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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 ㅣ 자이언트 스텝 2
김서해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7월
평점 :
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 - 김서해
너를 제대로 흉내내지 못하는게 왜 아쉬울까? 내가 사랑에 빠지는 방식은 모사구나 그러니까, 난 너를 좋아하다 못해 네가 되고 싶다고 내내 도서관에서 혼잣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인 작가의 첫 책을 소개하는 시리즈 '자이언트 스텝' 응원하고 싶은 한 걸음의 책은
김서해 작가의 '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 라는 책이다. '자이언트 스텝'의 책들은 어딘가
모를 풋내음이 배어 있다. 읽노라면, 행간의 여백 속 작은 떨림이 느껴진다.
이 책은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해인'이 주인공이다. 어느 날 해인이 일하고 있는 서점에
영원이 찾아온다. 해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영원, 해인이 서점을 그만 두겠다고 한 후 해인을 대신해 영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업무 인수 인계를 하는 동안 영원은 해인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건낸다.
영원은 매일 내게 질문을 던졌다. 새로운 근무자로 온 날은 가장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물었고, 그다음 날은 가장 싫어하는 책을 그다음 날은 가장 싫어하는 영화를 그 다음 날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을 그 다음날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을 궁금해했다. 외국어 학원에 가면 나눠주는 기본 대화 주제 같은 것만 족족 골라서 물어댔다. 엉뚱하고 복잡한 질문을 할 때도 있었다. 그는 주로 한산한 시간에 창고에서 책을 꺼내 읽었는데, 무언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하면 곱씹듯 묻는 것 같았다.
영원의 질문의 대답 속 문득 떠올리는 건 유년시절 단짝 이었던 '주희'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을 함께 보냈으며, 주희는 발레를 배우고 있었다. 어린 나이,
인하여, 가장 좋아하는 심장을 닮은 자두를 한입 베어먹는 것으로 만족할 정도로 체중감량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어딘지 모르게 자신에게 엄격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인은 주희가 원하는 대로 서포트를 해주는 주희 부모님을 부러워했으며,
늘 거절과 침묵으로 일관한 자신의 부모와 비교하게 된다. 고등학생이 되어 서울로
올라간 주희로 인하여, 둘은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 헤어짐이 영원할 줄 그땐 미처 몰랐다.
주희의 사건 이후로, 주희의 엄마는 해인을 찾아온다. 해인에게 자신이 딸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해준다. 그런 주희 엄마의 태도가 싫지 않지만, 어딘가 모를 죄책감이 든다.
"저 제가 주희의 대역이 될 수 없어요. 알고 계시죠?"
"넌 그저 해인이지. 내가 미안해."
나는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꾸벅 인사하고 아파트 안으로 도망쳤다. 넌 그저 해인이지,
그저 해인.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인데도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서러웠다. 내가 그저 해인이라니, 왜 내가 고작 해인인 걸까.
주희 엄마가 내 엄마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더러 있었다. 춤추라고 학원도 보내주고 개인 연습실을 빌려주고, 아무 무늬 없는 이불을 덮어주고, 쓸데없는 발레리나 스노볼 장식으로 방을 꾸며주고, 최신 핸드폰을 사주고, 주희가 용돈으로 비싼 옷이나 화장품을 사도 뭐라 하지 않았으니까, 그걸 다 일진 애들한테 뺏겨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새로 사라고 했으니까, 그 비슷한 것이 선물처럼 내 앞에 와 있었는데, 주소지가 잘못 적힌 걸 알면서도 몰래 끌러본 것 같아서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자신의 유년 시절 결핍을 영원의 질문 속에서 찾아 나가며, 해인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 미움, 욕망 따위를 그렇게 마치 자신의 거울 같은 '영원' 에 끌리게 되고, 영원에게 감정 이상의 것들을 느끼게 되지만,
외로움이란 것이 있어야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는 것일까, 영원은 떠나버리고
떠나버린 영원이 실재 했었던 건지 열어보지 않은 편지처럼 미궁으로 남게된다.
거울과 같은 영원의 모습을 바라보며 해인은 영원에게 '심리투영' 을 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과 잣대는 나 자신에 대한 판단과 잣대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이나 연약한 부분을 보고, 나를 돌아보면 이런 모습이 동일하게 나에게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타인에 대한 판단을
자신에 대한 판단으로 바꿔 생각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을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나를 돌아보면 더욱 성장하게 된다. 영원으로 부터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독립하는 과정을 하였으며, 외로움이란 감정으로 마침표를 찍었을때, 봄철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영원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유년시절 '주희' 의 죽음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꿈이 마치 주희가 된 듯이 커버린 '해인' 우리는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또는 생존하기 위해 현실을 왜곡, 부정하고 회피한다. 성인이 아닌 아이들은 더욱이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 빠져있기 때문에, 순수한 방어기제를 더욱 더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어 기제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나쁘다' '좋다' 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남 탓하는 것은 나쁜 것이고, 괴로운 기억을 잊게 하는 건 좋은 것일까?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역시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함으로 항상 평행을 이루어야 된다. 나쁜 것과 좋은 것은 없다. 단지 내 선택 만 존재할 뿐.
우리는 영원히 서로 질문하고 마음을 들추고 이해가 안되면 디아시의 편지처럼
몇 번을 다시 읽어가며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낼 것이다. 내가 어떤 날에는 오데트이고 다른 날에는 오딜이고 또 다른 날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에 적응할 때까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응답하지 않더라도, 무의식 속으로 잠겨버려도,
"나만의 질서로 제대로 살면서"
남모를 뼈아픈 성장통을 겪었을 '해인' 또는 어딘가에 생채기가 아직 아물지 않은
'해인' 외로움이란 감정에 잠식되지 않고 꿋꿋이 자기 자신에게 물음을 이어가는
'해인' 이 읽으면 좋을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