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에 가 닿기 위해서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흐름을타고 내려가는 것은 쓰레기뿐이다‘라고 상당히 용기를 주는 말이지요(로버트 해리스‘의 아포리즘」에서 인용).
나는 일반론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감히 일반론을 말하게해주신다면 죄송합니다), 일본에서는 그다지 보통이 아닌 것,
남들과 다른 것을 하면 수많은 네거티브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일단 틀림이 없겠지요? 일본이라는 나라가 좋든 나쁘든 조화를 중시하는(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는 체질의 문화를 가졌다는 것도 있고, 문화의 일극 - 집중 경향이 강하다는것도 있습니다. 말을 바꾸면, 프레임이 공고해지기 쉽고 권위가그 힘을 휘두르기 쉬운 것입니다.

특히 문학에서는 전후 오랜 기간에 걸쳐 ‘전위냐 후위냐
‘우파냐 좌파냐‘ ‘순문학이나 대중문학이냐‘라는 좌표축에 따라작품이나 작가의 문학적 위치가 세세하게 도표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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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 보이스도 현역 밴드로서 분명 인기를 누렸지만 음악적리더인 브라이언 윌슨은 오리지널한 음악을 창작하지 않으면안 된다는 중압감 때문에 신경이 병들어 어쩔 수 없이 장기간에걸친 실질적 은퇴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걸작 <펫 사운즈> 이후 그의 치밀한 음악은 ‘해피한 서편 사운드‘를 기대하던 일반청중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점점 복잡하고 난해한 것이 되어갔습니다. 

나도 어느 시점부터 그들의 음악에 공감할 수 없어 점점 멀리했던 한 사람입니다. 지금 다시 들어보면 ‘아, 이런 방향성을 가진 훌륭한 음악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 솔직히 그 ‘훌륭함‘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오리지낼리티는 그것이 실제로 살아 움직일 때는 좀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이렇다는 얘기입니다만, 특정한 표현자를 ‘오리지널‘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채워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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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낼리티는 많은 경우, 허용과 익숙해짐에 의해 당초의 충격력을 상실하는데 그 대신 그런 작품은 만일 내용이 뛰어나고 행운이 따라준다면 그렇다는 얘기지만-‘고전‘ (혹은 ‘준고전)으로 격상됩니다. 그리고 널리 사람들의 경의를 받습니다.

<봄의 제전>을 들어도 현대의 청중은 그렇게 당황하거나 혼란에 빠지지는 않지만, 지금도 역시 거기에서는 시대를 뛰어넘는신선함과 박력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체감은 하나의중요한 ‘참조 사항reference‘으로서 사람들의 정신에 편입됩니다. 즉 음악을 애호하는 사람들의 기초적인 자양분이 되고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봄의제전>을 들은 적이 있는 사람과 들은 적이 없는 사람은 음악에대한 인식의 깊이에 얼마간 차이가 생깁니다. 

어느 정도의 차이인지,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는 없지만 뭔가 거기에 차이가 생겨난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말러의 음악의 경우에는 약간 사정이 다릅니다. 그가 작곡한음악은 당시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일반인들은 혹은 주위의 음악가들조차 그의 음악을 대체적으로
‘불쾌하고 추하고 구성에 절도가 없고 번잡스러운 음악‘으로 인식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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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척도이기 때문에 나한테는 맞아도 그대로 다른 작가에게도 맞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방식 이외의 모든 방식을 배제한다‘는 건 결코 아니지만(내 방식과는 다르더라도 경의를 품을 수 있는 것은 물론세상에 수없이 많습니다), 개중에는 ‘이건 도저히 나와 맞지 않는다‘ 혹은 ‘이건 이해할 수 없다‘라는 것도 있습니다. 

어떻든 나는 나 자신이라는 축에 의해서 뭔가를 바라보고 평가할 수밖에없습니다. 좋게 말하면 개인주의지만 다른 말로 하면 자기 본위고 내 멋대로겠지요. 그래서 내가 그런 내 멋대로의 축이나 척도를 들고 거기에 맞춰 타인의 작품을 평가했다가는 그걸 당하는 쪽은 도저히 못 견딜 일이 될 거라는 마음이 듭니다. 

이미 작가로서의 지위가 어느 정도 정착된 사람이라면 또 모르지만, 이제 막 나온 신인 작가의 명운을 나만의 선입견이 걸린 세계관으로 좌지우지하는 그런 일은 무서워서 도저히 못 합니다.
하지만 그런 나의 태도를 두고 작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면, 뭐 그것도 맞는 말인지 모릅니다. 나 역시 "군조》 신인문학상‘이라는 창구를 거쳤고 거기서입장권을 한 장 받아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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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이 이러니저러니 하는 얘기도 현재로서는 굳이염려하지 않습니다. 종이가 됐든 화면이 됐든(혹은 화씨 451』적인 구두 전승이 됐든), 매체나 형식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책을 읽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괜찮습니다.

내가 진지하게 염려하는 것은 나 자신이 그 사람들을 향해어떤 작품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뿐입니다. 그 이외의 것은 어디까지나 주변적인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일본 전체 인구의 5퍼센트라고 하면 600만 명 정도의 규모입니다. 그만한 시장이라면 작가로서 어떻든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로 시선을 던진다면 당연히 독자 수는더욱더 불어납니다.

다만 나머지 95퍼센트의 인구에 관해서 말하자면, 이 사람들이 문학과 정면으로 마주할 기회는 일상적으로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그 기회는 앞으로 점점 더 감소할지도 모릅니다. 이른바 ‘활자 무관심‘은 더욱더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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