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동 - 가정, 병원, 시설, 임종의 침상 곁에서, 돌봄과 관계와 몸의 이야기
매들린 번팅 지음, 김승진 옮김 / 반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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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집에 들이세요. 원하시는 방식으로요." 돌봄은 소비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었고 금전 거래로 얻을 수 있는 사물이 되었다. 한 간호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의 구분이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비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죠. 원하는 것을 절실히 필요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거요." 이러한 필요가 다시 수요로 바뀌면서 의료 및 돌봄 시스템에는 막대한 과부하가 걸렸고,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에서 본질적인 측면, 가령 호혜성이라든가 자신의 일에 손과 머리뿐 아니라 어떻게 심장도 개입시킬지를 판단하는 돌봄제공자의 자율성 같은 것은 숨겨지거나 아예 제거되었다.
정문 옆에 나붙어 있던 광고는 이런 과정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한다. 병원에 들어서는 모든 의료진, 환자, 방문자의 기대와 이해를 특정한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짬을 내어 커피를 마시며 나와 이야기를 나눈 한 간호사는 "맡겨놓은 거라도 있는 듯이 구는 문화"에 분개하면서,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내는 것으로 간호사를 부르는 환자도 있다고 했다. 일반의 진료소에서 진료를 받고 나면 환자들은 비행기 승무원 서비스를 평가하듯이 진료 경험을 평가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며, 여기에서 진료 관계는 소비자 계약과 비슷한 것이 되어버린다. 의료와 사회적 돌봄 분야의 문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달하다deliver[배달하다]’라는 단어도 문제가 있다. 물품이나 패스트푸드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럴 수없다. 전달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넘겨준다는 의미인데, 돌봄은 그렇게 유한하거나 깔끔한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돌봄에는 친밀성이나 취약성 같은 측면이 얽히고설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 P47

많은 페미니스트 철학자들이 돌봄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명확히 규정하고자 노력해왔다. 조앤 트론토Joan Tronto는 돌봄이 도덕적인 개념일 뿐 아니라 정치적인 개념이기도 하다고 본다. 그에게 돌봄은 "우리가 그 세계 안에서 되도록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세계를 지속시키고 유지하고 고치기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을 포함하는 노동이다. 트론토는 이러한 노동을 구성하는 네 가지 윤리적 요소로 관심, 책임, 역량, 반응성을 꼽는다. 세라 러딕Sara Ruddick은 "돌봄은 노동인 만큼이나 관계이기도 하다."라며 "돌봄노동은 내재적으로 관계적인 노동"이라고 말한다. 롤로 메이Rollo May는 돌봄이 감정 이상의 것이며 "무언가를 행하는 것, 무언가에 대한 의사 결정"이라고 본다. 한편 돌봄을 미덕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버지니아 헬드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헬드는 돌봄이란 이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후생에 대해 호혜적인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관계"라고 설명한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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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노동 - 가정, 병원, 시설, 임종의 침상 곁에서, 돌봄과 관계와 몸의 이야기
매들린 번팅 지음, 김승진 옮김 / 반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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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은 가정과 일터 모두에서 여성의 삶을 근본적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페미니즘 이슈다.
돌봄노동의 방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문화적 가림막이 존재한다. 인간의 후생을 지탱해주는 노동의 가치를 한사코 인정하지 않는 뿌리깊은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돌봄의 중요성, 돌봄노동의 정도, 돌봄노동에 필요한 복잡하고 섬세한 기술 등 가려져 있는 방대한 돌봄의 직조와 연결망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 P15

돌봄은 여전히 오프라인 활동이다. 목욕시키기, 식사시키기, 청소하기, 정리 정돈하기, 손 잡아주기, 지켜보기 등 너무나 많은 면에서 물리적으로 대상자의 곁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근접성이 돌봄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들러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누가 사는가, 먹을 것을 가져다주거나 말벗이 되어줄 만한 사람이 가까이에 있는가와 같은 점이 결정적일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돌봄에 대한 접근성은 지역별 편차가 크다. 가령 노인 인구가 많은 농촌이나 해안 마을에서는 돌봄 격차의 문제가 특히 더 절박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에서 어린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의 경우도 그럴 것이다. 돌봄은 온전히 개인에게만 맡겨지는 일일 수 없다. 가까이 사는 누구를 누가 아는가, 그들이 어떻게 만나는가, 그들이 어떤 관계를 발달시켜가는가 등이 만드는 연결망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 P19

나는 돌봄이 취약성, 의존성, 고통을 다루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유통되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각각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모든 돌봄은 취약성, 의존성, 고통을 다룬다.
얼마나 직면하기 싫든지 간에, 이 세 가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될 경험을 구성한다. 누구나 자신의 문화에 돌봄의 전통을 육성해야 할 이유가 있다. 모두의 삶이 그것에 의존하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아주 많은 방식으로 우리의 삶은 이미 돌봄의 문화에 의존하고 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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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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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에게는 그렇게 까마득한 고독 속으로 굴러떨어져야 겨우 나를 지킬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 그런 구덩이 안에서 저 혼자 구르고 싸우고 힐난하고 항변하며 망가진 자기 인생을 수습하려 애쓰다보면 그를 지켜보는 건 머리 위의 작은 밤하늘뿐이라는 것. -은하의 밤- - P27

