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 내가 내 몸에 한, 내가 목청껏 동의한다고 외치는 내 선택이라는 점이다. 나는 이렇게 내 몸에 표시를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내 몸의 주인이 된다. - P209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고 나를 충분히 사랑해줄 수도 없는 여자들과 데이트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결핍으로 똘똘 뭉친 상처 덩어리였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조차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자신도 인정하지는 못했지만 나에게는 다분히 감정적 마조히즘이라 할 수 있는 패턴이 생겨났다. 일부러 극적인 관계에 나를 던져넣거나 나를 어떤 종류건 희생자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반복했다. 그런 행동과 감정은 나에게 굉장히 익숙하고, 또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무언가였다. - P262
나 역시 다양하고 희한한 방식으로 끔찍한 사람이었다. 이런 관계에서 동일하거나 아니면 더 큰 과실이 있는 사람은 나였다. 나는 너무 불안정했고 애정에 굶주려 있었고 내가 사랑을 받는다는, 내가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받아야만 했다. 그 확신을 얻기 위해서 상대의 감정을 내 뜻대로 조종하려 하기도 했다. 여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어리석은 판단을 자주 했는데 내가 여자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환상을 열심히 키워왔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남자가 상처를 줄 수 있는 방식과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어떤 여자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만 하면 나는 즉각 반사적으로 화답했다. 사랑에 빠진다는 개념과 사랑에 빠지는 그 위험한 덫에 수시로 걸려들었다. 누가 나를 원해야 했고 필요로 해야 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내가 욕망하는 것의 극히 일부도 줄 생각이 없거나 줄 수 없는 여자들과 얽히게 되었다. 또는 내 쪽에서 상대가 욕망하는 것의 극히 일부도 줄 생각이 없거나 줄 수 없기도 했다. - P266
좋은 사람과 사귀고 있을 때도 나 자신을 위해 상대와 맞서는 것은 힘들었다. 불만을 표현하거나 싸우고 싶어도 싸우지 못했는데 나는 이만큼 뚱뚱하다는 이유 하나로 이미 얇은 얼음판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게 필요한 것, 내가 받아야 마땅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어려웠고 그래서 요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괜찮은 양 행동했으나 사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옳지 않은 일이었다. 이 패턴을 바꾸어보려고 무척이나 노력했고 내가 하는 선택들과 선택의 이유를 냉정히 지켜보기도 했다. 관계가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안심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도 좋은 점들이 있다. 나는 착하고 재미있고 빵도 잘 굽는다. 나는 더 이상 그저 그런 사람들이나 나를 노골적으로 막 대하는 사람들을 참아내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내 존재 모두를 걸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학생들에게 소설은 어떤 면에서건 욕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대체로 우리 욕망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게 마련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원하고 원하니까. 아, 우리는 얼마나 원하는가. 우리는 허기로 가득하다. - P272
그러다 보니 난 나 자신에게 더 엄격한 사람, 의욕 과다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더 잘하기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서 대체 나는 누구이고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에는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이런 습관은 나를 이상적인 장소에 데려다주지 않았다. 아니… 아무 곳에도 데려다주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며 자기 인식이 아니면 자기 인식과 닮은 무언가가 찾아왔고 이런 행동 유형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이 사람 앞에서 내가 너무나 노력해야 하지 않기를, 너무 많이 주고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서 이대로도 충분하기를 바라는 건 겁나는 일이기도 하다. 당신이, 지금 그대로의 당신 모습이 앞으로도 계속 충분할 수 있으리라 믿는 건 겁나는 일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늘 불안한 점이 있다. "그러다 잘 안되면?"이라는 질문이 언제나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니며 괴롭힌다. 내가 앞으로 영원히 이대로 충분치 못하면 어쩌지? 내가 어떤 사람에게 영영 충분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어쩌지? - P284
2014년 10월 전까지는 더 잘하려고 녹초가 되도록 밀어붙였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녹초가 되어버렸고 그래도 끈질지게 밀어붙이고 또 밀어붙이며 나 자신을 슈퍼휴먼이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에는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마흔이 되면 몸이 먼저 말한다. "그렇게 안 해도 돼. 자리에 앉아. 야채도 먹고 비타민도 먹어야지." 발목이 부러진 이후의 삶에 대한 자각의 순간이 찾아왔다. 아마 그중에서도 가장 심오한 깨달음은 치유란 그다지 거창한 것이 아니고, 먼저 내가 내 몸을 돌보고 나의 몸과 더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는 것이란 사실일 것이다. - P317
내 몸과 이 몸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했던 경험은 나의 페미니즘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바꾸었다. 내 몸에서 산다는 일은 다른 사람을 향한 공감과 동정의 범위를 넓혀주고 다른 사람들 몸의 진실에 대해 알게해준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다양한 신체의 종류에 대한 용인을 넘은 포용과 인정의 중요성을 확실히 가르쳐주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내 몸의 존엄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더 신중한 단어인 사이즈란 말을 사용하는데, 나는 사이즈가 좀 되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될 수 있고 최소한 지난 20년 동안 그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나의 또 다른 정체성도 마찬가지였다. 이 몸이 불러오는 혼란과 수치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내 몸을 존중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 몸은 회복 탄력성이 크다. 내 몸은 모든 종류의 고통을 견딜 수 있다. 내 몸은 존재감이라는 힘을 제공하기도 한다. 내 몸은 강력하다. 또한 내 몸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몸이, 그 몸이 어떻게 각자 다른 능력을 갖고 이 세상을 어떻게 헤쳐가는지를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비만이 장애인 것은 몰랐지만 내 사이즈는 내가 특정 장소에 갈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한다. 나는 너무 많은 계단을 오를 수 없어서 항상 공간에 어떻게 접근할지 생각한다. 엘리베이터가 있을까? 무대까지 계단이 설치되어 있을까? 계단이 몇 단일까? 난간이 있을까? 이 질문들은 장애인들이 세상으로 나왔을 때 하게 되는 질문과 닮지 않았는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는지, 우리가 장애가 아닐 때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지를 알게 해준다. - P332
내 몸에 대한 고백록을 쓰면서, 내 몸에 대한 이런 진실들을 당신들에게 털어놓으며 나의 진실, 오직 나만 아는 나의 진실을 털어놓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사람들이 그다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일 수도 있다. 나 또한 듣기 불편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건대, 나는 여기에 내 심장을 펼쳐 보였고 여기에 그 심장이 남긴 자국이 남았다. 여기에서 당신에게 나의 강렬한 허기의 진실을 펼쳐 보였다. 마침내 여기에 연약하고 상처받고 지독하게 인간적인 나를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자유가 주는 해방감을 한껏 즐기고 있다. 바로 여기에 내가 무엇에 허기졌는지, 그리고 내 진실이 나로 하여금 무엇을 창조하게 했는지가 있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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