례의 사슬을 구성하는 행위들 하나하나는 질문이자 요구이며, 초대이자 도전이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인정투쟁‘의 계기들을 구성하는 것이다. 사회의 경계는 이 나날의 인정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그어진다. - P58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정투쟁이 지향하는 타자는 적이 아니라 우리이다. 즉 인정투쟁은 성원권투쟁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의 논의는 인정투쟁을 인간의 본질이나 실존적 조건과 관련시키는 접근들을 -헤겔주의이건 라캉주의이건― 모두 배제한다. 인정투쟁이 성원권투쟁이라면, 인정투쟁의 양상은 한 사회에서 성원권이 분배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 P63

외국인이라는 꼬리표는 스티그마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외국인이 그 자체로 낙인찍힌 범주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외국인들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면서, 그들이 우리 문화의 장점들을 제대로 평가해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이상적인 외국인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한에서이다. 돈 많고, 교양 있고, "원더풀"이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 그들이 이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는 게 판명된다면, 가령 그들이 돈도 없고, 교양도 없는 데다 남의 나라에 와서도 자기네 방식을 고집한다면, 게다가 금방 돌아가지 않고 눌러앉아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의’ 여자들을 건드린다면, 그들에게 주어졌던 환대는 철회될 것이다. 스티그마가 있는 개인이 그에게 추천되는 특정한 행동 노선 line of action에서 벗어났을 때처럼 말이다. 즉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환대 혹은 사회적 성원권은 조건적이다. 환대와 사회적 성원권을 구별하는 사람은 결국 조건적 환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에 대한 환대의 철회는 그들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의해 정당화된다. ‘우리나라에서 받는 대접이 못마땅하다면 자기네 나라로 가면 된다.‘ 하지만 삶의 터전을 한번 바꾸었다가 다시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외국인‘이라는 말 속에 함축되어 있는 다른 장소는 종종 허구적인 것으로 밝혀진다. 나는 두 가지 예를 들고 싶다. 하나는 재일조선인들의 ‘조선‘이고, 다른 하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원주민들의 ‘홈랜드‘인 반투스탄Bantustan이다. - P69

사람들은 외국인이라는 범주에 집착하면서, 자기들이 하나의 사회 속에 있음을 부인한다. 그들은 외국인은 다른 나라에서 왔고 자기 나라가 있으므로, 내 나라 사람과 다르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외국인으로서의 환대와 사회적 성원권의 부여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어쩌다가 잠깐 외국인이 된 사람이라면 이 말에 동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국인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 외국인이라는 운명 속으로 추방된 사람에게 그 말은 다르게 들릴 것이다. 외국인으로서의 삶 외에 다른 삶을 택할 수 없는 사람에게 그것은 그가 결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 P72

성원권의 문제는 분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며, 인식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학의 문제이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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