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시! - 그 개의 전기, 버지니아 울프 기록
버지니아 울프 지음, 서미석 옮김 / 그림씨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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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시! - 버지니아 울프

"새장에 갇힌 새에게도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있을 거예요." 라고 썼다. 플러시에게는 온 세상이 자유로웠지만, 그녀 곁을 지키려고 윔폴가의 모든 냄새를 잃어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소설의 첫 시작은 "이 전기의 주인공이 아주 오래된 가문의 후손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라고 시작한다.

그 오래된 가문의 후손의 주인공이 바로 '코커스패니얼'이기 때문이다. 코커스페니얼이 영국에 어떻게 들어오게되었는지, 코커스페니얼의 어원에 대해 말한다. 또한 영국 귀족들의 개에게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왕의 스패니얼은 1파운드의 가치가 있다고 정해놓았다. 948년도에 1파운드로 신부, 노예, 말, 황소,칠면조, 거위를 얼마큼 살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스패니얼이 이미 높은 명성과 가치있는 개였다는 것이 분명하다.

"귀족 계급에 속하는 품종으로는, 그레이하운드 스패니얼 하운드 등이 있는데, 첫번째는 영주, 두번째는 영주의 신하, 그리고 마지막은 자장농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은 전기, 그중에서도 특히 왕과 여왕 혹은 사회의 저명한 인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웅장한 형식의 전기를 좋아했다. '플러시'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전기를 패러디한 것이라도 볼 수 있겠다. 실제로 플러시 개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시골을 돌아다니며 살던 플러시는 런던의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에게 보내진다. 바렛 브라우닝의 동반자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바렛 브라우닝에 대한 플러시의 지고지순한 애정 어린 시선의 묘사가 생생했으며, 마치 나의 반려견의 생각도 이런 생각이였을까라고 푹 빠져 상상하며 읽어갔다. 또한, 바렛 양의 연인에 대한 질투의 묘사 또한 사랑스럽기도 미엽기도 하였다. 애정을 뺏긴거 같은 마음에 연인의 바지 안쪽을 물었으나 이후엔 케이크로 용서가 되었으며, 그가 오는 화요일을 기다리는 플러시의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인의 병 때문에 종일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지내야하는 플러시, 여주인의 발치를 자리 잡는 특권과 즐거움을 누리지만, 그의 상응하는 대가로 자신의 가장 자연적인 본능을 포기하고 런던에서 통제와 억누르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시인과 플러시 둘 다 갇혀있는 상태에서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타자의 의지에 늘 복종해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어머니와 두 형제의 죽음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바렛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것은 소설 중반 부에 등장하는 '플러시의 납치 사건' 으로 인해서이다. 19세기 상류계급의 애완용 개를 훔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고, 개 도둑들은 개 몸 값으로 몇년간의 임금을 벌어드릴 수 있었다. 아버지와 형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접 플러시를 구하기로 작정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아버지의 권위에 저항하며 절망이 복종심을 이기게 된다. 그리하여 소심하고 병약했던 소녀에서 독립적인 성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버지니아의 삶 속에 구르스, 팅커, 그리즐, 핑커, 샐리, 섀그 등의 개들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항상 개와 함께 생활하였으며, 이러한 반려인의 삶이 플러시를 집필할때 많은 영감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삶에도 유년시절 동안 개와 함께 지내왔다. 지금도 침대 발치엔 개가 있어, 이불을 조심스럽게 빼내어 덮기 일쑤다.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면, 이 작은 견공들이 때론 주인의 머리 꼭대기에 있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눈치도 빠르며, 질투와 같은 감정 표현의 행동을 한다는 것도 느꼈을 것이다. 인간의 하루가 강아지에겐 삼일의 시간으로 흐르고 있다고 한다. 반려인 또는 동물을 사랑하거나 동물 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사랑스러운 플래쉬의 전기, 일대기를 들여다 봄으로써 3일의 시간 아니, 평생의 시간을 주인을 위해 내어주고도 더 큰 사랑을 내어주려는 개의 이야기에 쉬이 감동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신은 토끼가 생겨난 곳에 개가 생겨나라고 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문제 삼거나 토를 달 여지가 없다. 그러나 토끼 잡는 개를 왜 스패니얼이라고 부르는지에 대해서는 의혹과 이의가 제기된다.

배럿 양은 거울 앞에 자신과 함께 서라고 하더니 왜 그렇게 짖으며 덜덜 떠는 건지 물었다. 맞은편에 있는 작은 갈색 개는 자신이 아니던가? 그러나 '자신'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보는 것인가? 아니면 본래의 그인가? 플러시는 그 질문 역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실제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배럿 양에게 바싹 들이대며 '마음을 담아'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어쨌든 실재였다.

한달 내내 일년 내내 평생토록 화요일이었으면! 당신들 둘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해. 우리 셋은 가장 영예로운 대의명분의 공모자다. 우리는 공감으로 하나가 된다. 우리는 증오로 하나가 된다.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 요컨대, 플러시의 모든 희망은 이제 어렴풋이 알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 달려 있었지만, 그럼에도 확실히 드러나고 있는 승리는 그들의 공통관심사였다. 문명과 안전, 우정, 한가운데 있다가

그러나 플러쉬는 평범한 개가 아니었다. 그는 활기찼지만 성찰하는 개였다. 또한 인간의 감정에도 매우 민감했다.

누가 그 의자에 앉아있었는지 몰라요? 그의 냄새를 맡을 수 없어요? 플러쉬는 경탄했다

그 특색없는 누군가의 얼굴을 그는 여전히 "바렛 아가씨"라고 불렀다. 그녀는 여전히 존재했다. 나머지 모든 세상이 사라졌어도 그녀는 여전히 존재한다. 비록 그녀가 그에게 도달하기에는 여전히 넘을 수 없는 장벽이 그들 사이에 놓여있을지라도. 어둠이 다시 내려앉기 시작했고, 그 어둠은 그의 마지막 희망을 거의 부숴버릴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가? 말이 어떤 것을 말할 수나 있을까? 말은 말이 전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상징적인 것을 파괴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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