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거의 1년간 피닉스에서 살았다. 나는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고 제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살아야 된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냥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오랫동안 나인 척했던 그 착한 소녀는 절대로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을 했다. 이제 전 과목 만점을 받는 학생인 척할 필요도, 성적에 신경 쓸 필요도, 좋은 딸인 척할 필요도, 좋은 무엇인 척할 필요도 없었다. 이전의 삶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 온전한 백지 상태가 될 수 있었다. 나를 재창조할 수 있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온갖 종류의 위험을 감수하며 막장인생으로 살 수 있었다.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알아온 모든 것 사이에 점점 깊게 벌어지고 있던 그 틈을 완성할 수도 있었다. - P117
이제 40대가 되어서야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인정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직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심이 날 괴롭히기도 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혐오에 힘없이 굴복하며 살았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사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과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긍정하는 그 단순한 기쁨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나이가 들었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덜 신경 쓰게 되었다. 그 모든 발전 없는 자기혐오에 지쳐버렸고, 내가 나를 싫어했던 이유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나 자신을 싫어하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길거라고 추측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뚱뚱한 몸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당연히 자기혐오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듯한 세상이 지긋지긋해졌다. 그보다는 모든 불쾌한 소음을 차단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때와 20대 내내 저질렀던 실수를 용서하기로 노력하는 편이, 그 실수를 저지른 나에게 동정심을 갖는 편이 훨씬, 훨씬 더 쉽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나 자신을 바꾸고 싶지 않다. 내 외모를 바꾸고는 싶다. 기운이 좀 있는 날에는, 투쟁심을 발휘하여 세상이 나의 외모에 반응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진짜 문제는 내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운이 없는 날에는, 내 인격, 즉 나라는 사람의 본질과 내 몸을 어떻게 분리해야 하는지 잊어버린다. 이 세상의 잔인함으로부터 나를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 P173
이 몸으로도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길 바라지만 아직은 갖지 못했고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아니, 그것에 가까워지리라 생각한다. 용감한 기분이 드는 날에는 그렇다. 그런 날에는 마침내, 내가 축적해왔던 이 보호막을 조금은 덜어낼 수도 있고 앞으로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나는 젊지 않지만 아직 늙지도 않았다. 아직도 많은 삶이 남아 있고 아, 제발 지난 20여 년 동안 해왔던 것과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다.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다. 자유로워지고 싶다. - P179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에 지나치게 예민하지만 늘 이런 식이 되어야할 때는 화가 나고, 내 주변 사람들이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에 무심할 때면 순수한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질투심 때문에 미칠 것 같다. 그들이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싫다. 그들은 원하는 속도대로 걸을 수 있다. 팔걸이에 팔을 아무렇게나 걸칠 수 있다. 어디에 있든 꾸물거릴 수 있고 팔다리를 펼 수 있고 어깨로 밀칠 수 있다. 매 순간 자신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않아도 되고 잠시 멈춰 자신이 차지하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민다. 그들은 자신이 차지하는 공간에 대해 느긋하게 생각하는데, 내게는 그것이 악의적이고 이기적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에 있든 내가 어디에 서 있게 되고 어떻게 보이게 될지 질문해봐야 한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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