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바디 - 모든 몸의 자유를 향한 투쟁과 실패의 연대기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제적이고 상상 가능한 성적 다양성의 숫자는 거의 무한하다. - P106

라이히가 생각하는 오르가슴은 사정과 동의어가 아니었다. "그저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한해 뒤에 그는 설명했다. "단지 성교를, 교합을 뜻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건 자아, 영적 자신을 상실하는 진정한 감정적 경험입니다." 다다르는 것the coming 보다는 놓아버리는 것the letting go이 더 중요했다. - P111

프로이트와 달리 그는 사람들이 좌절하고 수치를 느끼면, 금지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절름거린다면, 자신들의 욕망이 나쁘고 잘못된 것이라고 믿는다면, 자유롭고 안전한 표현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미성숙한 상태로 계속 살아갈 것이라고 보았다. 좌절감을 해로운 쪽으로 분출하는 영원히 불행한 아이로, 그에 반해, 성적으로 만족한 인간은 그의 정의에 따르면 불안에서 해방되었다. 섹스는 불안을 방출하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이 건강한 성 표현을 청교도적인 수치심 자극, 피임이나 낙태 기회의 부족 등 다양한 방법을 써서 금지하는 사회라면, 그가 보기에 변해야 하는 것은 사회라는 점은 분명했다. 시민의 리비도적 필요를 더 수용해야 했다. - P114

빅토리아 시대에 퇴화된 인간의 범위는 계속 확대되었다. 빈민, 동성애자, 매춘부, 알코올중독자, 유랑민, 거지, 환자, 병자, 불구자, 자살한 자, 정신이상자. 그 관념은 엄청난 인종주의 세력을 끌어모았고, 소위 후진적이거나 원시적인 민족을 향한 제국의 폭력과 선교 열정을 정당화했다. 그것이 기생 parasicism이란 개념과 자주 결합되다 보니, 나쁘고 퇴화된 신체는 지원해주지 말아야 하고, 관용되지도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 P125

스스로도 리베르탱인 사드는 자유liberty라는 단어가 가진 복잡성의 화신이다. 그 단어에는 서로 엇나가는 의미들이 담겨 있다. 중세때부터 그 단어는 구속으로부터, 노예제나 감금으로부터의 해방, 자의적인 통제나 독재로부터의 해방을 뜻했지만, 또한 방해나 제약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능력이나 힘이라는 의미도 지녔다. 운명이나 필연으로부터의 자유, 의지의 자유, 허락, 허가, 어떤 것에 대한 거리낌 없는 사용이나 접근, 관습의 한계를 넘는 행동, 방종, 특권, 면제 또는 권리.
이것이 드러내는 것, 사드가 애써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자유를 취하는 taking liberties 것은 자유를 부여하는bestowing liberties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리베르탱의 낙원이 감옥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담으로 둘러싸이고 폐쇄되어, 자유가 박탈당한 사람이든 자의로 붙잡힌 사람이든 누구도 탈출할 수 없는 곳이다. 마음대로 행동할 자유는 불운하게 행동의 대상이 된 몸들에게 지옥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사드는 경고한다, 절대적 자유는 에덴보다는 아우슈비츠와 더 가깝다고. - P1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브리바디 - 모든 몸의 자유를 향한 투쟁과 실패의 연대기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라이히의 모든 사유의 기초는 양차 대전 사이의 빈에서 그가 개발한 단 하나의 사상에 있었다. 우리의 몸은 인정받지 못하는 역사, 무시하거나 부인하려고 애쓰는 모든 것을 지니고 있다는 사상이었다. 이것은 그 이후에 그가 전개한 자유에 대한 사상들을 낳은 씨앗이었지만, 또 미국에서 그가 상술한 건강에 대한 난감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사상의 기원이기도 했다. - P43

