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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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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좋은 물건을 소개한다기보다는 이 책은 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건축가 미스 반 데어로에는 흥미로운 것보다 좋은 것, 잘하는 걸 원한다고 말했어요.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잘하기 위해서, 잘 살기 위해서 결국 물건이 필요하다는 게 이 책의 충발이었거든요. 살면서 정말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물건을 찾고 삶에 적용한 게 이 기록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건을 통한 제 라이프스타일을 이야기하는 거죠. 물건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이 물건이 단순히 좋다는 게 아니고 물건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알게 되고, 접근하면서 출발해서 사용하면서 삶을 충족시키며 마무리가 되죠. 도구는 그냥 도구라고 생각해요. 도구가 내 삶에 유용하게 쓰였을 때 내 것이 되는거죠. 


오늘 소개할 책은 작가이자 사진가로 미술, 음악과 공연, 건축과 디자인 등 경계를 넘나들며 향유하는 전방위 예술 애호가 윤광준 작가의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이란 책이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다진 안목과 직접 사용해 본 경험으로 찾은 일상의 유용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생활명품'이라고 정의하고 대중에게 소개하는 일을 2002년부터 해왔다. 


사무용 의자, 카메라, 술, 클러치 백, 식기, 손목시계, 램프, 착즙기, 양복, 치약, 연필, 북 램프, 에스프레소 머신, 토스터, 인센스, 안경닦이, 라이터, 비누, 깔창, 우산, 가위, 로션, 조미료, 어묵, 초콜릿, 튀김 소보로까지 그의 취향이 가득 베인 101개의 물건을 설명하고 있다. 


내가 애장하는 물건을 남들이 궁금해하거나, 물건의 유용함과 기능에 대해 관심을 표한다면, 마치 내가 만든 물건인 것 처럼 들떠 설명할 때가 있다. 물건의 셀러가 아닌데도 나의 안목을 인정받은 것 같아 짐짓 뿌듯해져 목소리 마저 빨라진다. 


최근에 '미니멀리즘'을 마음에 담아두고 장바구니 또는 위시리스트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나의 0과 1로 기록된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꼼꼼히 확인한다. 나의 취향은 알고리즘이 되어, 필요한 물건을 제시하지만, 생활에 필요로 하는 생필품이 아니고선, 웬만한 물건은 이미 온 집에 가득이다. 


소장 물건 중 페이마 전동그라인더, 코렐 오븐기, 플렉시 자동 애견줄, 펭귄북스 에코백, 여름 내 신은 크록스, 이니스프리 비자 크림, 망원동에서 산 잠옷, 늘 함께하는 아이폰미니, 원석 악세서리, 무수한 실, 무수한 책 (...) 취향에 맞는 인테리어 소품들을 좋아해서, 방 안 곳곳 빈티지한 매력을 뽐내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떠올려 보았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일상에 없어서 안되는 동반자들이다. 

사계절이 있는 대한민국에선 여름, 겨울로 제 철에 따라 주어진

임무를 해내고 제 쓰임을 다하는 모든 사물들이 아름다워 보이기 까지 한다. 


윤광준 작가는 말한다.


제게 좋은 것이 뭔지 아는 게 취향이다. 취향은 반복적 선택과 실수로 단단해지게 마련이다. 많은 걸 직접 사고 써봐야만 파악되는 능력과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실수하지 않고 손해보지 않으려고 남의 선택과 경험을 열심히 참고한다. 이래서 얻어지는 건 잠시의 이득과 위안뿐이다. 진정 좋은 것은 숨겨져 있다.

다수를 설득할 필요가 없으니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나의 취향으로 찾아낸 물건이 기대 이상의 효용성과 가치로 보답할 때 즐겁다. 삶은 물건을 쓰면서 이어진다. 자신의 일상이 소중하다면 생활 물건에 신경 쓰는 건 당연하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제 공간이 아름다워야 삶이 풍요로워진다. 


