탬버린 - 김유담 소설집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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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징글맞음이 경쾌하게 울린다!


김유담의 단편소설 <탬버린> 속 주인공은 대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회식자리에서 수 차례 탬버린을 흔들며 노래를 부른다. 오래 전 친구였던 송의 말을 떠올리며.

 

탬버린을 흔들 때마다 징글징글징글,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는 그 소리가 좋아. 나만 징글징글하게 사는 게 아닌 것 같아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청춘들의 애환을, 작가는 경쾌한 탬버린 소리에 녹여냈다. 노래방 기계에서 100점이 뜰 때까지 수 차례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죽어라 노력해서 대학에 가고 취업을 했는데도 삶은 여전히 ‘버텨내는 것' 이었기 때문에.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다. 경제적 궁핍을 원동력으로, 주인공들은 더 풍족한 미래를 그리며 열심히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작가는 현실의 장벽에 부딪힌 그들에게 결코 희망적인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다.

 <가져도 되는> 에서는 캠퍼스 커플의 결혼생활이 나온다. 남편 승규는 회사원, 아내 인희는 9급 공무원으로 집 대출금을 갚으며 아이의 학원비를 두고 설전을 벌이는 평범한 가정이다. 하지만 같은 과 퀸카였던 조명아의 청첩장을 받은 후, 인희와 명아의 삶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돈이 많았기 때문에 명아는 학창시절부터 당당했고, 현재는 잘나가는 심리상담사로 TV에 출연한다. 결혼식장에서는 아이까지 소란을 피우며 인희는 아름다운 신부 명아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부의 출발선이 다른 두 여성의 삶은, 영원히 좁혀질 수 없는 걸까.


서울에서 기본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 갖춰야 하는 조건들 앞에서 우리는 자주 좌절했지만, 어떻게든 버텨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기본의 기준이 가수록 버거워진다고 느끼고 있었다.” 


모든 소설들에 저마다의 결핍이 존재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임대아파트에 살며 유년시절에 겪었던 차별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화자 등. 괜찮은 대학에 들어가고, 어렵사리 취직이 되어 직장을 다니고, 또 누군가와 연애를 하는 모든 주인공들이 가진 사연은 마치 우리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소설 <탬버린>의 매력은 따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 징글징글한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때론 결핍에서 활력을 찾기도 한다.

<영국산 찻잔이 있는 집> 에서는 왕따 트라우마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소냐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동생 피티는 매사에 의욕이 없는 그녀가 자살을 할까, 항상 걱정하며 지내왔다. 하지만 피티가 실종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소냐는 오히려 피티를 찾기 위해 경찰서에 가기로 한다. 자신이 세워놓은 벽을 깨고 한 발짝 나아가는 삶을 택한 것이다.


쉴 새 없이 내게 말을 건네는 소냐에게 이전과는 달리 묘한 활력마저 느껴졌다. 소냐 또한 피티가 아는 모습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나락을 보여주는 소설들임에도, 나는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에 큰 위로를 얻었다.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청춘들에게, 위로가 되는 소설집 <탬버린>을 추천한다.


(*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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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아닌 것들로 별일이 됐던 어느 밤
민경희 지음 / 자화상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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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아닌 것들로 별일이 됐던 어느 밤> 이라는 에세이집을 읽었어요. 원래 자기계발서나 에세이집을 엄청 선호하지는 않는데, 선물 받아 오랜만에 펼쳤네요!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내가 느끼는 외로움, 질투, 허무함, 혹은 미련.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기에는 다소 눈치보이는 이런 감정들에 대해서요.

저는 오랜만에 이 책을 읽으며 작가와 위로를 나누는 느낌이었어요. 사람냄새 폴폴 나는 책이네요! 물 흐르는 듯이 유려한 필체와, 뛰어난 서사는 없지만 삶의 고민들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매력이 있어요.

따뜻한 문장, 사진찍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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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이단자들 - 서양근대철학의 경이롭고 위험한 탄생
스티븐 내들러 지음, 벤 내들러 그림, 이혁주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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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철학의 이단자들>

 

나는 철학에 있어 문외한이다.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들 중, 낯익은 이름은 데카르트, 홉스, 로크 정도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그리고 아이작 뉴턴은 내게 과학자로써 익숙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만화로 18명의 철학자들이 어떻게 서양 근대철학을 발전시켰는지 정말 쉽게 풀어 설명해준다. 물론 한 사상가의 심오한 이론서에 견줄 수는 없다. 하지만, 나 같은 초보 독서가들에게는 서양철학의 용어에 익숙해질 수 있는 좋은 입문서이다. 

 

많은 내용들이 압축적으로 들어 있어, 정리를 하며 책을 읽었다. 짧은 교양수업을 청강한 기분이었다. 우선, 데카르트는 기계론적 자연학을 주장하며,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다는 심신이원론을 펼쳤다. 그에 따르면 물체는 연장의 속성만 가질 뿐, 정신과 어떠한 공통점도 없다.

뒤이어 등장한 홉스는 정신도 물질이라며 데카르트를 비판했고, 정치적으로 절대 군주론을 주장한다. 스피노자는 신과 자연을 동일하게 보고,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하나로써 필연성에 의해 작동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홉스와 달리 최선의 정치제는 민주주의라는 입장이다. 이후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와 같은 형이상학적 이론을 펼쳤지만, 무한한 가능세계 중 이곳이 최선의 세계라는 면에서 결을 달리한다. 감관론을 주장한 로크와는 달리, 본유관념을 옹호했다.

로크는 홉스의 절대군주론을 비판하며, 다수 시민의 결정에 따른 국가의 존재와 자유의 보존을 주장했다. 그리고 보일의 영향을 받아 엄격한 경험주의를 지향하며 관념을 설명하고자 했다.

