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아 비바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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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아 비바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이순간의 나는 다음 순간을 기다리는 흰 공백이다. 시간을 갠다는 것 그것은 그저 최선의 추정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라지기 쉽고, 이는 우리에게 영원하고 불변하는 시간을 재도록 강요한다. 시간은 결코 시작하지 않았고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결코


책 '아구아비바' 에서는 '순간' 또는 '시간'에 대한 글이 자주 등장한다.

 

"이 순간은 있다. 내 글을 읽는 당신은 있다." 


늘 현재의 감옥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심장이 요동치는 횟수만큼 보이지 않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분주히 살아간다. 


눈에 보이는 것들/ '시계의 초침, 만져지는 손의 움직임, 깜빡이는 눈커풀, 돌아가는 선풍기의 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방 안에 들어 차있는 땅콩모양의 혼합기체, 심장의 요동, 몸 어딘가에서 소실되고 있는 세포, 방 안 가득 메우는 노랫소리의 신호전파' 그리고 저녁 무렵 손에 잡힌 책 한권으로 인해, 이 순간은 보이지 않는 그녀의 순간이 된다. 


"지금은 지금의 영역이다. 이 즉흥곡이 계속되는 한 나는 태어난다."


그녀가 산파하는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는 글들이 살아 있는 물(Água Viva)처럼 터져 나온다. 언어로 만든 홍수 속에 갇혀있다. 


'명징하게 알고 있는 세계가 무너졌을 때 그곳에서 우리는 철학을

시작하게 된다.' 


어떤 일들이 그녀의 세계를 무너뜨려고 다시 '무'로 돌아가, 쓰지 않으면

안되는 삶 속에서 홍수와 같은 글을 잉태했을까, 사실, 계속 책을 잡고

있노라면, 갈피를 잡지 못해 홍수 속에 허우적 거렸다. 하지만, 

문장 하나 하나 충격적이였으며, 사유하는 독서의 포만감으로 가득 찼다.  p156의 짧은 책이지만, 오래 책을 잡고 있었던 것 같다. 틀을 깨뜨리고 있는 그대로 느끼며 선을 없애면서, 그녀의 글로 인해 삶이 다채롭게 널리 퍼져나갈 수 있기를 지향할 수 밖에, 


그녀는 현재 브라질에서 '여성 카프카'라는 타이틀을 달고,

현대 브라질 문학의 상징처럼 자리잡았다. 또한 클라리시 작품을 읽고

영어로 번역하여 미국에 소개한 엘리자베스 비숍은 이렇게 말했다. 

"보르헤스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녀처럼 탁월하게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보편적인 독서가 기대하는 의미, 깨달음 형식과 구조를 파악하기 위함이 아닌, 삶의 절박함, 자유와 열정 끝없는 '나'의 확장을 느끼기 위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아구아비바' 를 읽어보시기를 권장드린다. 



이제 하루가 그 끝에 다다르고, 나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완전히충만하고 불가해한 상태에 접어든다. 그 다음엔 작은 새들을 가득 품은 푸른 새벽이 온다. 지금 내가 당신에게 한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겪는 일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 게 맞는지 궁그마다. 그리고 나는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붙잡아 두기 위해 기록한다. 


(책 속에서) 


나는 이해로부터 해방된 삶을 살게 해주는 나의 몰이해를 믿으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사는 것 스스로를 좀 더 무디게 만들기 위해 그만큼의 고통을 겪는 것 

더이상 세상의 슬픔들을 짊어지고 갈 수는 없으니까


카네이션을 어떻게 캔버스에 옮겨 심을까? 


밀짚꽃은 영원히 죽어 있다. 이 꽃의 건조함은 영원을 열망한다. 


튤립은 존재하기 위해 탁 트인 벌판을 필요로한다. 


창조가 나를 빠져나간다. 그리고 나느 많이 알고 싶지도 않다. 내 가슴 속에서 심장이 뛰는 것으로 충분하다. 