강산이 변해, 다른 사람으로 변하지 않고서야 나는 나의 라이프 스타일, 여행 스타일 등 취향을 확고히 알고 있다. 그것들을 주변에 두어 물건에 제 쓰임에 맞게 또한 책에서 처럼, 그만한 쓸모있는 가치가 있는 것들을 두어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한다면, 더욱 더 효용적이고 안락한 삶이 될 수 있겠다. 평소 물건들에 관심이 있고, 생활 라이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참고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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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
장아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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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 


"너희들이 이 계절을 무사히 날 수 있기를"


주인공 희미는 달끝 마을에 산다. 희미는 갈대밭을 지나며 자신의 마을 어귀를 돌아 산딸나무가 우거진 경사면 

너머를 바라본다. 그 곳은 희미가 사는 곳과 다른 신시가지였다. 다소 완만한 비탈을 따라 단독주택, 아파트 단지, 오피스텔과 상가, 공원과 학교 부지가 구획 지어진 전형적인 신도시의 풍경이다. 바라보는 풍경을 지나치며 산책로를 걷다 샛길로 빠지면 나오는 언덕 위 수령이 오백년도 넘은 신목으로 향한다. 


 신목 앞에선 희미는 '소원' 에 대해 생각한다. 

 일곱번째 생일이 지나고 처음 이가 빠진 날,  함께 자전거를 타던 날, 고등학교에 같은 반이 배정되어 기쁜 오늘까지, 

모두 준후와 함께한 기억들이다. 준후를 향한 감정이 더이상 우정이 아닌 사랑의 감정임을 느낀 희미는 늦은 밤 

신목에게 소원을 빈다.


"있잖아요. 준후가 나한테..." 거기까지 말해놓고 어쩐지 부끄러웠는지 마음속으로 빌었다. 고백하게 해주세요. 

좋아하게 해주세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소원을 빌고 내려오던 중 희미는 준후와 민진을 발견한다. 어째서인지 자신이 준후를 바라보던 얼굴이 민진에게 보인다. 

희미는 질투를 느끼며, 준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해봐 준후야, 너 나 좋아해?" 라고 묻는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희미는 화가 나서 당장 사라져버리라고 소리친다. 그 순간 준후는 작은 곤줄박이 새로 변한다. 


곤줄박이로 변한 준후를 목격한 세 사람. '희미' '민진' 그리고 '새별'까지 

제각기 다른 세 소녀는 준후를 다시 사람으로 되돌리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유년시절엔 시골에서 자란 덕분에, 자연과 밀접한 추억이 많다. 눈에 띄는 모양을 한, 나무 또는 돌덩이 따위를

이정표 삼아, 나뭇가지 몇개를 들고 동산을 휘집고 다녔다. 그리고, 컨테이너가 가득한 공장과 인형뽑기 집까지 

다들 유년시절 신묘한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소중한 기억이기에, 쉽게 잊지 않으려 복기하고 복기하여, 신묘한

기억이 된 경험. 이사 오기 전 어울렸던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 같은 것. 


준후는 곤줄박이 새로 변해버렸지만, 잊혀지지 않고 세 소녀의 신묘한 힘으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애니미즘 사상은 문명이 생겨나기 전부터 존재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병에 걸리면 문명인은 몸의 이상을 바탕으로 병을 해석하지만, 원시인은 보이지 않는 힘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여겼다. 또한, 원시인에게 자신의 물건은 단순한 물건이 아닌 자신과 동일시 되는 무언가에 해당한다고 여겼다. 원시인이 물건을 교환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상대방에게 내주고 정체성을 소거하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두가지 특징은 애니미즘 이후 종교에서도 볼 수 있으며, 이는 애니미즘이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신앙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지금은 도로와 건물을 따라 구획화 되었지만, 옛날엔 산등성이의 능선을 따라 분지의 논밭을 따라 이어 걸어나갔을 것이다. 사람들이 터를 잡고, 마을이 생겨나고 마을 안에 거목 아래에서 온갖 대소사를 참견했을 것이고, 아직 살아보지 못한 삶 앞에 앞 날을 바라고 또 바라며 거목의 영검이 점을 쳐준 일이라며, 자신을 위로하고 가족을 위로하며 하루 하루 살았을 과거의 삶들을 감히 상상해본다. 


