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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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문신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 내가 내 몸에 한, 내가 목청껏 동의한다고 외치는 내 선택이라는 점이다. 나는 이렇게 내 몸에 표시를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내 몸의 주인이 된다. - P209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고 나를 충분히 사랑해줄 수도 없는 여자들과 데이트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결핍으로 똘똘 뭉친 상처 덩어리였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조차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자신도 인정하지는 못했지만 나에게는 다분히 감정적 마조히즘이라 할 수 있는 패턴이 생겨났다. 일부러 극적인 관계에 나를 던져넣거나 나를 어떤 종류건 희생자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반복했다. 그런 행동과 감정은 나에게 굉장히 익숙하고, 또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무언가였다. - P262

나 역시 다양하고 희한한 방식으로 끔찍한 사람이었다. 이런 관계에서 동일하거나 아니면 더 큰 과실이 있는 사람은 나였다. 나는 너무 불안정했고 애정에 굶주려 있었고 내가 사랑을 받는다는, 내가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받아야만 했다. 그 확신을 얻기 위해서 상대의 감정을 내 뜻대로 조종하려 하기도 했다. 여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어리석은 판단을 자주 했는데 내가 여자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환상을 열심히 키워왔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남자가 상처를 줄 수 있는 방식과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어떤 여자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만 하면 나는 즉각 반사적으로 화답했다. 사랑에 빠진다는 개념과 사랑에 빠지는 그 위험한 덫에 수시로 걸려들었다. 누가 나를 원해야 했고 필요로 해야 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내가 욕망하는 것의 극히 일부도 줄 생각이 없거나 줄 수 없는 여자들과 얽히게 되었다. 또는 내 쪽에서 상대가 욕망하는 것의 극히 일부도 줄 생각이 없거나 줄 수 없기도 했다. - P266

좋은 사람과 사귀고 있을 때도 나 자신을 위해 상대와 맞서는 것은 힘들었다. 불만을 표현하거나 싸우고 싶어도 싸우지 못했는데 나는 이만큼 뚱뚱하다는 이유 하나로 이미 얇은 얼음판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게 필요한 것, 내가 받아야 마땅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어려웠고 그래서 요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괜찮은 양 행동했으나 사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옳지 않은 일이었다.
이 패턴을 바꾸어보려고 무척이나 노력했고 내가 하는 선택들과 선택의 이유를 냉정히 지켜보기도 했다. 관계가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안심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도 좋은 점들이 있다. 나는 착하고 재미있고 빵도 잘 굽는다. 나는 더 이상 그저 그런 사람들이나 나를 노골적으로 막 대하는 사람들을 참아내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내 존재 모두를 걸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학생들에게 소설은 어떤 면에서건 욕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대체로 우리 욕망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게 마련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원하고 원하니까. 아, 우리는 얼마나 원하는가. 우리는 허기로 가득하다. - P272

그러다 보니 난 나 자신에게 더 엄격한 사람, 의욕 과다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더 잘하기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서 대체 나는 누구이고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에는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이런 습관은 나를 이상적인 장소에 데려다주지 않았다. 아니… 아무 곳에도 데려다주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며 자기 인식이 아니면 자기 인식과 닮은 무언가가 찾아왔고 이런 행동 유형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이 사람 앞에서 내가 너무나 노력해야 하지 않기를, 너무 많이 주고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서 이대로도 충분하기를 바라는 건 겁나는 일이기도 하다. 당신이, 지금 그대로의 당신 모습이 앞으로도 계속 충분할 수 있으리라 믿는 건 겁나는 일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늘 불안한 점이 있다. "그러다 잘 안되면?"이라는 질문이 언제나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니며 괴롭힌다. 내가 앞으로 영원히 이대로 충분치 못하면 어쩌지? 내가 어떤 사람에게 영영 충분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어쩌지? - P284

2014년 10월 전까지는 더 잘하려고 녹초가 되도록 밀어붙였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녹초가 되어버렸고 그래도 끈질지게 밀어붙이고 또 밀어붙이며 나 자신을 슈퍼휴먼이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에는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마흔이 되면 몸이 먼저 말한다. "그렇게 안 해도 돼. 자리에 앉아. 야채도 먹고 비타민도 먹어야지." 발목이 부러진 이후의 삶에 대한 자각의 순간이 찾아왔다. 아마 그중에서도 가장 심오한 깨달음은 치유란 그다지 거창한 것이 아니고, 먼저 내가 내 몸을 돌보고 나의 몸과 더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는 것이란 사실일 것이다. - P317

