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에타

헨리에타
마틴 클루거 지음, 장혜경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9년 3월

여자들에게 많은 것이 주어지지 않은 세계에, 지나치게 뛰어난 두뇌를 타고 태어났고, 그 두뇌를 매 순간 자극시키는 환경에서 자라게 된 것은 헨리에타라는 한 여성에게 과연 불행이었을까, 행복이었을까? 제국의 첫 여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독학으로 지식을 쌓아나가고, 자신의 성을 숨기면서까지 배움에 임했던 그녀는 결국 그녀의 꿈을 다음 세대로 넘겨 주고 이루게 된다.

 

감성을 가득 채우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보편적인 일본 소설에 익숙해져 있었던 탓인지, 마치 전공 서적을 읽듯이 긴장을 한 순간이라도 놓으면 행간 사이의 활자 속에서 길을 잃게 만드는 이 책은 줄거리를 따라가기에도 내게는 벅찬 소설이었다. 그 복잡함이 나의 낮은 이해력 탓인지, 작가의 짖궃음인지, 아니면 번역서라는 필연성인지에 대해 깔깔한 고민을 마음 한 켠에 두고 읽어 내려가다가, 어쩌면 이 복잡하기 그지 없는 구성과 문장들이 헨리에타의 의식을 그대로 써내려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과 마음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정을 숨길 수 없는 그녀. 매 순간에 호기심과 자신의 현실에 대한 인지와 기억에도 없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왔다갔다하는 그녀의 복잡한 머릿속이 바로 무의식의 글쓰기처럼 원고지에 써내려갔다는 느낌이랄까. 그 안에서 독자들도 함께 한참 길을 헤매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에게 감화되고 그녀의 삶에 더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너무 넘쳐서 선택의 공황을 겪는 우리들에게, 헨리에타가 보여주는 간절함은 오히려 생경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 날것처럼 팔팔 뛰는 욕망의 결집체가 더없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굳이 허구의 인물이 헨리에타 뿐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 살아 숨쉬었던 수 많은 멋진 여성들이 자기 앞에 주어지지 않은, 허락되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걷기 위해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은 헨리에타의 그것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은 예전보다 조금은 더 편리해지고, 여성들도 많은 것을 구하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결핍은 절절한 욕구를 만들어 낸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요즘 시대의 친구들이 진정 하고 싶어하는 일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려나? 역사의 선배들이 힘들게 열어준 기회의 문 앞에서, 오히려 더 방황하고 있는 우리를 보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