나이 많은 신목에 금빛 새끼줄과 장식을 달아 돌을 쌓는다. 주변에 사당을 지어서 신의 영역임을 표시하고, 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조성된 서낭당. 

그래서인지 서낭당의 나무를 베면 저주를 받는다는 등의 묘사가 나오는데, 무속에서는 이를 동티 났다라고 표현한다. 


수많은 마을과 거목이 사라졌을 것이고, 또한 기억에서조차 잊혀졌을 것이다. 

아직도 마을 입구에는 보존된 은행나무, 느티나무 거목을 보면, 한철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지구에 남기고 가는 생채기들이 많은지, 아울러 다른 생명체 들이랑 공생하지 못하는 인간의 이기에 대해 돌아보게 된 적이 있었다. 


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 라는 책은 성장 소설이다. 고등학생인 희미, 새별, 민진, 준후가 등장하며, 희미가 신목에서 빌었던 소원으로 준후는 새로 변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신목, 붉은새, 새별의 이야기 등 판타지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 책이 주는 신비로움이 있었다. 또한, 고등학생인 주인공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의 순수한 행동과 풋풋한 감정들이 더욱 잘 전달 되었던 것 같다. 


과연 준후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더위가 가시지 않은 초 가을 앞 섬에

가볍게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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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me 일 센티 플러스 미 - 매일 더 나은 1cm의 나를 찾는 크리에이티브한 여정 1cm 시리즈
김은주 지음, 양현정 그림 / 허밍버드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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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me - 김은주 


 학창 시절 매주 금요일 저녁이나 일요일 저녁엔 가족들과 이마트로 향했다. 아빠가 같이 장을 보러 가지 못할 땐,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택시로 이동 했는데, 길 모퉁이에서 쌩 달리는 택시를 향해 있는 힘껏 손을 뻗었다. 그리곤 내 앞에서 택시가 서면, "이마트로 가주세요." 라곤 말하고 엄마를 바라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도착한 이마트에서 얼추 장을 다 보면, 나는 눈을 흘기고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카트를 살짝 밀어 4층에 올라가지고 엄마를 채근한다. 엄마가 "구경만 할거야" 라고 말하며, 남동생과 같이 게임 cd 매장으로 향한다. 원하는 걸 못샀을 땐 6층 교보문고로 향했는데, 그 땐 이상하게도 책에 대해선 관대하셨다. 나는 내용도 모르는 겉 표지가 예쁜 책 두어 권을 고르곤 만족해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책 내용과 무관한 유년시절 이야기지만, 그 시절 내 마음에 쏙 들어온 책 한권이 바로 1cm 라는 책이다.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에 반해서 들었던 책이지만, 내용이 참 따뜻했던 책이였다. 1cm 란 책에서, 1cm+ 또, 1cm+me 까지 나이만큼 같이 자라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 신간은 1cm+me 라는 제목처럼, 조금 더 '나'에 집중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cm 만큼만 인생에서 나를 아끼라는 것인데, 관계가 주는 어려움 세상과 타인에게 입은 상처, 앞이 보이지 않은 내일 등 인생 여러가지 문제에 둘러쌓여 정작 자기 자신을 만나고 있지 못한다면, 이 책을 통해 잊고 있었던 나를 만나고 내가 좋아하는 나를 발견하며 나에게 한걸음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책을 통해 가져보시길 바란다. 


 왠지 어른 동화랄까, 일상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마치 보석처럼 쉬운 문장으로 쓰여져있다. 최근 1cm+me 덕분에, 나에게 한반짝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고, 내가 지금 인생의 어디쯤에 와있는지 돌아보고 관계 또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1cm 를 처음 골랐던 순간처럼, 너무 편리한 시대 오히려 불편함을 기쁘게 감수하면 더 삶이 즐거워지고 하루가 다채로워지는 아이러니를 경험한다. 조금 불편하게 삶을 살아보자 :) 


책 속에서 📖


가까이서도 여러 가지 핑계로 얼굴을 보기 힘든 친구가 아닌 멀리서도 나라는 이유 한 가지로 찾아오는 친구가 바로 귀인이다. 