지배적인 데카르트의 철학이 깨진 건, 물체에 존재하는 감각적 성질과 자연학에서 힘의 작동을 설명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이후 공간과 물체를 독립적으로 분리하며 만유인력으로 여러 운동을 설명한 뉴턴의 자연철학이 등장하며 책은 마무리된다.

 

종교재판소에 갈릴레오를 세웠던 이들은 틀렸습니다 ... 도미니크회 수사들이 우연히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이단설을 발견했다면, 아이작 뉴턴 경은 다른 이단자들과 줄지어 걸어갔을 것입니다. 지옥복을 입고, 화형장으로. ”

 

당시 종교 박해에도 많은 철학자들의 목소리 덕분에 현재 정치, 과학, 그리고 인문학의 근간이 마련될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이 담긴 철학이라는 학문을,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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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순간들 - 박금산 소설집
박금산 지음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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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더 줄이지 못해 죄송합니다.” 플래시 픽션을 처음 접했기에 이보다 더 짧은 분량이면, 소설의 모든 구성이 들어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컸다. 놀랍게도 이 책의 단편들은 저마다 집중하는 순간이 다르다. 발단, 전개, 절정, 결말. 작가는 네 가지 구성에 맞추어 차례를 나누고, 자신의 소설을 분류해 둔다. 각 항목에 대한 설명도 어렵지 않게 적혀 있다.

 

 

발단

발단은 시작이 아니다 ...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에서 던지는 첫 공, 소설의 발단이다.”

 

<어떤 개의 쓸모>에서, 강아지 때문에 잦은 이불빨래를 한다던 주인공 남자는 사실 야뇨증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그래서 남자는 야뇨증이 해결될까? 이웃에게 들키진 않을까? 한 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읽은 후,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긴장감 있는 시작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설의 흥미를 던져주는 것. 그것이 소설의 발단이었다.

 

 

전개

좋은 전개는 그것을 따로 떼어놓았을 때 독자가 앞뒤를 상상하면서 흥미를 느끼게 한다.”

 

<소설을 잘 쓰려면>

이 단편은, 픽션이지만 작가가 소설쓰기를 희망하는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에세이같기도 했다. 첫 소설을 교수에게 비판받은 주인공이 이후 등단에 성공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너는 단편소설을 쓰고 싶었던 거잖아. 짧아져야 감동적인 거야.”

한 마디로 줄여 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설이다.”

 

줄기만 남겼을 때 디테일을 독자가 궁금해 하도록 소설을 써야 한다면, 그 줄기를 구상하기 위해 작가들은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듭했을까. 교수의 진심어린 조언을 들은 주인공은, 등단 이후 어떤 소설을 써내려갈까. 소설의 뒷이야기에 여러 궁금증이 들었다.

 

 

절정

좋은 절정은 그 자체로 너무 좋고 완벽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눈사람>

세 쪽의 스릴러. 폭설이 그친 후, 아빠는 아이와 눈사람을 만들러 나간다. 얼핏 보면 평화로운 부자지간으로 보인다. 하지만 배가 고프다는 아이의 말을 무시한 채, 아빠는 아이를 굴려 눈사람을 만든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손을 호호 불어 녹이며 눈을 움켜쥐었다. 그것으로 아이의 발자국을 덮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태연하게 살인 현장을 수습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충격과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결말

절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결말이 가장 좋은 결말이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다>

두 아이와, 거실의 아내가 잠든 모습을 지켜보는 화자. 처음에, 독자는 당연히 그가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자는 남편이 없었다, 집안 곳곳을 찾는다. 그리고 아내가 숨을 쉬는 걸 확인하며 안도한다. “그는 알게 되었다. 남편은 아내 곁에 있어야 남편이다.”

사라진 남편을 찾는 예상 밖의 화자의 행위에, 독자는 긴장하게 된다. 그리고 결말을 확인한 후, 긴장이 풀린 채 안도한다.

 

 

나는 25편의 플래시 픽션들을 통해 <소설의 모든 순간>을 생생히 느껴보았다. 짧은 소설인 만큼 강렬하게 잡아내는 순간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고, 좋은 소설들이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이유는 소설의 원칙을 성실하게 지키기 때문이란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진정한 기본이란 흔들리지 않는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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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웃음의 나라 - 문화인류학자의 북한 이야기
정병호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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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행복을 교시하는 나라’ 에 이런 문장이 있다.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며 소유보다는 경험, 경쟁보다는 관계가 중요하다.”

미디어에서 바라보는 북한은, 가난과 고난에 가득찬 모습 뿐이다. 하지만 부유함이 행복의 척도가 아닌 것처럼 북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을 우리의 시선에서 ‘불행하다’라고 단정짓는 건 섣부른 생각이었다. 북한의 평등주의와 장군님을 중심으로 한 국가적 가족관계가, 그들에게는 물질적 궁핍을 이겨낼 행복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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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남한 사회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문장이다. 그치만,
입시결과를 토대로 교육을 통한 계층구조가 유지되는 건 공공연한 일이고, 따라서 교육열도 심화되었다.

정말 모든 직업이 평등해, ‘교수 아들은 교수로, 농부 아들은 농부로’ 가 가능한 북한 사회가 굉장히 신기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평등이라고 칭해질 일이, 어느 국가에서는 평등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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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첫인상에서 나온 판단은 틀리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는 여러 단면이 존재한다. 극히 일부로 무언가를 규정짓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책을 읽은 후 북한에 대한 나의 생각 변화를 통해 깨달았다. 더불어 진정한 ‘행복’ ‘평등’ ‘자유’ 의 가치를 자본주의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는 없다는 걸, 우리가 무조건 정답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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