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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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집에 있는게 아니야, 여긴 요양원이 아니야,
여기서 나가는 길은 굴뚝으로 가는 것 뿐이야
(이게 무슨뜻일까? 우리는 곧 이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38쪽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인간성은
땅에 묻혔다. 혹은 그들 스스로, 모욕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줌으로써 그것을 땅에 묻어 버렸다.
사악하고 어리석은 SS 대원들, 카포들, 정치범들, 범죄자들, 크고 작은 일을 맡은 특권층들, 서로 구별되지 ㅇ낳으며 노예와도 같은 해프틀링까지,
독일인들이 만든 광적인 위계질서의 모든 단계들은
역설적이게도 균등한 내적 황폐감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로렌초는 인간이었다.-187쪽

우리는 우리들 몸에서 나는 악취에 이미 익숙해 있지만 여자들은 아니다. 그녀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을 표시한다.
우리에게서 나는 냄새는 잘 씻지 않아서 나는 일반적인 악취가 아니라, 들치근하고 불쾌한 해프틀링의 냄새다.
우리가 수용소에 도착할 때 우리를 맞아준,
숙소에서, 식당에서, 세면실에서, 그리고
수용소 변소에서 끊임없이 풍기는 냄새다.
그 냄새는 금방 몸에 배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젊은데 벌써 악취가 나다니!"
이게 우리가 새로 도착한 사람들을 맞이하는 인사법이다.-217쪽

그리 오래 시간이 흐르지 않아 유럽과 이탈리아는 그동안
순진한 환상에 젖어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파시즘은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가면을 쓰고 모습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파시즘은 새옷을 입고 다시 나타나기 위해 변신을 꾀하고 있다.원래의 모습을 잘 알아볼 수 없게,
좀더 존경받을 수 있게,그리고
파시즘으로 초래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계에 걸맞게 새로운 모습으로,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만일 내가 실제로 우리의 박해자들 중 한 명을, 아는 얼굴을, 그 오래전 거짓말을 다시 마주쳤다면 아마도 증오와 폭력의 유혹에 굴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파시스트가 아니다.
-269쪽

독일의 첫번째 적은 유대인들이었는데 히틀러가
독선적인 분노를 품고 밝힌 수많은 이유들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유대인들이 '다른' 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국, 러시아, 미국에서 다른 유대인들과 결혼해서 서로 친척이 되기 때문이었다. 복종하기 전에 사고하고 토론하는 문화의 후계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이 문화에서는 우상에게 인사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데
히틀러 자신은 우상으로 숭배받기를 갈망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는 지성과 의식을 불신하고 본능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고 주저 없이 선언했다.
마지막으로 독일계 유대인의 상당수가 경제, 재정, 예술, 학문, 문학 분야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실패한 화가이고 실패한 건축가였던 히틀러는
유대인들에게 분노와 좌절로 인한 질투심을 쏟아부었다.-297쪽

아우슈비츠의 문신을 생각해보라.
소에게나 새기는 문신을 인간에게 새겨놓은 것이다.
절대 문이 열리지 않는 가축용 객차를 생각해보라.
수용소로 이송되는 포로들은(남자, 여자, 아이들 모두)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배설물 속에 몇 날 며칠을
누워 있어야 했다.이름 대신 사용되는 수인번호, 숟가락도 주지 않아 개처럼 핥아먹어야 하는 배급(해방된 뒤 아우슈비츠 수용소 창고에서 엄청난 수의 숟가락이 발견되었다.)
-299쪽

시신을 이름도 없는 물건 취급해 금이빨을 빼내고
방직 재료로 쓰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시체 약탈,
비료로 쓰는 시신의 재, 실험용 기니피그로 전락해 약물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가 죽어간 남자와 여자들을 생각해보라.(세심한 실험 후에) 학살을 위해 선택되었던 방식 역시 상당히 상징적이다. 배의 화물 창고와 빈대와 이가 들끓는 곳을 소독할 때 사용하는 독가스가 사용되어야 했고 실제로 사용되었다. 이런 것들은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의 세기에 고안된 방법들이었지만 그중 어떤 것에도 수용소에서처럼 조소와 경멸이 넘쳐나지는 않았다.-299쪽

토리노 시의 공동묘지에 있는 프리모 레비의 묘에는 174517 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왼쪽 팔뚝에 문신으로 새겨진 수인번호다. 그앞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세계 전체가 망각의 늪에 빠지더라도 이 묘석에 새겨진 수수께끼와 같은 숫자만은 언제까지나 인종차별과 파시즘이 초래한 참극을 끊임없이 고발하고, 다시금 찾아올 위기에 경종을 울릴 것이다.-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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