가능한 일이면 시작한다. - 시작하면 가능해진다. 


세상이 달라지니 생각도 바뀐다. -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 


타인의 불행에 신나 하는 사람은, 멀리하면 할수록 좋은 사람이다. 


만날 때마다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고 나 자신과 내 인생에 자꾸 의문을 품게 만든다면 걸러도 되는 사람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니야.' 가 아닌 '아, 이런 모습도 있구나.'


누군가 당신을 밀치고 사과 없이 지나갔을지라도, 당신을 따뜻하게 당겨 안아주는 가족이 있다. 


일일이 상처받고 살기엔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고, 할 일은 많다.


나와 함께여서 즐거운 시간을 찾는 것도 함께여서 즐거운 사람을 찾는 것만큼 중요하다. 


진행 중인 사랑에서 당신은 주인공이지만, 끝난 사랑에서 당신은 관객이 되어야 합니다.


단점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느냐에 따라 관계의 길이는 결정되곤 한다.


상처를 준 사람을 살피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힐링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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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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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 가이대븐포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질서는 그 자체로는 사소한 것들을 무작위로 모아 놓은 것이다." 

- 헤라 클레이 토스 


스틸라이프는 미국 작가 가이대븐포드의 미술사와 자연사, 고대 그리스 문학과 현대의 대중소설, 고대-중세-현대의 시간대 등을 넘나드는 콜라주적 에세이이다. 대게 정물에 대한 사유를 적고 있다. 정물은 밀의 경작과 와인의 숙성을 통하여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예찬하는 방법이였다. 음식이 놓이는 시간, 구한 음식을 먹기까지의 시간으로 해석되며, 인간은 정물과 함께 문명으로 나아가기를 거듭했다.


"우리는 식사 전에 손과 식기를 깨끗하게 하고, 식탁 중앙에는 꽃 장식을 놓고, 식사가 대화를 수반 하는 사교 모임이 될 수 있다는 생각들을 유지해 온 것이다. 정물화는 그런 맥락에서 문명의 장으로서 식탁을 지켜 왔다." 


17세기 네덜란드는 황금기를 맞는다. 식민지 개척을 통한 활발한 해상 무역으로 외교, 경제 그리고 문화의 모든 면에서 막대한 부를 쌓은 네덜란드는 유럽 경제의 중심이 된다. 30년 독립전쟁에서 승리해 스페인의 지배에 벗어나게 된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국교였던 가톨릭이 아닌, 칼뱅파의 개신교를 받아들인다. 이러한 당대의 배경은 네덜란드의 주류가 될 예술 장르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네덜란드가 새롭게 받아들여 퍼진 칼뱅파의 교리는 검소함을 제일로 내세웠다. 우상숭배 등을 이유로 종교화 제작을 전면 금지했고, 성서나 신화적 그림이 속한 역사화도 당연히 그릴 수 없게되었다. 주문을 의뢰받아 작품을 제작해왔던 화가들은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 고민에 빠지고 네덜란드 사회에 적절한 그림을 탐색한다. 그리고 끝내 해답을 발견한다. 


황금시대였던 만큼 부유한 시민들은 자신들의 집에 걸어놓을 수 있는 비교적 작은 크기의 그림을 찾았고, 그것은 또다시 종교적 속성과 맞물린다.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작품 의뢰 당시 (부)가 직접적으로 나타나길 바랐다. 하지만 금욕을 주장했던 신교의 교리와는 상반되었고 작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지만, 그 끝에 비로소 네덜란드 만의 독특한 정물화가 탄생하게 된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인생의 무념무상, 덧없음을 담아내는 것 바로 '바니타스 장르화'의 시작이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바니타스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매일의 삶과 그런대서 오는 인간의 허무한 감정, 가치 없음을 뜻하는 라틴어로 우리의 인생에 항상 자리잡고 있는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부유한 삶을 산다한들 죽음 앞에서는 모두 다 부직없는, 세상적 이치의 필연성을 예술가들은 정물화 안으로 끌어들였다. 세상적 이치의 필연성을 예술가들은 정물화 안으로 끌여들었다. 예술가들은 '교훈적 주제'를 전파하는 역할에 앞장 섰고, 시대적 흐름을 대표하는 화풍으로써 주류가 아니었던 정물화를 택했다. 그 결과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의 상황을 지각하게 하면서, 예술의 평등함 또한 끌어냈다. 


