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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은 에피쿠로스처럼 - 탐식이 괴로운 이들을 위한 음식 철학
안광복 지음 / 북트리거 / 2021년 10월
평점 :
'에피쿠로스'라는 말을 듣자마자 두가지가 나의 머리속을 지나갔다. 미식가를 뜻하는 말인 epicure그리고 '쾌락주의'였다. 이 두가지가 식탁에 쓰인다면 어떤 글들이 오갈까? <식탁은, 에피쿠로스처럼> 책은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쾌락주의를 처음 배웠을 때 나는 자칫 오해를 했었던 것 같다. 마치 YOLO처럼 인생은 한번이니 뒷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을 즐겨라 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쾌락이 아닐까 오해할 수 있으나,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은 <계산적 쾌락주의>를 뜻한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은 인생을 즐기되, 숙고하며 즐겨야한다는 것이고,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즐거움을 추구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그런 계산적 쾌락주의였던 것이다.
그런 그의 이름이 있는 이 책에서는 무엇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일까? 궁금증을 안고 책을 만난다. 책의 부제는 <탐식이 괴로운 이들을 위한 음식 철학>이다.
책에서는 철학자들마다 주장하는 섭생과 식사법이 소개되고 우리에게 마음을 다스르고 생활을 올바르게 하는 데 필요한 식습관이 무엇인지, 탐식이 왜 위험한지, 건강한 맛이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해 본다. 특히 음식과 사회문화, 철학자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연결하여 현 우리 사회. 우리 가정, 나의 식사 습관을 되돌아 본다.
"삼시 세끼를 어떻게 장만하여 어떻게 먹는지는 나의 삶을 가꾸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매번 사료 먹듯 끼니를 해치운다면, 내 삶 또한 가축의 그것과 비슷해질 것이다. 반면에 식사를 나의 몸과 생활을 보듬는 수단으로 여기며 매번 의식을 치르듯 한다면 삶은 어떻게 바뀔까?"<식탁은, 에피쿠로스처럼, p.44>
육아중이라는 핑계를 대며 매일같이 급하게 꾸역꾸역 쑤셔넣어 폭식을 하는 나의 잘못된 식습관이 부끄러워진다. 지식과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삶은 어쩌면 허영으로 이루어진 껍데기였는지도 모른다. 과연 나의 음식들은 나의 몸과 생활을 보듬고 있을까? 그마저도 요리하기 귀찮고 설거지가 귀찮다는 이유로 떼우고 마는 식사로 채워지는 나의 삶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먹는 음식 만큼이나 중요한 먹는 방식에 대해 고찰해보며, 우리가 먹는 음식들을 하나씩 살펴보니 현대 문명의 문제점이 드러난다는 것을 깨닫는다.
"신분제를 당연하게 여겼던 과거에는 품이 많이 드는 '전통'음식 속에 차별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먹는자들이 만드는 사람의 수고를 헤아릴 이유가 없었던 탓이다.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 먹는자들은 언제나 만드는 사람의 고생과 노력을 떠올리며 감사해야 한다. 때로는 먹고 싶어도 요리하는 이의 고생이 너무 크다면 욕구를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훌륭한 미식가는 입맛에도 배려를 담을 줄 안다."<식탁은, 에피쿠로스처럼, p.51>
명성왕후가 사랑했던 약고추장, 고추장에 꿀과 다진 쇠고기를 넣어 하루종일 볶아 쇠고기가 고추장 속에 완전히 녹아 들어간 고추장이다. 이렇게 품이 많이 드는 음식을 보며 작가가 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제사 음식을 생각해보게 된다. 요리하는 이의 고통, 요리하는 자를 갈아만든 음식, 만드는 이 따로 있고 먹는 이 따로 있는 관습은 현대 사회에서는 점차 사라져야 할 관습이라 생각된다.
"인간에게 있어 먹거리를 둘러싼 고민은 단순히 혀를 즐겁게 하고 건강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국의 침팬지 연구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에 따르면, 뭘 먹을지 선택하는 일은 나와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결정이다."<식탁은, 에피쿠로스처럼, p.70>
언젠가 구어져 나온 생선을 보고 아이가 생선의 벌린 입 앞에 밥알을 소복히 쌓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물고기야, 맘마먹자."
그리고나서 젓가락으로 해체된 생선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물고기가 부서졌어. 나는 물고기가 물 속에 있었으면 좋겠어."
아이의 눈으로 본 생선구이에서 본능적으로 아이들이 알고 있는 생명의 연결성을 생각하며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매끼 채식은 할 수 없더라도 하루 한끼라도 고기 없는 밥상을 꼭 내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우리는 결국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삶을 지탱할 수 있고, 그렇게 생명들은 또 서로 다 연결이 되어 있는 바, 지구 공동체의 엄연한 일원으로서 받아들이고 싶은 나의 작은 노력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채식에 대한 나의 가치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생명을 존중하는 식사는 내 앞에 있는 음식이 한때는 살아있는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데서 출발한다."<식탁은, 에피쿠로스처럼,p.83>
그 외에도 식탁이 비추어주는 시대정신, 갈수록 맥도날드화 되어가는 패스트푸드를 향한 인식, 모더니즘이 지배하던 정신 안에서 과연 음식은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신선하고 무섭도록 와닿았다.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감성과 개성을 중시한다. 합리성과 효율성이 중시되던 시대는 갔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식탁을 바람직하게 만들까 고민하며 음식이 주는 다방면의 가치를 찾아야만 한다.
*이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