거울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형태는 그것을 제안하거나 바꾸지 못한다. 거울은 빛이다. 거울의 작은 한 조각이 언제나 거울 전체다. 


내 주제는 '순간'일까? 내 인생의 주제.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애쓰는 나는 무수한 시간을 흘러가는 순간들의 수만큼 나눈다. 나 자신처럼, 혹은 너무도 부서지기 쉬운 찰나들처럼 조각 내는 것이다. 


내가 쓰는 건 어떤 단일한 클라이맥스일까? 내 삶은 단일한 클라이맥스다. 나는 아슬 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시간의 원자를 갖고 싶다. 


나는 살아있는 굴에 레몬즙을 떨어뜨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굴이 온몸을 뒤트는걸 지켜보며 공포와 매력을 함께 느꼈다. 나는 살아있다. 그것을 먹고 있었다. 살아있는 그것은 신이다. 

나는 사람들이 내 깊은 곳에 레몬즙을 떨어뜨려 내 온몸이 뒤틀리도록 만드는 걸 원하지 않는다. 삶이 지닌 사심들, 그것이 굴에 떨어지는 레몬즙일까? 굴도 잠을 잘까 


이 순간은 있다. 내 글을 읽는 당신은 있다. 


나는 내 모든 걸 바쳐 당신에게 글을 쓰고 있으며, 나는 존재의 맛을 느끼고 '당신의 맛'은 순간처럼 추상적이다. 


모든 건 끝나지만, 내가 당신에게 쓰고 있는 것은 계속된다. 그것은 좋다, 아주 좋다. 가장 좋은 건 아직 쓰이지 않은 것이다. 행간에 있는 것 


내 비밀이란, 나는 오직 하나의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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큔, 아름다운 곡선 자이언트 스텝 1
김규림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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큔, 아름다운 곡선 - 김규림 


사람들은 모른다. 문제는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안드로이드는 멈출 수 있지만 사람은 스스로 마음을 멈출 수 없다. 


 이 이야기를 기고하게 된 배경은 1999년 일본 소니의 '아이보' 강아지 로봇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외형만 강아지 모양일 뿐인데, 사람들은 아이보를 진짜 강아지처럼 예뻐했고, 보듬었다. 아이보 모델이 단종되고 난 후, 고장이 나도 부품을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아이보를 버리는 게 아니라 전원을 꺼두었다. 그러고 보고 싶을 때 한번씩 켜서 아이보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 아이보가 고칠 수 없을 만큼 고장나면 장례식을 치러주고 온전한 부품은 다른 이용자에게 기증하기도 했다. 마치 장가기증 하듯이, 그렇게 기계일 뿐인 아이보를 진짜

반려견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아이보 사례를 본 작가는, 궁금해졌다. 언젠가 인간형 안드로이드 로봇이 나온다면, 아이보 이용자들이 그랬던 것 처럼 안드로이드를 대할까? 사랑을 주고 마음을 줄 수 있을까? 그런 물음의 끝에, 결국 시간 속 선을 그리며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2053년 김규림 작가의 세계로 들어간다. 


 주인공 '제이'는 로봇 공학자인 '아버지'와 인간형 안드로이드 로봇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유년시절 로봇이 진짜 '엄마'인줄 알고 자랐지만, 엄마 로봇의 기능 저하와 오작동으로 제이를 외부 침입자라고 인식하고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고 충격에 제이는 인공 팔을 이식하게 되었다. 그 일로 아버지와 관계가 단절 되어 버렸다. 