그려진 물건과 음식은 모두 유한성을 띄고 있다. 깨져버리기 쉬운 유리의 속성, 금방 상해버리는 음식과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회중시계가 유한한 속성을 대변한다. 현재의 쾌락과 사치, 좋은 것들은 소모적이며, 찰나의 순간만 선사하기 때문이다. 항상 염두에 두진 않지만, 우리의 끝은'죽음'이며 그것은 세속적 삶과 대조된다. 사물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반짝이는 빛은 그 의미를 감추려는 듯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책 속에서> 


그가 그린 사과 그림 속에 배와 함께 다른 상징들 에로스의 동상, 시계, 전체적인 평화로운 느낌, 시골 부엌의 소소한 아름다움이 등장하는데, 이 모든 것은 평온함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물화는 이런 비전들 중 하나의 상징일 듯하다. 하나는 가을의 수확을 꿈꾸고, 우리가 거기까지 관리해 가는 과정과 우리와 자연과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다른 하나는 자연이라는 기반에 따른 건축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 시대에 따라 그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변한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정물은 사람을 읽고, 먹고, 와인을 마시고, 음악을 연주하고, 대화하는 문명화된 집 안에 어떤 공간이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 


정물화에 영원히 등장하는 소재 중 두 가지가 빵과 와인이라면, 정물화는 밀의 경작 와인의 숙성과 함께 시작하는, 완만하게 부푸는 거대한 파장의 일부다. 이는 문명과 공생하는 예술이다. 


음식을 구하고 구한 음식을 먹기까지 그 사이의 시간이 있다. 음식이 어딘가에 놓이는 시간이다. 


오직 형태 패턴에 의해서만 말이나 음악이 정적에 닿을 수 있는가 중국의 항아리가 아직도 그 정적 속에서 영원히 움직이듯, 


우리가 해야할 질문은 피카소가 왜 <아비뇽의 여인들>에 사과와 배를 그렸는지가 아니라 피카소는 사과와 배를 그릴 때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가 될 것이다. 


진실을 보는 한 가지 방법은 대상을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익숙한 것을 에니그마 (수수께끼)처럼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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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 자이언트 스텝 2
김서해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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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 - 김서해 


너를 제대로 흉내내지 못하는게 왜 아쉬울까? 내가 사랑에 빠지는 방식은 모사구나 그러니까, 난 너를 좋아하다 못해 네가 되고 싶다고 내내 도서관에서 혼잣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인 작가의 첫 책을 소개하는 시리즈 '자이언트 스텝' 응원하고 싶은 한 걸음의 책은

김서해 작가의 '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 라는 책이다. '자이언트 스텝'의 책들은 어딘가

모를 풋내음이 배어 있다. 읽노라면, 행간의 여백 속 작은 떨림이 느껴진다. 


이 책은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해인'이 주인공이다. 어느 날 해인이 일하고 있는 서점에

영원이 찾아온다. 해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영원, 해인이 서점을 그만 두겠다고 한 후 해인을 대신해 영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업무 인수 인계를 하는 동안 영원은 해인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건낸다. 


영원은 매일 내게 질문을 던졌다. 새로운 근무자로 온 날은 가장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물었고, 그다음 날은 가장 싫어하는 책을 그다음 날은 가장 싫어하는 영화를 그 다음 날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을 그 다음날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을 궁금해했다. 외국어 학원에 가면 나눠주는 기본 대화 주제 같은 것만 족족 골라서 물어댔다. 엉뚱하고 복잡한 질문을 할 때도 있었다. 그는 주로 한산한 시간에 창고에서 책을 꺼내 읽었는데, 무언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하면 곱씹듯 묻는 것 같았다. 


