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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 이야기 ㅣ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박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평점 :
유쾌하다. 더 없이 유쾌하다.
빌 브라이슨의 이름을 사실 처음 접한 것은 그의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작가의 여행기에 대한 광고 문구를 통해서였다. 알랭 드 보통,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와는 또다른 맛의 책이라면서...
그 때 문득 그가 궁금해졌다. 알랭 드 보통은 알겠고, 빌 브라이슨은 대체 누구? 라고
그리고 드디어 그와의 만남을 이 미국의 넓은 잔디색처럼 푸릇푸릇한 책을 통해 갖게 되었다. 미국인이지만 20년을 영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지내서, 이제는 이방인과 같은 느낌으로 고국으로 다시 돌아온 한 방랑벽 심한 여행작가의 소소한 불평 이야기가 책 처음부터 끝까지 쭉 늘어서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야기 한다. 아냐 난 그래도 이런건 좋다고 말했다고!!!!!!!!!! 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의 그런 불평이 너무 귀엽다. 소소한 거에 잘 구시렁 거리는 것이 나와도 조금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은 조금이라고 말을 하지만, 내가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 N은 '딱 너네'라고 말했다. 물론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가슴 속의 뜨끔함 까지 감추기는 어려웠다.) 사실 이 작가는 아마도 직접 만나보면 무척이나 소심하고 조용한 사람일 것 같다. 슥 지나가면 알아차릴 수 없는, 작가의 포스라기보다는 옆집 배나온 아저씨의 분위기를 폴폴 풍기는 작가일 것이다.
대형 창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가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수십 종류의 시리얼에 감탄하며 온갖 종류를 다 카트에 집어넣는 귀여움. 불평을 큰 소리로 말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소심하게 칼럼에다가 쏟아넣는 그의 모습. 읽으면서 어찌나 계속 킥킥 댔던지. 작가가 미국의 대단한 발명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싱크대에 딸린 음식물 처리기에 아내가 없는 틈을 타서 젓가락을 비롯한 온갖 것을 집어 넣어보며 놀고, 가족들은 모두 질겁을 하는 옛날 모텔을 찾아가서 혼자 기뻐하지만 결국은 쓸쓸히 체인점 모텔로 이동하는 모습 등등.
일상의 소소한 소재들을 발견하는 작가의 소심함!이 너무 놀랍다. 그리고 그런 작은 것들로 3페이지 씩이나 되는 칼럼을 채우는 수다스러움 또한 추가된다. 그리고 그 3페이지가 너무나도 재미있다는 것. 이런 칼럼이 우리나라 일간지에 실린다면 신문 구독수가 좀 늘어나려나? 책을 쭉 읽어 내려가다보니 나 역시 그의 칼럼처럼 책 서평을 쓸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라는 생각마져 들었다. 하지만 읽을 때는 마치 보이스 레코더를 앞에 두고 조잘 조잘 떠들어댄 수다들을 쉽게 옮겨 써내려간 쉬운 글 같지만, 그 만의 독특한 문체와 짧은 페이지 내에 탄탄히 짜여진 책의 구성은 사실 결코 쉽지 않다. 아니, 분명 어렵다.
이 책 한 권으로 나는 바로 그의 팬이 되어 버렸다. 그가 앞으로 책을 부디 많이 많이, 자주 자주 내주기를 바란다. 작가 설명을 보니 그동안 그가 낸 책은 10권이 채 안되고 이 중 번역이 된 것은 절반도 안되는 것 같아서 벌써부터 감질나는 마음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