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철학으로 산다는 것
강영계 지음 / 해냄 / 2015년 9월
평점 :
요즘 들어 우리는 시대가 요구하는 인문학의 근저에서 너도나도 발담구고 혹여 나만 아무것도 몰라 뒤처지진 않을까 불안해하며 그 주위를 맴돈다. 그러면서도 정작 인문학이, 철학이 무언지 정의 내려 볼라치면 나조차도 별로 아는 게 없다. 그저 다른 이들이 써놓았다는 글을 통하거나 그것과 관련된 책을 본다든지 또는 유명한 강의라도 들어본다거나 아니면 주위 사람들과의 대화라도 한다든지 해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통해 내 나름대로 대충 어떤 것이려니 어림짐작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는지 알고 싶고, 현실은 어떤 것인지, 죽음은 또 어떤 것인지,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이 아름답고 추한 것인지, 왜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지 끊임없이 되묻곤 한다.
이 모두가 어쩌면 나 자신의 욕망에서 출발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욕망하며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하고 학습할 줄 아는 이성적 동물로 태어났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문명과 역사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그 역할을 수행하려는 이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현대사회를 살면서 자꾸만 불안에 떨고 우울감에 빠지고 권태로운 삶에 절망을 느낀다. 그런 삶 속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가 차분하고 여유롭게 인생을 즐길 수 있는지 이 책 '철학으로 산다는 것'은 스스럼없이 이야기해준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삶에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실상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매일 같은 삶을 살아가고 돈의 욕망을 좇아가며 또 다른 갑질을 위해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삶을 추구하면서 그런 희망에 미끄러져 곤두박질이라도 치게 되면 모든 것에 좌절과 우울감에 빠져 세상에 분노하고 있다. 이런 반복되는 삶에서 도대체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기독교든 불교든 모두 완전하고 절대적인 나와 지식의 자아를 소망한다. 그 소망의 밑바탕에는 자아가 불변하고 견고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그 믿음에는 자아를 굳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나 충동이 깔려있다.’ - 본문 중에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면서, 가장 큰 죄악을 범하면서 고통스러운 현상의 형태에서 생기는 것은 욕망이요 분노다. 그 분노가 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바가바드기타 III, 37) – 본문 중에서
욕망은 끝없이 채워도 채워지지 않은 빈 그릇이고 깨진 항아리이다. 우리는 이 그릇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욕망을 불러들인다. 그렇게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선 먼저 다른 이의 욕망이 제거되어야 한다. 그것이 기도를 하고 희망을 기원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결국 종교적인 문제에서까지도 우리는 평등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고의로 누군가를 짓밟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나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남을 짓밟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런 우리의 욕망을 잠시 내려놓을 때, 그 욕망을 없앨 때야 비로소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참된 자아는 무엇인가?
원래의 신앙의 본질인 참된 자아, 자기 성찰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이데아는 불변하며 필연적인 진리를 일컫는다. 그러나 니체의 표현대로 그들의 이데아는 영원불멸을 지향하였기에 허구적일 수밖에 없다. 스피노자는 그러한 진리의 근원을 욕망과 충동, 노력을 통해 마주할 수 있으며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드와 자아를 극복하여 초자아를 이룰 때 완성된다고 보았다. 결국 인간의 자아는 여러 가지 본능과 문화가 오랜 시간 순환을 거듭하며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고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완성될 수 있다.
그러나 삶이라는 게 결코 이분법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대부분의 우리의 삶은 모든 것이 참과 거짓, 희망과 좌절,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나뉘어 세상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아무리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눠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상의 논리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편승한다.
저자의 느림과 여유의 삶이란 인간이 과연 이성적인 존재인지, 정말 불변하는 영혼이나 정신을 가진 존재인지, 과연 인간에게 완전하고 절대적인 삶이 가능한지를 다원적인 각도에서 철저하게 물어보며 고뇌하는 삶이다.
중간 쯤 책에서 가장 내 마음을 탁 쳤던 말이 있다. 그것은 왜 배우는가이다.
저자는 '왜 배우는가? 답은 간단하다. 배운 것을 잊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다.'하고 했다.
삶의 도처에 우리는 배울 것이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지식으로 온몸에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내 안의 무언가는 비어있어야 또 다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교육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까..
그러나 무조건 외부의 지식만이 참된 것은 아니다. 내 마음과 지식을 하나로 조화롭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참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책에서 드는 철학자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 키르케고르를 필두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바움가르텐, 헤겔, 니체,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베르그송, 스피노자, 푸코, 공자, 장자 등등... 그들의 생각들과 이념들이 곳곳에... 비단 철학뿐만이 아니다. 미술, 산업, 전쟁, 역사, 그리고 불교, 기독교, 힌두교 이외에도 여러 종교적 해석과 함께 저자가 추구하는 고독과 번민을 벗어나기 위한 삶을 향해 우리가 가야하는 길을 적어놓고 있다.
삶의 다양성에 대한 모든 관점에서 이렇게 해박한 지식으로 읽기 쉽게 만들어 놓아서 그럴까? 두고두고 읽을 만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