 제이의 아버지는 샴하트의 대표이다. 샴하트는 의뢰인의 요청을 받아 세상을 떠난 인물과 똑같은 모습의 로봇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회사다. 얼떨결한 사건으로 샴하트의 경영진이 된 '제이' 휴먼형 안드로이드 로봇을 판매하고 있지만, 정작 제이는 유년시절 엄마 로봇과의 사건으로 휴먼형 로봇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경영직을 맡은 제이는 중학교 동창 '유성운'의 권유로 안드로이드 로봇을 떠넘기듯 받아버렸고, 그 일이 '제이' 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그녀에게 온 안드로이드로봇 '큔', 강아지가 내는 소리를 닮은 '큔' 과 함께하는 나날이 많아질 수록 '입력값' 이 서로를 향하고 알 수 없는 감정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렇게 행복하고 당혹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중, '가짜는 파괴한다'라는 슬로건을 가진 휴먼형 안드로이드 개발을 반대하는 '오비시디' 라는 단체로부터 샴하트는 물론 경영진인 '제이'에게 위협을 가한다. 그 위협은 도를 지나치며 '큔'을 파괴하기 까지 이르는데, 결국 '제이'는 '큔' 을 무사히 지킬 수 있을까, 그녀의 감정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그녀의 결핍의 한 조각이였던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오해와 용서의 선은 서로에게 온전히 뻗을 수 있을까. 


sf소설을 좋아하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월E를 보고 베개를 적셨지만, 인간형 안드로이드 로봇은 아직까지 도덕적, 윤리적 문제때문인지 쉬이 공감하기란 어려웠다. 2024년 현재 노동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우리 생활 곳곳에 '기계' 들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노동을 대신해주는 것들이 과학의 발전으로 나아가 언제, 우리의 삶 속 또는 정신=감정 의 세계까지 가까워질지 모를 일이다. 한번쯤 이러한 미래를 상상해보고 대입해볼 수 있는 소설이 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였던 것 같다. 내가 '제이'라도 제이의 모든 행동 패턴을 습득하고 입력값 대로 나오는 '큔'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고 사랑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 


(책 속에서) 


나는 큔의 갈색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인간은 눈을 통해 상대방의 진심을 확인하려는 습성이 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큔의 눈동자에서 저말들이 진심에서 나온거란 증거를 찾으려 들었다. 왜냐면 진심이길 바랐으니까


당신은 미래에 빚진게 없어요 그런데도 미래에 벌어질 일을 미리 예상해서 채무라도 갚듯 현재의 기쁨을 희생하고 있네요. 그렇게 한다고 미래의 당신이 고마워할까요? 미래의 고통들은 해결돼 있을까요? 그러지 말아요.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요.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아파하고 그 대상이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간에요. 


인간들은 늘 그런 식이야 자신이 하기 싫은 걸 대신하는 기계를 만들어 내고 기계가 해내지 못하면 그건 인간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해버리지 


"인간이란 시간 위에 선을 그리는 존재에요. 이쩌다 선과 선이 만나고 한동안 같은 궤도를 그리며 겹쳐져요. 그때 거기서 섬광이 일어나요. 화학반응을 한 것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을 내죠. 그러다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어느날 다시 각자의 선을 그리며 갈라져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방향으로 궤도를 그리면서요. 저는 당신이 그린 선의 뒤를 따르는 선이에요. 그렇지만 제 선은 삐뚤빼뚤하죠. 당신이 오른쪽으로 휘어질 줄 모르고 뛰어가다 속도를 제때 늦추지 못하고 당신의 선을 놓치기도 해요. 그래서, 당신이 말해줬으면 해요. 당신의

