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가정과 일터 모두에서 여성의 삶을 근본적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페미니즘 이슈다. 돌봄노동의 방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문화적 가림막이 존재한다. 인간의 후생을 지탱해주는 노동의 가치를 한사코 인정하지 않는 뿌리깊은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돌봄의 중요성, 돌봄노동의 정도, 돌봄노동에 필요한 복잡하고 섬세한 기술 등 가려져 있는 방대한 돌봄의 직조와 연결망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 P15
돌봄은 여전히 오프라인 활동이다. 목욕시키기, 식사시키기, 청소하기, 정리 정돈하기, 손 잡아주기, 지켜보기 등 너무나 많은 면에서 물리적으로 대상자의 곁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근접성이 돌봄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들러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누가 사는가, 먹을 것을 가져다주거나 말벗이 되어줄 만한 사람이 가까이에 있는가와 같은 점이 결정적일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돌봄에 대한 접근성은 지역별 편차가 크다. 가령 노인 인구가 많은 농촌이나 해안 마을에서는 돌봄 격차의 문제가 특히 더 절박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에서 어린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의 경우도 그럴 것이다. 돌봄은 온전히 개인에게만 맡겨지는 일일 수 없다. 가까이 사는 누구를 누가 아는가, 그들이 어떻게 만나는가, 그들이 어떤 관계를 발달시켜가는가 등이 만드는 연결망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 P19
나는 돌봄이 취약성, 의존성, 고통을 다루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유통되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각각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모든 돌봄은 취약성, 의존성, 고통을 다룬다. 얼마나 직면하기 싫든지 간에, 이 세 가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될 경험을 구성한다. 누구나 자신의 문화에 돌봄의 전통을 육성해야 할 이유가 있다. 모두의 삶이 그것에 의존하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아주 많은 방식으로 우리의 삶은 이미 돌봄의 문화에 의존하고 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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