라이히가 보던 것은 판독되어야 하는 히스테리의 상징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전체 전재에 만연한 쥠과 죄임이었다. 즉 너무나 견고하고 뚫고 들어갈 수 없어서 무장을 연상시키는 그런 영속적 긴장 상태였다. 사람들이 행한 모든 일, 손을 흔들거나 미소 짓는 것에서부터 그들의 목소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서 그것이 눈에 보였다. 그는 자신이 성격 무장 character armour 이라 이름 붙인 그것이 느낌에 대한, 특히 불안과 분노와 성적 흥분에 대한 방어라고 생각했다. 만약 어떤 느낌이 너무 고통스럽고 괴롭다면, 감정 표현이 금지되거나 성욕이 억제된다면, 유일한 대안은 긴장을 끌어올려 가두어버리는 것뿐이다. 이 과정은 다치기 쉬운 자아 주위에 신체적 방패를 만들어내어, 즐거움에 둔감해지는 대신 고통에 대한 방어력을 준다. - P50

감정과 몸 사이에 명료한 경계선은 없다. 자아와 세계 사이에 확실한 경계선은 없다. 영화 <세이프>가 그토록 급진적인 것은 그 경계가 정말로 얼마나 열려 있는지를 드러낸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몸을 투과성을 지닌, 침습당하기 쉬울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외부 세계와 위험한 교류를 끊임없이 해야만 하는 것으로 소개한다. - P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브리바디 - 모든 몸의 자유를 향한 투쟁과 실패의 연대기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이히가 이해하고 싶었던 것은 몸 그자체였다. 그 속에 살기가 왜 그리 어려운지, 왜 그것에서 탈출하거나 그것을 제압하고 싶어 하는지, 그것이 왜 지금까지도 여전히 권력의 적나라한 근원인지를 이해하고 싶어 했다. 내게서도 불타오르면서 내 삶의 여러 단계에 영향을 끼친 질문들이었다. - P25

라이히의 더 흥미진진한 면모는 그가 질병과 성, 저항과 감옥 등 몸의 여러 다른 측면들을 한데 끌어모으는 연결자 역할을 한 방식이었다. 이 공명하는 영역을 탐구하고 싶었기에, 나는 여전히 신체적 자유를 이루고 제약하는 힘을 이해하기 위해 그를 안내자로 삼아 20세기를 관통하는 여정을 짰다. 그 여정에서 수많은 다른 사상가, 활동가, 예술가를 만났는데, 그중 몇몇은 그의 연구를 그대로 이용했으며 또 몇몇은 지나온 경로는 아주 달랐으나 같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 P27

이 모든 사람들처럼 라이히는 더 나은 세상을 원했고, 나아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는 감정적이고 정치적인 것이 실제 인간의 몸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으며, 두 가지 모두 재편성되고 개선될 수 있다고도 믿었다. 에덴은 이 뒤늦은 시점에도 복원될 수 있다고 말이다. 자유로운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상인가. 그에게 닥친 상황에도 불구하고, 또 그가 참여했던 운동에 벌어진 일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낙관주의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진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의 몸은 힘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더 나아가서 몸이 가진 명백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저히 약하기 때문에 힘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 P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문신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 내가 내 몸에 한, 내가 목청껏 동의한다고 외치는 내 선택이라는 점이다. 나는 이렇게 내 몸에 표시를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내 몸의 주인이 된다. - P209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고 나를 충분히 사랑해줄 수도 없는 여자들과 데이트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결핍으로 똘똘 뭉친 상처 덩어리였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조차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자신도 인정하지는 못했지만 나에게는 다분히 감정적 마조히즘이라 할 수 있는 패턴이 생겨났다. 일부러 극적인 관계에 나를 던져넣거나 나를 어떤 종류건 희생자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반복했다. 그런 행동과 감정은 나에게 굉장히 익숙하고, 또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무언가였다. - P262

나 역시 다양하고 희한한 방식으로 끔찍한 사람이었다. 이런 관계에서 동일하거나 아니면 더 큰 과실이 있는 사람은 나였다. 나는 너무 불안정했고 애정에 굶주려 있었고 내가 사랑을 받는다는, 내가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받아야만 했다. 그 확신을 얻기 위해서 상대의 감정을 내 뜻대로 조종하려 하기도 했다. 여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어리석은 판단을 자주 했는데 내가 여자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환상을 열심히 키워왔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남자가 상처를 줄 수 있는 방식과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어떤 여자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만 하면 나는 즉각 반사적으로 화답했다. 사랑에 빠진다는 개념과 사랑에 빠지는 그 위험한 덫에 수시로 걸려들었다. 누가 나를 원해야 했고 필요로 해야 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내가 욕망하는 것의 극히 일부도 줄 생각이 없거나 줄 수 없는 여자들과 얽히게 되었다. 또는 내 쪽에서 상대가 욕망하는 것의 극히 일부도 줄 생각이 없거나 줄 수 없기도 했다. - P266

