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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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나마 멈추면 다시 회복될 걸 알면서도 우리는 멈추지 못합니다. 우리가 작동을 멈추는 동안 함께 멈추게 될 사람들에 대한 책임과 돌봄의 무게가 우리를 실종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또한 그렇게 멈춘 결과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성취와 스펙의 고리에서 영영 낙오될까 봐 우리는 두렵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동안 누군가는 영원히 실종되고 누군가는죽음에 이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강제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아주 작은 비겁함과 다정함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영원히 멈추지 않게 도와준다면 우리는 더 비겁해지고 더 다정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고독사 워크숍이 필요한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이란 밍기적뿐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잠시 멈추고 증발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건 대체 불가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대체 가능한 인간이란 걸 공유된 고립의 훈련을 통해 체득해야 한다 이겁니다." - P26

9만 9000원의 보증금을 내고 12주간의 고독사 워크숍을 시작한 참가자들은 무인 세탁함에 자신이 고독사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올리곤 했다. 가장 많은 조회수와 포인트를 얻으면 최종 우승자가 된다는 소문 때문인지 다들 적극적으로 자신이 고독사에 이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파했다. 타인의 고독사에 댓글을 달며 누군가는 안도하고 누군가는 공감을 하고 누군가는 타박을 했는데 중요한 건 조언의 유용함이 아니었다. 타인의 고독에 충고나 조언이 가능할 리도 없었다. 다만 서로 ‘관여‘하고 있다는 것, 나의 고독사에 타인이 관여되고 타인의 고독사에 내가 ‘관여‘하고 있다는 분명한 실감과 소소한 실천들이 중요했다. - P61

특별한 날은 점점 드물게 왔다. 건강에는 좋은 일이었다. 무탈하게 어제와 같이 시시한 일상을 반복하는 나날이 실은 특별한 하루의 연속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P67

결국은 다 우는 판다가 자초한 일이라고 양이는 생각했다. 가끔 양이도 우는 판다의 나쁜 소문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다른 커뮤니티에 말을 보태어 옮기기는 했지만 다수의 무심한 악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거였다. 없어도 그만. 그러니까 있어도 그만. 우는 판다를 거리에서 쫓아내기 위해 등을 떠민 5000명의 손이 있다면 그중에 양이는 한 손바닥도 아니고 한 손가락 정도의 힘밖에 없지 않았다. 그러니까 양이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었다. 그러면 다른 5000명은? 그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다른 5000명에 비하면 자신의 악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므로 책임질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아니 그러니까 애초에 우는 판다만 없었다면 다수가 가만히 있다가 가해자가 되거나 죄책감을 느낄 일도 없었을 거였다. 결국은 모두 우는 판다의 잘못이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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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이미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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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때려죽여도 하기 싫은 일. 실은 너무 두려운 일. 왜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 사람에게 더욱 수치심을 안겨주는 것일까. 무경은 고모의 그 일을 해주었다. 고모는 무경이 그 일을 해주었을 때 자기 안에 있는 구원을 바라는 마음을 보았다. 대체 언니는 어떤 눈을 지녔기에 그 나이에 그 마음을 봤을까, 목경은 아찔해지곤 했다.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이미상- - P41

가능이 아닌 선택의 영역에서 갈팡질팡하는 고모를 두고 ‘하기 싫은 일’을 기꺼이 선택한 무경은 전前 세대에 해당하는 고모보다 능동적인 수행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여성의 계보를 이어받고 더블 배럴 샷건을 쥘 만하다. 이 소설에서 무경은 의지를 선택의 영역에 두지 않는다. 세번째 명제와 같이 그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곧 ‘해야 하는일‘이며 따라서 기능과 의지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일치한다. 당연하지만 무경의 선택은 의지가 소거된 고모의 지난날과 같지 않다. 모래 고모의 "비밀스러운 원칙"(40쪽)을 완벽히 이해하면서도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상상의 세계를 모험하는 무경의 선택은 그 자체로 의지가 된다.
-이미상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해설, 모험으로 전복하기, 소유정- - P54

