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님이 별세 하루 전 자신의 마지막 에세이의 인쇄본을 받으셨다던데, 그의 벗인 김점선 화백도 3월에 이 책을 내놓고 3월에 세상을 등지셨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생의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완성하였다. 책을 쓰는 동안의 사진의 삶을 뒤돌아 보고 정리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이 잠시나마 그들을 이 땅에 발붙이고자 한 것일까? 

'점선뎐'이라는 제목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고보니 '춘향뎐' '심청뎐'할 때의 그 '뎐'이었다. 지금보다 수백년 전의 아낙들과 나의 삶이 다를 바 없다는 생각으로 지었다는 제목. 하지만 책 속에 들어난 그의 한평생 삶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독특한 그 만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평생을 남과 다르게 살고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 한 여성의 이야기이자, 한 예술인의 삶이 이 책 속에서는 오롯이 담겨 있다. 

어찌보면 괴짜로 보이는 김점선 화백의 삶은 어찌보면 너무나도 순수한 삶이라고도 보여질 수 있겠다. 남들 하는 대로 학교에 들어가고, 취직하고, 아이 낳고 사는 것이 아닌 삶, 기존의 사회의 질서를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 순응하는 삶을 거부하고 거친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자신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의미와는 타협할 줄 모르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미친년이라고 손가락질 해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이루고자,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자 미친듯이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고 그는 결국 한국을 대표하는 화백이 되었다.  그것도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을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지닌 화가가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접한 김점선 화백의 그림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숫자 정도였다. 하지만 책 속에서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젊은 시절, 중장년 시절의 사진만이 아닌 크고 작은 그의 작품이 가득차 있어서, 눈요기가 되어 주었다. 그가 자주 그리는 맨드라미, 오리, 말 그림은 책 속에서도 유난히 자주 등장하여 반갑기마저 하다. 

그가 남긴 그의 마지막 '전기'를 읽으면서,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의 작품이 그저 초등학생이 자유로이 그린 그림처럼 처음에는 보일지 몰라도, 오히려 그러한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간직하기 위해 그의 생애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이 쌓여왔는지를 가슴 절절하게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독특한 문체와 생각을 느낄 수 있는, 책을 읽으면서 가슴에 와 닿았던 몇 구절을 적어 본다. 
 

* 그런 세월에 나는 백조왕자를 기억해냈다. 헝클어진 모습으로 미친 듯이 풀옷을 짜는 공주를 생각해냈다. 마녀라고 부르면서 변명을 요구하는 군중들을 생각해냈다. 그러면서 그 침묵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 몰두를 같이 기억해냈다. 그렇다. 말없이 몰두하는 것이다. 말없이 열심히 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 그림이 완성되면 세상이 내게 건 마술도 풀릴 것이다. 나는 그런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다. 


* 대학시절 나는 늘 생각했다. 등록금은 이화여대에다 내지만 나는 세계 속의 대학생이다. 나는 월드와이드 한 표준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 공부할 목표를 세우고 혼자서 실천해나갔다. 초서나 보카치오 같은 고전 작가의 작품도 스스로 찾아서 읽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적인 영웅주의자였다. 밤마다 지구 위에 나를 세워놓고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나를 향해 질문해대는 상상을 하면서, 그것에 대해 대답하는 자신을 감상하면서 잠들곤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