좋은 사람과 사귀고 있을 때도 나 자신을 위해 상대와 맞서는 것은 힘들었다. 불만을 표현하거나 싸우고 싶어도 싸우지 못했는데 나는 이만큼 뚱뚱하다는 이유 하나로 이미 얇은 얼음판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게 필요한 것, 내가 받아야 마땅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어려웠고 그래서 요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괜찮은 양 행동했으나 사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옳지 않은 일이었다.
이 패턴을 바꾸어보려고 무척이나 노력했고 내가 하는 선택들과 선택의 이유를 냉정히 지켜보기도 했다. 관계가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안심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도 좋은 점들이 있다. 나는 착하고 재미있고 빵도 잘 굽는다. 나는 더 이상 그저 그런 사람들이나 나를 노골적으로 막 대하는 사람들을 참아내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내 존재 모두를 걸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학생들에게 소설은 어떤 면에서건 욕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대체로 우리 욕망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게 마련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원하고 원하니까. 아, 우리는 얼마나 원하는가. 우리는 허기로 가득하다. - P272

그러다 보니 난 나 자신에게 더 엄격한 사람, 의욕 과다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더 잘하기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서 대체 나는 누구이고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에는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이런 습관은 나를 이상적인 장소에 데려다주지 않았다. 아니… 아무 곳에도 데려다주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며 자기 인식이 아니면 자기 인식과 닮은 무언가가 찾아왔고 이런 행동 유형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이 사람 앞에서 내가 너무나 노력해야 하지 않기를, 너무 많이 주고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서 이대로도 충분하기를 바라는 건 겁나는 일이기도 하다. 당신이, 지금 그대로의 당신 모습이 앞으로도 계속 충분할 수 있으리라 믿는 건 겁나는 일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늘 불안한 점이 있다. "그러다 잘 안되면?"이라는 질문이 언제나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니며 괴롭힌다. 내가 앞으로 영원히 이대로 충분치 못하면 어쩌지? 내가 어떤 사람에게 영영 충분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어쩌지? - P284

2014년 10월 전까지는 더 잘하려고 녹초가 되도록 밀어붙였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녹초가 되어버렸고 그래도 끈질지게 밀어붙이고 또 밀어붙이며 나 자신을 슈퍼휴먼이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에는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마흔이 되면 몸이 먼저 말한다. "그렇게 안 해도 돼. 자리에 앉아. 야채도 먹고 비타민도 먹어야지." 발목이 부러진 이후의 삶에 대한 자각의 순간이 찾아왔다. 아마 그중에서도 가장 심오한 깨달음은 치유란 그다지 거창한 것이 아니고, 먼저 내가 내 몸을 돌보고 나의 몸과 더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는 것이란 사실일 것이다. - P317

내 몸과 이 몸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했던 경험은 나의 페미니즘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바꾸었다. 내 몸에서 산다는 일은 다른 사람을 향한 공감과 동정의 범위를 넓혀주고 다른 사람들 몸의 진실에 대해 알게해준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다양한 신체의 종류에 대한 용인을 넘은 포용과 인정의 중요성을 확실히 가르쳐주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내 몸의 존엄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더 신중한 단어인 사이즈란 말을 사용하는데, 나는 사이즈가 좀 되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될 수 있고 최소한 지난 20년 동안 그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나의 또 다른 정체성도 마찬가지였다. 이 몸이 불러오는 혼란과 수치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내 몸을 존중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 몸은 회복 탄력성이 크다. 내 몸은 모든 종류의 고통을 견딜 수 있다. 내 몸은 존재감이라는 힘을 제공하기도 한다. 내 몸은 강력하다.
또한 내 몸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몸이, 그 몸이 어떻게 각자 다른 능력을 갖고 이 세상을 어떻게 헤쳐가는지를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비만이 장애인 것은 몰랐지만 내 사이즈는 내가 특정 장소에 갈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한다. 나는 너무 많은 계단을 오를 수 없어서 항상 공간에 어떻게 접근할지 생각한다. 엘리베이터가 있을까? 무대까지 계단이 설치되어 있을까? 계단이 몇 단일까? 난간이 있을까? 이 질문들은 장애인들이 세상으로 나왔을 때 하게 되는 질문과 닮지 않았는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는지, 우리가 장애가 아닐 때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지를 알게 해준다. - P332