오해는 억울함과 부착되어 있다. 그러나 살면서 맞닥뜨리는 모든 오해를 일일이 풀기란 불가능하다. 동일한 상황과 사건은 그에 연루된 상대방의 해석에 의해 ‘너‘의 또다른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오해를 풀고 그 자리에 합당한 서사를 기입하고 싶은 욕망은 ‘내‘가 ‘너‘의 세계를 통제하고 조절하려는 욕망일 수 있다. 생의 역동적인 파도타기를 위해 필요한 자세는 이미 지나간 일을 순수 ‘나‘의 의지로 객관화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다만 그것을 ‘빈 괄호‘로 두는 일, 그 어떤 것도 한 가지 의미 층위에 배타적으로 귀속되지 않으며 최소한 두 개 이상의 다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납득하는 태도다. ‘나‘와 ‘나‘의 세계, 그리고 ‘너‘와 ‘너‘의 세계 역시 모두 복수의 상호 연관자들이 역동적으로 구성하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벡터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설이 그려내는 세계의 모습은 결코 종합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운동하는 물질로서의 세계다.
-김멜라 ‘제 꿈 꾸세요’ 해설, 커피포리의 물질계, 전승민- - P106

"그런데 할머니 별명이 ‘요카타 할머니‘라고요. 요카타는 일본어로 다행이다, 라는 뜻이죠? 뭐가 그렇게 다행이셨어요?"
요카타, 라고 말하면 마음이 놓였다. 요카타는 다행이다라는 말보다 더 다행 같았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어도 요카타라고 말하면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요카타, 라는 말로 체념하고 요카타, 라는 말로 달래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오늘을, 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정선임, 요카타- - P222

그가 속한 세계에서 연화는 말하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연화는 이 말을 통해 자신의 언어를 찾는 것에 성공하지만,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그것이 연화 자신을 향한 이야기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 주체의 발화의 어려움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연화를 보편성의 장막에 몸을 숨긴 채 자신만의 고유한 비밀을 만드는 존재로 그리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연화가 이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소설은 연화가 자신의 삶에 대해 (아직) 말하지 않고자 하는 욕망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발화와의 시차時差를 여성적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의 새로운 자원으로 삼는다. 이렇듯 연화가 자신의 개별적인 역사를 말하는 대신 보편성의 장막 뒤에 스스로의 이야기를 숨기며 은둔을 선택하는 행위는 그녀가 아버지에 의해 오랫동안 유폐된 존재였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한층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가끔 이름이 불릴 때마다 구멍에 숨어 있다 잡혀 나온 게들처럼 당황했다. 하지만 또다시 구멍 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다행이었지. 요카타, 요카타." (229쪽)

-정선임 ‘요카타’ 해설, 발화의 시차로 다시 쓰는 해방의 역사, 박서양-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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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마음으로
임선우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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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라디오에서는 짧은 사연들이 지나갔다. 슬프지도 재밌지도 않은 사연들을 산과 나는 계속해서 들었다. 어느 순간에는 푸르른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는데 산을 쳐다봤을 때 산은 울고 있지 않았다. 산은 이제 울지 않고도 푸르른 냄새가 나는구나. 그 냄새를 맡고 있으니 수로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흐르는 물을 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것 같은 기분. 산과 나는 이제 슬픈 마음 없이도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었다.
-여름은 물빛처럼- - P101

그래도 오랜만에 찾은 카페는 여전히 좋았고,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덕에 마음 놓고 사람 구경을 할 수도 있었다. 나는 라디오를 듣듯 카페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도 했다. 사랑이나 적의, 죽음 충동 같은 사람의 감정들이. 내가 죽은 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에 빠지고 있었고, 누군가를 미워했으며, 때때로 죽고 싶어 했다. 그런 마음들은 어째서 지치지도 않고 계속 이어지는 걸까. 그것을 생각하자 그만 아득해져 이미 죽었는데도 또 한번 죽고 싶었다.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 팡- - P244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유령이 ‘나’의 원래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기란 오히려 어려운 일이다. "너는 누구야?" 하는 ‘나’의 물음에 유령이 "나는 너야."(10쪽) 하고 답하고 있으니까. 작가는 유령을 통해 얼어붙은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말랑말랑한 마음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보여 준다. 매 순간 떠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선명하게 이름을 붙여 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일 말이다.
-작품 해설, 황예인- - P266