내 몸과 이 몸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했던 경험은 나의 페미니즘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바꾸었다. 내 몸에서 산다는 일은 다른 사람을 향한 공감과 동정의 범위를 넓혀주고 다른 사람들 몸의 진실에 대해 알게해준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다양한 신체의 종류에 대한 용인을 넘은 포용과 인정의 중요성을 확실히 가르쳐주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내 몸의 존엄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더 신중한 단어인 사이즈란 말을 사용하는데, 나는 사이즈가 좀 되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될 수 있고 최소한 지난 20년 동안 그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나의 또 다른 정체성도 마찬가지였다. 이 몸이 불러오는 혼란과 수치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내 몸을 존중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 몸은 회복 탄력성이 크다. 내 몸은 모든 종류의 고통을 견딜 수 있다. 내 몸은 존재감이라는 힘을 제공하기도 한다. 내 몸은 강력하다.
또한 내 몸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몸이, 그 몸이 어떻게 각자 다른 능력을 갖고 이 세상을 어떻게 헤쳐가는지를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비만이 장애인 것은 몰랐지만 내 사이즈는 내가 특정 장소에 갈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한다. 나는 너무 많은 계단을 오를 수 없어서 항상 공간에 어떻게 접근할지 생각한다. 엘리베이터가 있을까? 무대까지 계단이 설치되어 있을까? 계단이 몇 단일까? 난간이 있을까? 이 질문들은 장애인들이 세상으로 나왔을 때 하게 되는 질문과 닮지 않았는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는지, 우리가 장애가 아닐 때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지를 알게 해준다. - P332

내 몸에 대한 고백록을 쓰면서, 내 몸에 대한 이런 진실들을 당신들에게 털어놓으며 나의 진실, 오직 나만 아는 나의 진실을 털어놓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사람들이 그다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일 수도 있다. 나 또한 듣기 불편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건대, 나는 여기에 내 심장을 펼쳐 보였고 여기에 그 심장이 남긴 자국이 남았다. 여기에서 당신에게 나의 강렬한 허기의 진실을 펼쳐 보였다. 마침내 여기에 연약하고 상처받고 지독하게 인간적인 나를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자유가 주는 해방감을 한껏 즐기고 있다. 바로 여기에 내가 무엇에 허기졌는지, 그리고 내 진실이 나로 하여금 무엇을 창조하게 했는지가 있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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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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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거의 1년간 피닉스에서 살았다. 나는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고 제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살아야 된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냥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오랫동안 나인 척했던 그 착한 소녀는 절대로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을 했다. 이제 전 과목 만점을 받는 학생인 척할 필요도, 성적에 신경 쓸 필요도, 좋은 딸인 척할 필요도, 좋은 무엇인 척할 필요도 없었다. 이전의 삶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 온전한 백지 상태가 될 수 있었다. 나를 재창조할 수 있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온갖 종류의 위험을 감수하며 막장인생으로 살 수 있었다.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알아온 모든 것 사이에 점점 깊게 벌어지고 있던 그 틈을 완성할 수도 있었다. - P117

이제 40대가 되어서야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인정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직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심이 날 괴롭히기도 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혐오에 힘없이 굴복하며 살았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사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과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긍정하는 그 단순한 기쁨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나이가 들었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덜 신경 쓰게 되었다. 그 모든 발전 없는 자기혐오에 지쳐버렸고, 내가 나를 싫어했던 이유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나 자신을 싫어하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길거라고 추측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뚱뚱한 몸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당연히 자기혐오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듯한 세상이 지긋지긋해졌다. 그보다는 모든 불쾌한 소음을 차단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때와 20대 내내 저질렀던 실수를 용서하기로 노력하는 편이, 그 실수를 저지른 나에게 동정심을 갖는 편이 훨씬, 훨씬 더 쉽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나 자신을 바꾸고 싶지 않다. 내 외모를 바꾸고는 싶다. 기운이 좀 있는 날에는, 투쟁심을 발휘하여 세상이 나의 외모에 반응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진짜 문제는 내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운이 없는 날에는, 내 인격, 즉 나라는 사람의 본질과 내 몸을 어떻게 분리해야 하는지 잊어버린다. 이 세상의 잔인함으로부터 나를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 P173

