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를 통해 책을 제공받아 감사하게 읽고 주관적인 의견을 적었습니다.

야구와 축구는 게임의 판이 다르다. 야구 선수는 축구에서 다른 선수들만큼 잘할 수 없다. 그만큼 게임의 판이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판에서 게임을 한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사람은 그 판 자체를 새로 짜는 사람이다. 판을 새로 짤 수 있다면 그 판을 조정할 수도 있게 된다.
조선시대에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은 왕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왕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세력들이 많았다. 현대에서 속칭 비선실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마음대로 통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왕은 아니지만 왕이 움직일 수 있는 길을 설계하고, 권력이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고, 새로운 시대가 움직일 수 있는 전혀 다른 시스템을 만든 사람이 있다. 바로 정도전이다.
<스스로 왕이 될 수 없다면 왕을 만드는 자가 되어라>는 정도전의 면모를 과감없이 보여준다.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이면서 조선의 모든 체계를 만든 사람이 바로 정도전이다. 아마 태조 이성계도 정도전이 없었다면 조선 왕조 500년의 기틀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운 참모가 아니라 조선의 왕조가 작동하는 규칙과 통치 구조를 설계한 위대한 인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판에서 잘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정도전은 판 자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설계하는 사람이다. 책을 읽다보면 끊임없이 생겨나는 질문은 '나는 지금 남이 만들어놓은 판에서 경쟁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있는가?'라는 곳으로 향한다.

그래서 첫 번째 소제목부터가 강렬하다. 판에서 규칙을 지키는 것은 가장 멍청한 자살 행위다! 표현이 상당히 과격하지만 사실은 문제를 바라보는 위치를 바꾸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규칙 안에서 의심도 없이 더 잘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정도전의 관점에서는 그 규칙 자체가 정말 바꿀 수 없는 것인가를 고민한다.
정도전은 '고려'라는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 싶어했다. 새로운 국가를 구상했고, 새로운 통치 구조를 고민했으며, 새로운 제도를 설계했다. 어떤 사람은 이를 권력욕으로 볼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판을 새롭게 설계하는 능력이라 말한다. 높은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판 자체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조선 왕조가 500년 이상을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왕이 통치를 하든 국가가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권력이 왕 한 명에게 집중되는 것을 위험하게 보았고, 어리석은 임금이 등장하더라도 나라가 무너지지 않을 구조와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500년도 전에 뛰어난 사람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한 기업도, 한 국가도 시간이 지나면 주력이 된 인물들은 사라지게 된다. 여러 세대를 거치더라도 기업과 국가의 영속성이 지속되려면 무엇보다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정도전은 알았다. 어떤 사업이든, 조직이든 간에 사람이 없어도 잘 굴러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결국 가장 강력한 사람은 모든 일을 직접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