영화를 보다 밖으로 나와도 해는 중천이었고, 그렇게 손잡고 가는 길에 할머니는 인생에 필요한 경계랄까 교훈이랄까 하는 것들을 진지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말은 "너무 상한 사람 곁에는 있지 말라"는 것이었다. 꿈을 잃지 마라,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 돼라, 근면하라처럼 흔한 당부가 아니라서 인생의 아주 비밀스러운 경계를 품은 듯 느껴졌다.
그리고 대개 교훈들은 실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가 행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실수, 너무 상한 사람 곁을 지키고 말 것을 암시하고 있기도 했다. -데이, 이브닝, 나이트- - P69

예비된 성과가 있다는 것은 따뜻한 차 한잔처럼 노상 몸과 마음을 뭉근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여름이 끝날 때까지 소봄은 동생과 싸우지 않았고 혼자만의 술자리도 주종을 바꿔 맥주 정도로 가볍게끝냈다. 뭔가 삶 자체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적당히예열된 차를 부드럽게 액셀을 밟아 몰듯 자기 삶을 운전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생겼다. -첫눈으로- - P207

저는 영 나쁜 인간이에요.
메시지를 보내고 기다리는 동안 소봄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소봄은 닮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취한 채로 돌아온 아빠가 현관 계단을 다 올라오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엉엉 울곤 했다는 건, 그 편으로 난 방을 가진 소봄만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 여덟개의 계단을 오르지 못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 안타깝게도 술꾼들은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 이윽고 지민에게서는 한잔하셨네, 하는 답이 돌아왔다. 돌아왔다. 소봄씨가 왜 나빠, 그런 건 아닐 거야 하는.
아니에요, 피디님이 어떻게 알아요? 뭘 알아요?
또 시작이네, 알아.
아니, 몰라요.
어허, 어디야?
정작 지민이 그렇게 묻자 소봄은 더이상 대답을 하지않고 눈물을 닦고 일어섰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눈이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치 누군가의 머리 위로 죄 사함을 선언하듯 공중에서 끝도 없이 내려오는 그 눈송이들이. 그것은 비와 다르게 소리가 없고 쌓인다는 점에서 분명한 아우라가 있었다. 그렇게 걷는 동안 소봄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반짝이며 지민의 말이 계속되었다. 소봄은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혼자만의 힘으로 그날의 밤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이 잃은 사람에게 전해주던 그 기적 같은 입김들이 세상을 덮던 밤의 첫눈 속으로. -첫눈으로-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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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력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 커먼즈, 사회적경제, 자치와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국가와 정치의 전환
존 레스타키스 지음, 번역협동조합 외 옮김 / 착한책가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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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왜 정치를 다시 시민들의 손으로 돌려보내야 하는지, 왜 정치의 목적을 다시 바로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치는 궁극적으로 믿음의 행위이다. 누군가의 선택이 의미 있고 누군가의 행동이 중요하다는 확신이다. 정치라는 행위에는 인간의 집합적 삶의 양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사회는 계속 진화하며, 이 진화의 방향과 목적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라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위계구조와 엘리트통치는 인간사 전반에 거대한 흔적을 남겼고, 이 흔적을 거스르기 위해 행한 정치는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 권력과 특권을 누려온 절대자들에 대한 반란이었다. 우리가 논의한 정치, 특히 민주주의는 시민이 권력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고, 권력이 특권층의 장난감이 아닌 우리의 집합적 삶을 위한 수단이 되게 한다. 민주주의는 인간사에서 혁명을 일으킨 개념이고 특권을 가진 자들이 환영하지 않는 개념이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인간 본성에 관한 개념, 즉 인간 본성은 필연적으로 사회적이어서 개인은 자기 삶의 목적을 집단과 타인과의 동반자적 관계 속에서만 실현할 수 있다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정치는 개인과 일부 집단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행복과 안녕에 관한 것이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과 목표는 공공선이다. 정부의 정당성, 그리고 국가 자체의 정당성은 이 공동의 목표가 달성되는 수준에 달려있다. 결국, 공공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사회라고 명명했던 정치 공동체 전체의 적극적인 참여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인간사회는 언제나 협력과 경쟁 사이의 긴장, 엘리트의 약탈적 행동과 이러한 약탈행위로부터 모든 사회가 스스로를 지켜내야할 의무 사이의 갈등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민주주의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또한 이 싸움에는 마침표가 없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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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력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 커먼즈, 사회적경제, 자치와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국가와 정치의 전환
존 레스타키스 지음, 번역협동조합 외 옮김 / 착한책가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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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연합주의는 자유 사회의 근간으로서 보편적인 직접민주주의를 옹호하고 국가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민주적 자치정부는 포용적이고(인종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민주적 권리를 부여한다) 평등주의적이며(특히 젠더 평등과 완전한 시민으로서의 여성 해방에 적용된다), 자율적이고(공동체의 자치권을 인정한다), 생태적이다(인간 사회와 자연의 상호의존성 및 자연 보호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이러한 원칙들은 북동시리아 자치정부의 거버넌스 체계의 틀을 규정하고 이 지역의 헌법인 사회계약Social Contract에 포함되어 있다.
민주연합주의에서 ‘국민‘이라는 개념은 전적으로 민주적 시민권의 실천에 기반한다. 그것은 인종이나 언어 또는 실제로 어떤 다른 형태의 집단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집합체로서의 일반적인 국민 개념과 분리된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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