감정이 어디로 휘어지는지 얼마만큼의 속도로 달려가는지 그러면 저는 당신의 선을 따라 아름다운 선을 그릴 수 있어요. 꽤 근사한 섬광을 일으킬 수도 있겠죠. 당신이 기회를 준다면요. 그러니,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가르쳐줘요.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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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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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 인생 주기에 맞춰 몇 번이고 마주치고 가끔은 절망하기도 하며 살아왔다. 윤주성은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과 경기도 대구 등지의 여러 병원에서 일했고, 우리는 1년에 한 두번씩 만나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만날 때 마다 매번 예열도 없이 바로 전투 수다에 돌입해, 어제 만난 것 같은 사이란 게 어떤 것인지 몸소 증명하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 내 옆에 앉은 윤주성의 얼굴을 그때와 비슷한 듯 조금 다르다. 현실의 30대 중반 윤주성은 그때에 비해 노화가 다소 진행된 모습이고, 결혼을 했으며, 자신을 전혀 닮지 않은 귀여운 아들까지 낳았다. 아마 내 얼굴 역시 뉴욕에서의 스무 살때와는 아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 몬토크 가서 소원 빌었잖아. 그때 니가 작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진짜? 내가 그랬다고?"

"어. 니가 똑똑히 그렇게 말했어. 내가 쓴 글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와 진짜 너무 소박해서 눈물이 다 날라카네." 

"그게 왜 소박하노. 대단한거지, 내 주변에서 꿈을 이룬 사람은 니밖에 없다."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글을 써서 돈을 벌 수만 있으면 되는 삶.

그것이 스무 살의 내가 간절이 꿈꾸던 삶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꿈꿔왔던 미래에 당도해 있다는 것을, 윤주성의 말로 인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울렁였다. 마치 오래전의 내가 오늘의 내게 작고 반짝이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놓은 그런 기분이였다. 


대도시의사랑법으로 알려진 박상영작가의 두번째 에세이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이다. 책 제목처럼, '번아웃', '휴식', '여행'을 테마로 삶의 허기와 공허함이 찾아올때, 그가 행했던 일들을 한 편의 시트콤같은 단편집으로 풀어낸 책이다. 단순히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이란 무엇일까?" 가 궁금해 손에 쥔 책이였다. 하지만, 한 챕터를 읽고 나서, '박상영' 이라는 작가를 검색하게 되었으며, 재치 넘치는 그의 글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고 있었다. 흔히 아는 '지붕뚫고하이킥' 같은 시트콤 같이, 처음 일어난 '발단'이 되었던 사건은 잊어버리고 어느새 클라이맥스가 되어 결국 실컷 웃다가 마지막 장을 덮었다. 


마치 오래전의 내가 오늘 내게 작고 반짝이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놓은 것. 


우리는 평소 나에게 어떤 선물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각종 스트레스와 미래의 불안을 가득 떠넘기고, 불안을 원동력 삼아 나를 채찍질 하고 있거나, 나를 무가치하다고 과소평가하며 자신을 외부의 아무것도 아닌 적으로부터 나를 감싸고 있지 않을까. 시간을 흘러보내고 나니, 진짜 위로를 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보태려고 바라려고 하지말고, '자신' 을 들여다보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휴식'을 주는 일. 타인에게 '상처' 받지 않게 스스로 사랑의 연고를 바르는 일. 그렇게하면, 이 권태로운 삶 속에서 나 자신을 갑자기 동 떨어진 곳으로 놓아버려야 할 것 같은 '가짜 여행' 을 하지 않아도, '평범한 일상' 에서부터 '삶의 존재'를 찾는 '진짜 여행' 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일은 어떤 반짝이는 돌멩이를 놓을지. '나'에 대한 앎과 삶에 대한 공부를 부지런히 해야겠지만 말이다. 


광주, 강릉, 유럽, 뉴욕, 가파도(...) 번아웃과 우울이 올때마다, 찾은 여행지에서 박상영 작가 주변엔  늘 '사람들' 이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재치와 유머러스한 입담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내일은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어야지" 휴식 천재를 꿈꿨지만, 결국 '대폭망 휴일담' 이 된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거나,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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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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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 유현준


