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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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각자 인생 주기에 맞춰 몇 번이고 마주치고 가끔은 절망하기도 하며 살아왔다. 윤주성은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과 경기도 대구 등지의 여러 병원에서 일했고, 우리는 1년에 한 두번씩 만나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만날 때 마다 매번 예열도 없이 바로 전투 수다에 돌입해, 어제 만난 것 같은 사이란 게 어떤 것인지 몸소 증명하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 내 옆에 앉은 윤주성의 얼굴을 그때와 비슷한 듯 조금 다르다. 현실의 30대 중반 윤주성은 그때에 비해 노화가 다소 진행된 모습이고, 결혼을 했으며, 자신을 전혀 닮지 않은 귀여운 아들까지 낳았다. 아마 내 얼굴 역시 뉴욕에서의 스무 살때와는 아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 몬토크 가서 소원 빌었잖아. 그때 니가 작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진짜? 내가 그랬다고?"

"어. 니가 똑똑히 그렇게 말했어. 내가 쓴 글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와 진짜 너무 소박해서 눈물이 다 날라카네." 

"그게 왜 소박하노. 대단한거지, 내 주변에서 꿈을 이룬 사람은 니밖에 없다."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글을 써서 돈을 벌 수만 있으면 되는 삶.

그것이 스무 살의 내가 간절이 꿈꾸던 삶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꿈꿔왔던 미래에 당도해 있다는 것을, 윤주성의 말로 인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울렁였다. 마치 오래전의 내가 오늘의 내게 작고 반짝이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놓은 그런 기분이였다. 


대도시의사랑법으로 알려진 박상영작가의 두번째 에세이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이다. 책 제목처럼, '번아웃', '휴식', '여행'을 테마로 삶의 허기와 공허함이 찾아올때, 그가 행했던 일들을 한 편의 시트콤같은 단편집으로 풀어낸 책이다. 단순히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이란 무엇일까?" 가 궁금해 손에 쥔 책이였다. 하지만, 한 챕터를 읽고 나서, '박상영' 이라는 작가를 검색하게 되었으며, 재치 넘치는 그의 글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고 있었다. 흔히 아는 '지붕뚫고하이킥' 같은 시트콤 같이, 처음 일어난 '발단'이 되었던 사건은 잊어버리고 어느새 클라이맥스가 되어 결국 실컷 웃다가 마지막 장을 덮었다. 


마치 오래전의 내가 오늘 내게 작고 반짝이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놓은 것. 


우리는 평소 나에게 어떤 선물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각종 스트레스와 미래의 불안을 가득 떠넘기고, 불안을 원동력 삼아 나를 채찍질 하고 있거나, 나를 무가치하다고 과소평가하며 자신을 외부의 아무것도 아닌 적으로부터 나를 감싸고 있지 않을까. 시간을 흘러보내고 나니, 진짜 위로를 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보태려고 바라려고 하지말고, '자신' 을 들여다보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휴식'을 주는 일. 타인에게 '상처' 받지 않게 스스로 사랑의 연고를 바르는 일. 그렇게하면, 이 권태로운 삶 속에서 나 자신을 갑자기 동 떨어진 곳으로 놓아버려야 할 것 같은 '가짜 여행' 을 하지 않아도, '평범한 일상' 에서부터 '삶의 존재'를 찾는 '진짜 여행' 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일은 어떤 반짝이는 돌멩이를 놓을지. '나'에 대한 앎과 삶에 대한 공부를 부지런히 해야겠지만 말이다. 


광주, 강릉, 유럽, 뉴욕, 가파도(...) 번아웃과 우울이 올때마다, 찾은 여행지에서 박상영 작가 주변엔  늘 '사람들' 이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재치와 유머러스한 입담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내일은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어야지" 휴식 천재를 꿈꿨지만, 결국 '대폭망 휴일담' 이 된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거나,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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