큔, 아름다운 곡선 자이언트 스텝 1
김규림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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큔, 아름다운 곡선 - 김규림 


사람들은 모른다. 문제는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안드로이드는 멈출 수 있지만 사람은 스스로 마음을 멈출 수 없다. 


 이 이야기를 기고하게 된 배경은 1999년 일본 소니의 '아이보' 강아지 로봇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외형만 강아지 모양일 뿐인데, 사람들은 아이보를 진짜 강아지처럼 예뻐했고, 보듬었다. 아이보 모델이 단종되고 난 후, 고장이 나도 부품을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아이보를 버리는 게 아니라 전원을 꺼두었다. 그러고 보고 싶을 때 한번씩 켜서 아이보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 아이보가 고칠 수 없을 만큼 고장나면 장례식을 치러주고 온전한 부품은 다른 이용자에게 기증하기도 했다. 마치 장가기증 하듯이, 그렇게 기계일 뿐인 아이보를 진짜

반려견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아이보 사례를 본 작가는, 궁금해졌다. 언젠가 인간형 안드로이드 로봇이 나온다면, 아이보 이용자들이 그랬던 것 처럼 안드로이드를 대할까? 사랑을 주고 마음을 줄 수 있을까? 그런 물음의 끝에, 결국 시간 속 선을 그리며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2053년 김규림 작가의 세계로 들어간다. 


 주인공 '제이'는 로봇 공학자인 '아버지'와 인간형 안드로이드 로봇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유년시절 로봇이 진짜 '엄마'인줄 알고 자랐지만, 엄마 로봇의 기능 저하와 오작동으로 제이를 외부 침입자라고 인식하고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고 충격에 제이는 인공 팔을 이식하게 되었다. 그 일로 아버지와 관계가 단절 되어 버렸다. 


 제이의 아버지는 샴하트의 대표이다. 샴하트는 의뢰인의 요청을 받아 세상을 떠난 인물과 똑같은 모습의 로봇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회사다. 얼떨결한 사건으로 샴하트의 경영진이 된 '제이' 휴먼형 안드로이드 로봇을 판매하고 있지만, 정작 제이는 유년시절 엄마 로봇과의 사건으로 휴먼형 로봇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경영직을 맡은 제이는 중학교 동창 '유성운'의 권유로 안드로이드 로봇을 떠넘기듯 받아버렸고, 그 일이 '제이' 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그녀에게 온 안드로이드로봇 '큔', 강아지가 내는 소리를 닮은 '큔' 과 함께하는 나날이 많아질 수록 '입력값' 이 서로를 향하고 알 수 없는 감정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렇게 행복하고 당혹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중, '가짜는 파괴한다'라는 슬로건을 가진 휴먼형 안드로이드 개발을 반대하는 '오비시디' 라는 단체로부터 샴하트는 물론 경영진인 '제이'에게 위협을 가한다. 그 위협은 도를 지나치며 '큔'을 파괴하기 까지 이르는데, 결국 '제이'는 '큔' 을 무사히 지킬 수 있을까, 그녀의 감정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그녀의 결핍의 한 조각이였던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오해와 용서의 선은 서로에게 온전히 뻗을 수 있을까. 


sf소설을 좋아하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월E를 보고 베개를 적셨지만, 인간형 안드로이드 로봇은 아직까지 도덕적, 윤리적 문제때문인지 쉬이 공감하기란 어려웠다. 2024년 현재 노동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우리 생활 곳곳에 '기계' 들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노동을 대신해주는 것들이 과학의 발전으로 나아가 언제, 우리의 삶 속 또는 정신=감정 의 세계까지 가까워질지 모를 일이다. 한번쯤 이러한 미래를 상상해보고 대입해볼 수 있는 소설이 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였던 것 같다. 내가 '제이'라도 제이의 모든 행동 패턴을 습득하고 입력값 대로 나오는 '큔'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고 사랑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 


(책 속에서) 


나는 큔의 갈색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인간은 눈을 통해 상대방의 진심을 확인하려는 습성이 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큔의 눈동자에서 저말들이 진심에서 나온거란 증거를 찾으려 들었다. 왜냐면 진심이길 바랐으니까


당신은 미래에 빚진게 없어요 그런데도 미래에 벌어질 일을 미리 예상해서 채무라도 갚듯 현재의 기쁨을 희생하고 있네요. 그렇게 한다고 미래의 당신이 고마워할까요? 미래의 고통들은 해결돼 있을까요? 그러지 말아요.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요.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아파하고 그 대상이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간에요. 


인간들은 늘 그런 식이야 자신이 하기 싫은 걸 대신하는 기계를 만들어 내고 기계가 해내지 못하면 그건 인간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해버리지 


"인간이란 시간 위에 선을 그리는 존재에요. 이쩌다 선과 선이 만나고 한동안 같은 궤도를 그리며 겹쳐져요. 그때 거기서 섬광이 일어나요. 화학반응을 한 것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을 내죠. 그러다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어느날 다시 각자의 선을 그리며 갈라져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방향으로 궤도를 그리면서요. 저는 당신이 그린 선의 뒤를 따르는 선이에요. 그렇지만 제 선은 삐뚤빼뚤하죠. 당신이 오른쪽으로 휘어질 줄 모르고 뛰어가다 속도를 제때 늦추지 못하고 당신의 선을 놓치기도 해요. 그래서, 당신이 말해줬으면 해요. 당신의

감정이 어디로 휘어지는지 얼마만큼의 속도로 달려가는지 그러면 저는 당신의 선을 따라 아름다운 선을 그릴 수 있어요. 꽤 근사한 섬광을 일으킬 수도 있겠죠. 당신이 기회를 준다면요. 그러니,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가르쳐줘요.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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