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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의 루머의 루머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5
제이 아셰르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3월
평점 :
자살한 반친구에게서 보내온 카세트 테이프가 잔뜩 담긴 소포가 도착한다. 자신의 죽음에는 너도 관련이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를 자살로 몰 정도로 그녀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데 대체 무슨? 혹시라도 이 카세트 테잎을 다른 사람이라도 듣게 될까봐 두렵다. 그녀의 목소리로 녹음된 테이프를 하나씩 하나씩 듣는다. 내 이름이 과연 언제쯤 나올지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흐르면서도, 그녀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과 자살을 막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든다. 어쩌면 그녀는 내게 그때 도움의 손길을 뻗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감이 자꾸만 생긴다.
죽은 이에게서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한 우편물이란, 소설에서 꽤 매혹적인 소재인 듯 하다. 일본영화 '연애사진'에서 남자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여 주인공의 편지를 받으면서 그녀를 찾아 뉴욕으로 떠나듯, 이 소설이 남주인공은 죽은 여주인공이 남긴 목소리를 따라서 그녀가 이야기 하는 별 표의 장소를 하나씩 하나씩 찾아가며, 그녀의 기억과 감정을 공유한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같은 단어가 세 번씩이나 반복되어 이룬 이 독특한 제목과 자살이라는 키워드가, 작년 배우 고 최진실씨 사건과도 왠지 겹친다. 꼭 유명인들 경우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도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듣는다. 사실 루머나 뒷이야기는 본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보다도 왠지 모르게 더 신빙성이 간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 사실을 증명해줄 사람은 어쩌면 본인 밖에 없을 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우리는 본인의 이야기를 가장 믿지 않는다. 그로 인해서 그 루머의 가운데에 있는 루머의 주인공은 서서히 세상과 담을 쌓고, 최악의 방법을 선택할 때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 단정짓고, 자신의 그러한 판단만을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저 사람은 조금 가벼워 보여, 라던가,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 라던가 하면서 말이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불행이라던가 잘못된 이야기는 맛있는 뼈다귀라도 받은 멍멍이처럼 덥썩 물고 좋아한다. 빨리 남과 나누고 싶어서 입이 간질 간질 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 책은 루머가 미칠 수 있는 조용하지만 결국에는 눈덩이처럼 굴러가 점점 부피를 키워나가는 큰 파장을 한 여자 고등학생의 입을 빌어 조근조근 이야기 해준다. 그녀는 마지막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라는 이야기로 테잎을 끝마치지만, 오히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될 것이다. 상처를 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기억을 한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로 인해 상처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목소리가 닿지는 못하더라도 말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마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