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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 실크로드 1200km 도보횡단기
김준희 글.사진 / 솔지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우즈베키스탄. 누구나 이름은 알고 있겠지만, 막상 그 나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떠올라 보려고 하면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처럼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지고 만다. 내 머릿속의 희뿌연 이미지에는 조금 더운 나라일 것 같아, 아랍권 일 것 같은 것만 같은 대책없는 믿음이 아른아른하다. 큰 눈과 짙은 눈썹을 지닌 미인들이 살고 있을 것도 같다. 41일 동안 우즈베키스탄의1200km를 오직 도보로만 여행을 한 작가는 '고생하기 위해서'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전의 여행이 너무나도 편하게만 다닌 것 같아, 여행 작가로서의 남모를 부끄러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그것도 사막을 건너가려는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이 책의 아쉬운 점울 먼저 들어보자면, 여행기 특유의 멋진 사진을 구경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군데 군데 여행하면서 찍은 풍경들과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진이 실려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전문 사진 작가가 동행한 여행이 아니어서 그런지(또는 작가분이 사진에 큰 흥미가 없으신 분이신지) 7~8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컴컴한 사진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여행지로 끌어 들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싶다. 요즘 나오는 여행기들이 사진작가 못지않은 작가들의 사진 실력과 상큼한 편집, 눈을 쏙 끌어 당기는 참신한 제목들을 가지고 독자들을 유혹하는데 지나치게 옛날 식 편집의 책이 아닌가 싶다. 아울러 책 지면의 편집과 폰트 모양 역시 2009년의 책이라기 보다는 1989년의 책이라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옛 책을 그대로 재판한 듯한 느낌의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좋은 점을 말을 하자면, 이 책만이 갖는 내용 상의 차별점을 들 수 있겠다. 최근 여행에 관한 에세이들이 모두 마치 여행정보서적과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여기에 가면 이것이 맛있고, 저기에 가면 쇼핑하기가 좋고, 등의 정보를 줄줄 늘어 놓는다. 또는 그냥 타국에서 쓰는 개인적인 일기를 읽는 느낌이 든다. 그저 이국적인 장소에서 끄적여온 자신의 일기를 고대로 여행기라며 출판했다는 느낌이 드는 책은 읽기는 편하지만 사실 여행기로서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직업 여행가로서 힘든 여행지에서의 여행을 가벼운 배낭 하나로 부딪히며, 현지인의 집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과 보드카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거나, 한국으로 데려가 달라는 사람을 만나거나 하는 등 그 곳에서만 겪을 수 있는 그 곳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책 속에 속속 녹아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행지의 경험은 멋진 명소를 구경하고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즐겁게 쇼핑하는 것도 있겠지만, 어느 곳을 가도 그 곳도 사람 사는 곳. 많은 이들이 여행에서의 필수코스로 재래시장을 꼽는 이유 역시 그 곳 사람들의 생활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 냄새 나는 이 우즈베키스탄 도보 여행기는 독자로 하여금 이 책을 덮고 나면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사람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게 하여준다. 그 곳은 이름 낯선 여행지이기도 하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