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의 고독 -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김병순 옮김 / 싱긋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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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스스로 생겨났다. 길은 숨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 위한 산책로나 전시 공간으로 설계된 경치 좋은 통로가 아니었다. 길은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길이 만들어질 때, 예비보고서나 타당성조사도 없었고 길의 등급을 정하거나 포장하기 위한 사전심사도 없었다.
길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길은 자연적으로 생겨나고 분해되며 자연환경에 순응하고 그것이 통과하는 바로 그 자연계의일부다. 길은 일시적이다. 그것의 용도와 존재는 상호의존적이다. 길은 누군가가 그 길을 다니기 때문에 거기에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 길을 다닌다. 따라서 길이 그대로 남아 있으려면 누군가가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길은 전설과 신화, 민요, 동화와 비슷하다. 그것들은 모두 집단창작을 통해 생겨나기 때문에 어느 특정 작가를 원작자로 지명할 수 없다. 그것들은 몸과 영혼이 일체다. 물질적이면서 동시에 비물질적이다. 길은 단순한 통로 이상을 의미한다.
길은 일직선의 반대다. 길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 반면에, 일직선은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이론적 구성체다. 일직선은 구체적인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물의 표면조차 일직선으로 평평하지 않다. 태양에서 발사되는 광선도 마찬가지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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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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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일어난 일의 반대는 무엇일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일어난 일의 반대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아버지는 말했다.
"일어난 일의 반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14년쯤 지난 후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티베리아스의 작은 생선 요리 식당에서 야르데나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나는 똑같은 질문을 했다. 야르데나는 대답 대신 빛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즐기는 여자아이들만이, 어떤 가능성이 있고 어떤 불운이 있는지 잘 아는 사람만이 웃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야르데나가 대답했다.
"일어난 일의 반대는 거짓말과 두려움이 아니었다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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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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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은 아직은 될 수 없지만 어떤 것은 아직은 될 수 있다. - P229

선배도 참 지겨웠겠구나.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다움을 잃어 가는 하루하루가, 저마다 피해자의 얼굴로 가해자의 얼굴을 감춘 채 무리의 습성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못됨을 처먹어 가는 일상이. 무엇보다도 타인의 불행 앞에서 다행을 챙기는 다행하지 않은 자신의 마음과 자꾸 마주해야 하는 공포가. - P246

고독사 워크숍을 시작하며 이수연이 깨달은 단순하고 분명한 진리는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고독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고독의 코어를 단련해야 한다는 거였다. 고독이란 단순히 마음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균형과 근력의 문제였다. 친절과 배려가 탄수화물에서 나오듯 고독할 수 있는 힘 역시 강인한 체력과 단련된 근육에서 나왔다. 타인의 고독을 지켜 주는 힘 또한, 일 분이라도 혼자 플랭크 자세를 해 본 사람은 알게 된다. 혼자 버티며 산다는 건 얼마나 고독한 일인지. 수연 역시 반복된 훈련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의 고독은 대체로 단련될 수 있다는 걸.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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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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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가학은 친절과 배려의 옷을 입고 온다고 알리스는 생각했다. - P127

알리스가 부러운 것은 그들의 전문적인 지식이나 원하는 것을 소장할 경제력 이전에 그들의 취향이었다. 모든 게 그렇듯 취향의 세계 역시 일부에게만 너그러워서 이미 가진 자들만이 취향을 탐색하고 키워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다듬어진 취향은 곧 또 다른 능력이 되었다. 알리스의 경우에는 취향 없음을 숨기기 위해 타인의 취향을 훔쳐보며 다수의 취향을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것 정도가 유일한 취향이었다. - P129

가끔 높이 뛸 때의 감각, 좋아하는 주희 선배에게 아주 가깝게 다가간 듯한 친밀감, 세상이 이해 가능한 반경 안에 들어온 것만 같은 충만감이 그리울 때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열망은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넨다는 건 허공의 높은 곳에 위태로운 선을 긋고 그만큼 높이, 아주 높이 뛰고 싶다는 마음과 유사했다. 그것은 추락과 부상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 낼 때만 가능한 도약이기도 했다. 한번 거부된 마음을 돌려받은 후 알리스는 겁쟁이가 되었다. 그걸 부정하거나 뛰어넘고 싶은 마음은 다시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좋았다. 그 후에는 누구도 그렇게 높이 뛰어야 할 만큼 좋아지지 않았다. 장대 없이도 넘을 수 있는 높이의 사랑만 했고 떨어져 다치더라도 치명적인 부상으로 남지 않는 연애만 했다. 어른이 되면서 중요한 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것 보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거였다. 평정심에서 나오는 상냥한 태도, 사려 깊은 경멸과 친절로 가장한 경계심. 그것이 알리스를 직업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사람들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지켜 주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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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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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초보자와 아마추어인 상태로 남는 거란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시작하면 끝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 완성되지 않으면 그게 포기나 실패라고 생각하죠. 그건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짜 도달해야 하는 건 사실 매번 하던 걸 엎고 새로 시작함에 두려움이 없는 성실한 초보자이자 아마추어, 실패자이자 구도자인 상태를 유지하는 거다 이 말입니다. 트랙에 수많은 출발선을 긋다 보면 결국은 출발선이 결승선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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