내 마음을 먼저 살려낸 후에야 누군가의 마음 또한 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육신이 죽었음에도 생생한 마음의 결을 보여 주던 이랑이 소멸을 앞두고 "이제 와서 뭘 해." 하며 줄곧 꿈꿔 오던 바를 포기하려 하자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다급해"(256쪽)진다. ‘나‘는 이랑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그다음에야 ‘나‘에게 "모든 것이 그리워질 것만" 같은 마음이 되돌아온다. 제빛을 찾은 ‘나‘의 죽음은 지원서 대신 유서를 쓰던 시기의 삶보다 훨씬 행복하게 느껴진다. 너를 돕고 나서 나를 구하게 되는 이 순서, 그건 제힘, 나 자신이 나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임을 자각하는 과정에 가까울 것이다.
-작품 해설, 황예인-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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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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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우리를 ‘마치 ~인 듯‘ 살게 만든다. 언어란 질서이자 권위이기 때문이다. 권위를 잘 믿는 이들은 쉽게 속는 자들이기도 하다. 웬만해선 속지 않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속지 않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방황하게 된다. 세계를 송두리째로 이상하게 여기고 만다. - P9

자신에 관한 긴 글을 듣자 오랜 서러움이 조금은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슬아의 해설과 함께 어떤 시간이 보기 좋게 떠나갔다. 이야기가 된다는 건 멀어지는 것이구나. 존자는 앉은 채로 어렴풋이 깨달았다. 실바람 같은 자유가 존자의 가슴에 깃들었다. 멀어져야만 얻게 되는 자유였다. 고정된 기억들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 P109

낮잠 출판사를 처음 차릴 때만 해도 슬아는 책 만드는 일이 딱히 두렵지 않았다. 잘 몰랐으니까. 몰라서 무턱대고 씩씩하게 할 수 있었다. 지금의 슬아는 그렇지 않다. 글쓰기와 출판이라는 작업이 갈수록 어렵게 다가온다. 책을 만들어 몇천 부씩 인쇄하는 것이 중대한 결정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점에서 할아버지와 슬아의 운명은 궤를 달리한다. 할아버지는 양면테이프를 두려워하는 사장이 아니었다. 이제 슬아는 책이 양면테이프보다 열 배는 두려운 무엇임을 안다. 그 두려움을 알게 된 것에 안도한다. 책을 사랑하는 동시에 두려워하는 자들이 출판사를 운영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P173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신문에 실리고 텔레비전에 나오고 책이 여러 권 팔린대도 말이다. 무신경한 인터뷰어도 배배 꼬인 악플러도 찬사를 보내는 독자들도 사실 진짜로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숙희와 남희가 그렇듯 자신 앞의 생을 사느라 분주할 테니까. 그것을 기억해낸 슬아의 마음엔 산들바람이 분다. 관심받고 있다는 착각, 주인공이라는 오해를 툴툴 털어내자 기분좋은 자유가 드나든다. - P180

"엄마, 오해는 필연이야. 괜찮아." - P286

가족의 유산 중 좋은 것만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그들로부터 멀리 갈수 있을까. 혹은 가까이 머물면서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에게 정중한 타인인 채로 말이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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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말하는 몸 1~2 - 전2권 말하는 몸
박선영.유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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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혐오는 트랜스젠더를 잘 모르게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잘 모르거든요.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사는지, 얼마나 다양하고 평범하게 잘살아가고 있는지를 몰라요. 제 면전에 대고 욕하기는 힘들잖아요. 내 앞에 있는 사람, 친구, 동료에게 대놓고 욕하기는 힘들거든요. 그런데 내 동료 중 누군가가 트랜스젠더일 수 있어요. 트랜스젠더는 환상의 동물 같은 게 아니거든요.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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