✏ 사람의 생각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방법은 '공간' 이다. 공간은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2.7미터 천장고에서 공부한 학생보다 3미터 천장고에서 공부한 학생의 창의력이 두 배높게 나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 훌륭한 공간은 우리에게 '세상을 이렇게 보는거야'라고 가르쳐준다. 이 책에 수록된 건축물들은 모두 나에게 세상을 보고, 읽어 내고, 창조하는 법을 가르쳐준 공간들이다.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유현준 건축가의 책이다. 건축가이긴 하지만, 건축 외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으로, 건축물 속에서 공간을 이해하고 삶을 조망하는 시선이 탁월하다. 이 때문인지, 건축에 문외한 사람들도 쉽게 그의 책을 쉽게 접하게 되어 그가 출간한 책들은 늘 '올해의 책'으로 손꼽히곤 한다. 나또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공간이 만든 공간' '어디서 살 것인가' '공간의 미래' 4권의 책이 책장에 꽂혀있다. 


 이번 책은 '건축물' 자체가 주인공이 된 책이다. 유럽에서 12개, 북아메리카에서 11개, 아시아에서 7개를 선정하여 총 30개의 건축물을 선택하여 설명하고 있다. 현재 '셜록현준' 이라는 유투브 채널을 운영하며, 실제 여행 속에서 만나는 건축을 촬영하며 설명하는 영상이 올라오고 있지만, 책에서 더욱 유현준 작가의 생각을 디테일하게 전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유현준 작가가 30개의 건축물 중 가장 1위로 선정하였던 건축물은 무엇일가? 바로 '라투레트 수도원' 이다. 20대 시절에는 안도타다오, 루이스칸의 건축물을 가장 최고라고 여겼지만, 세월이 흐르고 다시 방문하며 보이고 느끼는 것이 다름을 이야기 한다. 


✏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건물의 투박함이다. 투박해서 멋지다는 게 아니라, 투박함에도 불구하고 멋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껏 건축을 하면서 건물의 완성도는 디테일에 있다고 귀에 못박히도록 들었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기자인이 정말 혁신적이고 훌륭하면 디테일이 완벽하지 않아도 훌륭할 수 있다는것을 '라 투레트 수도원'을 보면서 느꼈다. /건축가_르코르뷔지에_건축연도_1960_위치_프랑스론에브쉬르아브렐/ 


 책을 읽고 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안도타다오의 빛의 교회였다. 외벽의 십자가의 존재는 이중적 의미를 갖기도 하는데, 십자가는 내부에서 보면 하얀색 십자가지만, 바깥에서 바라보면 그림자로 만들어진 검정 십자가가 된다는 것이다. 교회에 들어가기 전 바라본 검은색 십자가는 내부에 들어오는 순간 어두운 공간 속에 강한 존재감을 가지는 빛의 십자가로 전환되는 이유이다. 안도는 '빛의 교회'에서 담장이 건물을 관통하는 점에서는 동양 전통 건축 양식을 깨는 파격을 보여주고 빛의 십자가를 합친 점으로는 서양 전통 교회 건축 양식을 깨는 파격을 보여 준다. 안도는 젊은 나이에 예산도 부족한 작은 교회 프로젝트에서 자신이 얼마나 파격적인 건축가인가를 세상에 증명해보였다.


 시간 공간 제약을 뛰어 넘는 예술 '건축' 이 책을 통해 건축이란 배경 지식 상관 없이 '건축 물을 볼 때는 이런 관점으로 볼 수 있구나' 하고 공간을 이해하는 지평이 생긴 것 같았다. 또한, 유현준 작가님의 인문학적 소양이 담긴 글들도 인식을 갖게하는 글이라 바삐 적으며 읽었던 것 같아 이 책 역시 올해의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속에서)


 철근과 콘크리트는 열에 의한 팽창 계수가 동일하다. 이 말은 수축과 팽창을 할 때 같은 비율로 늘어나거나 줄어든다는 것이다. 만약에 철근과 콘크리트의 열팽창계수가 달랐더라면 함께 사용할 경우 온도 변화에 따라 다르게 수축과 팽창을 하면서 부서졌을 것이다. 하지만 두 재료는 다행히 같은 열팽창 계수를 가지고 있어서 함께 사용해도 시멘트에 균열이 가지 않는다.