내 몸에 대한 고백록을 쓰면서, 내 몸에 대한 이런 진실들을 당신들에게 털어놓으며 나의 진실, 오직 나만 아는 나의 진실을 털어놓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사람들이 그다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일 수도 있다. 나 또한 듣기 불편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건대, 나는 여기에 내 심장을 펼쳐 보였고 여기에 그 심장이 남긴 자국이 남았다. 여기에서 당신에게 나의 강렬한 허기의 진실을 펼쳐 보였다. 마침내 여기에 연약하고 상처받고 지독하게 인간적인 나를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자유가 주는 해방감을 한껏 즐기고 있다. 바로 여기에 내가 무엇에 허기졌는지, 그리고 내 진실이 나로 하여금 무엇을 창조하게 했는지가 있다. - P3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렇게 거의 1년간 피닉스에서 살았다. 나는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고 제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살아야 된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냥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오랫동안 나인 척했던 그 착한 소녀는 절대로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을 했다. 이제 전 과목 만점을 받는 학생인 척할 필요도, 성적에 신경 쓸 필요도, 좋은 딸인 척할 필요도, 좋은 무엇인 척할 필요도 없었다. 이전의 삶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 온전한 백지 상태가 될 수 있었다. 나를 재창조할 수 있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온갖 종류의 위험을 감수하며 막장인생으로 살 수 있었다.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알아온 모든 것 사이에 점점 깊게 벌어지고 있던 그 틈을 완성할 수도 있었다. - P117

이제 40대가 되어서야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인정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직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심이 날 괴롭히기도 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혐오에 힘없이 굴복하며 살았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사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과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긍정하는 그 단순한 기쁨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나이가 들었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덜 신경 쓰게 되었다. 그 모든 발전 없는 자기혐오에 지쳐버렸고, 내가 나를 싫어했던 이유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나 자신을 싫어하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길거라고 추측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뚱뚱한 몸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당연히 자기혐오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듯한 세상이 지긋지긋해졌다. 그보다는 모든 불쾌한 소음을 차단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때와 20대 내내 저질렀던 실수를 용서하기로 노력하는 편이, 그 실수를 저지른 나에게 동정심을 갖는 편이 훨씬, 훨씬 더 쉽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나 자신을 바꾸고 싶지 않다. 내 외모를 바꾸고는 싶다. 기운이 좀 있는 날에는, 투쟁심을 발휘하여 세상이 나의 외모에 반응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진짜 문제는 내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운이 없는 날에는, 내 인격, 즉 나라는 사람의 본질과 내 몸을 어떻게 분리해야 하는지 잊어버린다. 이 세상의 잔인함으로부터 나를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 P173

이 몸으로도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길 바라지만 아직은 갖지 못했고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아니, 그것에 가까워지리라 생각한다. 용감한 기분이 드는 날에는 그렇다. 그런 날에는 마침내, 내가 축적해왔던 이 보호막을 조금은 덜어낼 수도 있고 앞으로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나는 젊지 않지만 아직 늙지도 않았다. 아직도 많은 삶이 남아 있고 아, 제발 지난 20여 년 동안 해왔던 것과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다.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다. 자유로워지고 싶다. - P179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에 지나치게 예민하지만 늘 이런 식이 되어야할 때는 화가 나고, 내 주변 사람들이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에 무심할 때면 순수한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질투심 때문에 미칠 것 같다. 그들이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싫다. 그들은 원하는 속도대로 걸을 수 있다. 팔걸이에 팔을 아무렇게나 걸칠 수 있다. 어디에 있든 꾸물거릴 수 있고 팔다리를 펼 수 있고 어깨로 밀칠 수 있다. 매 순간 자신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않아도 되고 잠시 멈춰 자신이 차지하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민다. 그들은 자신이 차지하는 공간에 대해 느긋하게 생각하는데, 내게는 그것이 악의적이고 이기적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에 있든 내가 어디에 서 있게 되고 어떻게 보이게 될지 질문해봐야 한다. - P1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