이 몸으로도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길 바라지만 아직은 갖지 못했고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아니, 그것에 가까워지리라 생각한다. 용감한 기분이 드는 날에는 그렇다. 그런 날에는 마침내, 내가 축적해왔던 이 보호막을 조금은 덜어낼 수도 있고 앞으로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나는 젊지 않지만 아직 늙지도 않았다. 아직도 많은 삶이 남아 있고 아, 제발 지난 20여 년 동안 해왔던 것과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다.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다. 자유로워지고 싶다. - P179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에 지나치게 예민하지만 늘 이런 식이 되어야할 때는 화가 나고, 내 주변 사람들이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에 무심할 때면 순수한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질투심 때문에 미칠 것 같다. 그들이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싫다. 그들은 원하는 속도대로 걸을 수 있다. 팔걸이에 팔을 아무렇게나 걸칠 수 있다. 어디에 있든 꾸물거릴 수 있고 팔다리를 펼 수 있고 어깨로 밀칠 수 있다. 매 순간 자신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않아도 되고 잠시 멈춰 자신이 차지하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민다. 그들은 자신이 차지하는 공간에 대해 느긋하게 생각하는데, 내게는 그것이 악의적이고 이기적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에 있든 내가 어디에 서 있게 되고 어떻게 보이게 될지 질문해봐야 한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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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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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내 몸을 괜찮게 여기고 잘 지내는 척하면 매우 쉬울 것이다. 내 몸을 내가 미안해하고 설명을 해야 하는 무언가로 보지 않는다면 좋을 것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이고 여성을 비현실적인 이상에 구겨 넣으려 하는 천편일률적인 미의 기준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다양한 체형을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의 미의 정의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여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세세한 부분까지 바꾸려 들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가치는 내 옷의 사이즈나 외모에 있지 않다고 믿고 있다(믿고 싶다).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악의적인 문화,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통제하려 하는 문화 안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내 몸이나 내 몸이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것에 대한 비합리적인 기준에 저항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내가 아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 이 두 가지는 매우 다르게 작동한다. - P36

나는 종종 내게 일어난 일을 일부러 빙빙 돌려서 모호하게 쓰곤 한다. 그것이 그날로 다시 돌아가는 것보다, 모든 것의 서두가 된 그 일로 되돌아가는 것보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직면하기보다는 확실히 더 쉽다.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내 책임도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쉽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 일에 내가 책임이 있다고 느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내가 대처한 방식도, 내 침묵도, 내 폭식과 내 몸에 내가 저지른 일도 나의 과오라고 느낀다. 과거를 일부러 모호하게 썼던 이유는 그런 식으로 나를 방어하고 정당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부 드러내버리는 건 너무나 두려워서 피했다. 내가 겁쟁이이고, 두려움 많고, 나약하고, 인간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 P57

‘그가 말했다/그녀가 말했다‘ 때문에 이 세상의 너무나 많은 피해자(혹은 생존자, 당신이 이 용어를 선호한다면)가 앞으로 나서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무나 자주 ‘그가 말했다‘가 더 중요하게 취급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아는 진실을 삼켜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삼키고, 그렇게 하면서 진실은 변질된다. 변질된 진실은 감염처럼 몸에 퍼져나간다. 우울증이 되고 중독이 되고 집착이 되며, 그 밖에도 그녀가 말할 수도 있었고 말해야만 했으나 하지 못했던 그 말은 침묵이라는 독이 되어 다양한 육체적인 증상으로 확대된다. - P64

내 비밀을 삼키면서 내 몸은 부풀고 또 부풀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숨을 수 있는 방법, 절대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밥을 주는 방법, 상처를 멈추고자 하는 이 갈급함을 채울 방법을 찾아냈다. 나 자신을 더 크게 만들었다. 나를 더 안전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감히 접근하려고 하는사람이 오지 못하게 확실한 선을 그었다. 나와 가족 사이에도 선을 그었다. 나는 가족의 일부였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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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 모든 몸의 자유를 향한 투쟁과 실패의 연대기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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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위험에 처한 몸, 변화의 힘으로서의 몸에 대한 책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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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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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심리적 허기가 골격을 이루면서, 자아개념과 어떤 형태의 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다. 여성에게는 더욱 절실한, 고통스러운 질문이다. 페미니스트는 이중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 반대의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늘 협상과 자기 검열의 긴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페미니스트에게 몸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 책을 읽고 직면했다. 내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수용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찬 여자라는 사실을. -추천사, 정희진-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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