이는 놀라운 발견이다. 


 주차장이 주택 하부 필로티에 있는 덕분에 비가 올 때도 차에서 내린 후 우산 없이 현관까지 걸어갈 수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2층으로 올라가는 경사로나 계단이 있다. 방문자는 경사로 또는 계단이라는 두가지 선택권을 갖게 된다. 이는 훌륭한 디자인이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한가지 밖에 없는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이 건축물의 외관은 우리가 흔히 공사 현장에서 보는 쇠 파이프로 만들어진 건설 보조 설비들처럼 보인다. 그 뿐 아니라 한쪽에는 각종 설비 파이프라인들이 노출되어 있다. 마치 피부가 벗겨진 채 내부의 근육과 핏줄과 뼈가 다 노출된 인체 해부 모형 같은 건축물이다. 이렇게 건축물의 구조체와 기계 설비를 그대로 그러내 보여주는 스타일을 하이테크

건축이라고 한다. 


구조와 설비를 외부로 노출한 디자인을 하게된 첫번째 이유는 전시 공간인 퐁피두 센터 내부에 기둥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내부에 기둥같은 설비가 들어가면 추후 다양한 전시공간을 기획할 때 제약이 된다.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 기둥과 에스컬레이터를 비롯한 각종 설비를 실내 공간에서 모두 건물 외부로 빼내는 식으로 설계했다. 


동대문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의 경우에는 모든 건축물이 하나의 밀가루 반죽같이 한 덩어리로 보이는 디자인을 하기도 한다. 


건축은 인간의 생각과 세상의 물질이 만나 만들어진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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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시! - 그 개의 전기, 버지니아 울프 기록
버지니아 울프 지음, 서미석 옮김 / 그림씨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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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시! - 버지니아 울프

"새장에 갇힌 새에게도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있을 거예요." 라고 썼다. 플러시에게는 온 세상이 자유로웠지만, 그녀 곁을 지키려고 윔폴가의 모든 냄새를 잃어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소설의 첫 시작은 "이 전기의 주인공이 아주 오래된 가문의 후손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라고 시작한다.

그 오래된 가문의 후손의 주인공이 바로 '코커스패니얼'이기 때문이다. 코커스페니얼이 영국에 어떻게 들어오게되었는지, 코커스페니얼의 어원에 대해 말한다. 또한 영국 귀족들의 개에게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왕의 스패니얼은 1파운드의 가치가 있다고 정해놓았다. 948년도에 1파운드로 신부, 노예, 말, 황소,칠면조, 거위를 얼마큼 살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스패니얼이 이미 높은 명성과 가치있는 개였다는 것이 분명하다.