영원의 질문의 대답 속 문득 떠올리는 건 유년시절 단짝 이었던 '주희'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을 함께 보냈으며, 주희는 발레를 배우고 있었다. 어린 나이, 

인하여, 가장 좋아하는 심장을 닮은 자두를 한입 베어먹는 것으로 만족할 정도로 체중감량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어딘지 모르게 자신에게 엄격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인은 주희가 원하는 대로 서포트를 해주는 주희 부모님을 부러워했으며,

늘 거절과 침묵으로 일관한 자신의 부모와 비교하게 된다. 고등학생이 되어 서울로

올라간 주희로 인하여, 둘은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 헤어짐이 영원할 줄 그땐 미처 몰랐다. 


주희의 사건 이후로, 주희의 엄마는 해인을 찾아온다. 해인에게 자신이 딸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해준다. 그런 주희 엄마의 태도가 싫지 않지만, 어딘가 모를 죄책감이 든다. 


"저 제가 주희의 대역이 될 수 없어요. 알고 계시죠?"

"넌 그저 해인이지. 내가 미안해." 

나는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꾸벅 인사하고 아파트 안으로 도망쳤다. 넌 그저 해인이지,

그저 해인.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인데도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서러웠다. 내가 그저 해인이라니, 왜 내가 고작 해인인 걸까.  


주희 엄마가 내 엄마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더러 있었다. 춤추라고 학원도 보내주고 개인 연습실을 빌려주고, 아무 무늬 없는 이불을 덮어주고, 쓸데없는 발레리나 스노볼 장식으로 방을 꾸며주고, 최신 핸드폰을 사주고, 주희가 용돈으로 비싼 옷이나 화장품을 사도 뭐라 하지 않았으니까, 그걸 다 일진 애들한테 뺏겨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새로 사라고 했으니까, 그 비슷한 것이 선물처럼 내 앞에 와 있었는데, 주소지가 잘못 적힌 걸 알면서도 몰래 끌러본 것 같아서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자신의 유년 시절 결핍을 영원의 질문 속에서 찾아 나가며, 해인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 미움, 욕망 따위를 그렇게 마치 자신의 거울 같은 '영원' 에 끌리게 되고, 영원에게 감정 이상의 것들을 느끼게 되지만, 

외로움이란 것이 있어야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는 것일까, 영원은 떠나버리고 

떠나버린 영원이 실재 했었던 건지 열어보지 않은 편지처럼 미궁으로 남게된다. 


거울과 같은 영원의 모습을 바라보며 해인은 영원에게 '심리투영' 을 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과 잣대는 나 자신에 대한 판단과 잣대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이나 연약한 부분을 보고, 나를 돌아보면 이런 모습이 동일하게 나에게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타인에 대한 판단을 

자신에 대한 판단으로 바꿔 생각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을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나를 돌아보면 더욱 성장하게 된다. 영원으로 부터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독립하는 과정을 하였으며, 외로움이란 감정으로 마침표를 찍었을때, 봄철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영원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유년시절 '주희' 의 죽음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꿈이 마치 주희가 된 듯이 커버린 '해인' 우리는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또는 생존하기 위해 현실을 왜곡, 부정하고 회피한다. 성인이 아닌 아이들은 더욱이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 빠져있기 때문에, 순수한 방어기제를 더욱 더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어 기제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나쁘다' '좋다' 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남 탓하는 것은 나쁜 것이고, 괴로운 기억을 잊게 하는 건 좋은 것일까?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역시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함으로 항상 평행을 이루어야 된다. 나쁜 것과 좋은 것은 없다. 단지 내 선택 만 존재할 뿐. 


우리는 영원히 서로 질문하고 마음을 들추고 이해가 안되면 디아시의 편지처럼

몇 번을 다시 읽어가며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낼 것이다. 내가 어떤 날에는 오데트이고 다른 날에는 오딜이고 또 다른 날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에 적응할 때까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응답하지 않더라도, 무의식 속으로 잠겨버려도, 

"나만의 질서로 제대로 살면서" 


남모를 뼈아픈 성장통을 겪었을 '해인' 또는 어딘가에 생채기가 아직 아물지 않은

'해인' 외로움이란 감정에 잠식되지 않고 꿋꿋이 자기 자신에게 물음을 이어가는 

'해인' 이 읽으면 좋을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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