"귀족 계급에 속하는 품종으로는, 그레이하운드 스패니얼 하운드 등이 있는데, 첫번째는 영주, 두번째는 영주의 신하, 그리고 마지막은 자장농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은 전기, 그중에서도 특히 왕과 여왕 혹은 사회의 저명한 인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웅장한 형식의 전기를 좋아했다. '플러시'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전기를 패러디한 것이라도 볼 수 있겠다. 실제로 플러시 개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시골을 돌아다니며 살던 플러시는 런던의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에게 보내진다. 바렛 브라우닝의 동반자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바렛 브라우닝에 대한 플러시의 지고지순한 애정 어린 시선의 묘사가 생생했으며, 마치 나의 반려견의 생각도 이런 생각이였을까라고 푹 빠져 상상하며 읽어갔다. 또한, 바렛 양의 연인에 대한 질투의 묘사 또한 사랑스럽기도 미엽기도 하였다. 애정을 뺏긴거 같은 마음에 연인의 바지 안쪽을 물었으나 이후엔 케이크로 용서가 되었으며, 그가 오는 화요일을 기다리는 플러시의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인의 병 때문에 종일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지내야하는 플러시, 여주인의 발치를 자리 잡는 특권과 즐거움을 누리지만, 그의 상응하는 대가로 자신의 가장 자연적인 본능을 포기하고 런던에서 통제와 억누르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시인과 플러시 둘 다 갇혀있는 상태에서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타자의 의지에 늘 복종해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어머니와 두 형제의 죽음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바렛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것은 소설 중반 부에 등장하는 '플러시의 납치 사건' 으로 인해서이다. 19세기 상류계급의 애완용 개를 훔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고, 개 도둑들은 개 몸 값으로 몇년간의 임금을 벌어드릴 수 있었다. 아버지와 형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접 플러시를 구하기로 작정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아버지의 권위에 저항하며 절망이 복종심을 이기게 된다. 그리하여 소심하고 병약했던 소녀에서 독립적인 성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버지니아의 삶 속에 구르스, 팅커, 그리즐, 핑커, 샐리, 섀그 등의 개들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항상 개와 함께 생활하였으며, 이러한 반려인의 삶이 플러시를 집필할때 많은 영감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삶에도 유년시절 동안 개와 함께 지내왔다. 지금도 침대 발치엔 개가 있어, 이불을 조심스럽게 빼내어 덮기 일쑤다.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면, 이 작은 견공들이 때론 주인의 머리 꼭대기에 있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눈치도 빠르며, 질투와 같은 감정 표현의 행동을 한다는 것도 느꼈을 것이다. 인간의 하루가 강아지에겐 삼일의 시간으로 흐르고 있다고 한다. 반려인 또는 동물을 사랑하거나 동물 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사랑스러운 플래쉬의 전기, 일대기를 들여다 봄으로써 3일의 시간 아니, 평생의 시간을 주인을 위해 내어주고도 더 큰 사랑을 내어주려는 개의 이야기에 쉬이 감동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신은 토끼가 생겨난 곳에 개가 생겨나라고 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문제 삼거나 토를 달 여지가 없다. 그러나 토끼 잡는 개를 왜 스패니얼이라고 부르는지에 대해서는 의혹과 이의가 제기된다.

배럿 양은 거울 앞에 자신과 함께 서라고 하더니 왜 그렇게 짖으며 덜덜 떠는 건지 물었다. 맞은편에 있는 작은 갈색 개는 자신이 아니던가? 그러나 '자신'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보는 것인가? 아니면 본래의 그인가? 플러시는 그 질문 역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실제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배럿 양에게 바싹 들이대며 '마음을 담아'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어쨌든 실재였다.

한달 내내 일년 내내 평생토록 화요일이었으면! 당신들 둘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해. 우리 셋은 가장 영예로운 대의명분의 공모자다. 우리는 공감으로 하나가 된다. 우리는 증오로 하나가 된다.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 요컨대, 플러시의 모든 희망은 이제 어렴풋이 알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 달려 있었지만, 그럼에도 확실히 드러나고 있는 승리는 그들의 공통관심사였다. 문명과 안전, 우정, 한가운데 있다가

그러나 플러쉬는 평범한 개가 아니었다. 그는 활기찼지만 성찰하는 개였다. 또한 인간의 감정에도 매우 민감했다.

누가 그 의자에 앉아있었는지 몰라요? 그의 냄새를 맡을 수 없어요? 플러쉬는 경탄했다

그 특색없는 누군가의 얼굴을 그는 여전히 "바렛 아가씨"라고 불렀다. 그녀는 여전히 존재했다. 나머지 모든 세상이 사라졌어도 그녀는 여전히 존재한다. 비록 그녀가 그에게 도달하기에는 여전히 넘을 수 없는 장벽이 그들 사이에 놓여있을지라도. 어둠이 다시 내려앉기 시작했고, 그 어둠은 그의 마지막 희망을 거의 부숴버릴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가? 말이 어떤 것을 말할 수나 있을까? 말은 말이 전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상징적인 것을 파괴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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