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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핑거
김윤영 지음 / 창비 / 2008년 8월
평점 :
리뷰를 쓰는 이유엔 여러가지가 있다. 솔직히 일기나 싸이나 블로그에 남겨도 될 개인적 독후감을 이렇게 공유할 수 있는 곳에 굳이 남기는데엔 그럴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결벽이지만 난 한번 아니다 싶은 작가는 죽어도 노쌩큐다. 그런데 이런 작가가 내 목록에 넘 많다. 예를 들어 이상문학상 받은 모작가, 그 땐 참 좋아했었지만 표절파문과 동인문학상 사건, 등등으로 그 작가와 멀어졌다. 아무리 이 시대가 변해도 작가는 작가다. 자존심과 좀 다른 고집, 품격이 있어야한다.
우리가 무릎팍도사에 나온 장미란을 보고 감탄한 이유는 그녀가 너무 말잘하고 지혜로와서만이 아니었다. 생각못한 인품, 품격을 그녀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김윤영의 책이 나왔다고 그녀의 골수독자인 후배가 말해줘서 읽게 됐다. 첫번 책은 패스, 하지만 두번째 창작집이었던 <타잔>이 꽤 괜찮았었다. 하지만 내 의식 속엔 그저 좀 희귀한 여류작가? 반전의 묘미를 잘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린핑거>를 다 읽고 난 다음, 나는 내 페이보릿 리스트를 다시 작성했다. 하성란과 성석제 이창동과 박민규 윤영수와 권여선 옆에 김윤영을 나란히 올렸다.
결론적으로 본다면, 김윤영의 소설은 아직 한국의 독자들에게 약간 낯선 케이스다. 보통 독자들이 혹하는 주옥같은 화려한 문장이나 탐미적 세계, 이런 거와 거리 멀다. 모순되는 말이지만 흡입력은 대단한데 문장은 아주 드라이하다. 그게 함정이다.
그러나................어려운 문장이 없어서 슥슥 넘어가는데 꼭 결말에서 후두부를 강타한다. 밋밋한 여운이 아니라 진짜 뒷골이 땅기게 한다. 어떻게 보면 대중소설이나 미국의 서스펜스 소설같은 유형이다. 그래서 일견 만만해보이지만 실제로 자기가 뭘 읽었는지 모르는 사람 꽤 된다. 그리고서 이 작가 소설이 쉽다고 한다.
여기 표제작 그린핑거도 그렇다. 남편이 어떻게 된 건지, 그 자체가 반전이고 결말이라고 하지만 그 복선들을 일일이 말해주지 않으면 이 소설의 참맛을 알 독자들은 의외로 적다. 당연하지.... 독자들은 의외로 게으르다.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시리즈도 정말 말 그대로 교묘한 연작인데 잘 만든 미니시리즈같은 기분도 난다. 이건 연작 아닌 두 단편보다는, 머리 안 굴리고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경장편인 셈이다. 솔직히, 전보다 형식적세련미는 떨어졌는지 모르지만 더 대중적으로 '잘 '읽힐 수 있는 작품들이다. 여기선 작가의 고육지책이 느껴진달까. 특히 5편의 결말은 사실 더 독했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 책을 읽고 맘에 든 건 이제야 책에서 전과는 다른 연륜이 배어 나와서다.
무슨 인터뷰에선가 그녀가, 독자들과 함께 같이 늙어가고 그 고민을 늘 책에 담고 싶다 했을 때, 좀 뻔하다 싶었었다.
사실 우리에겐 그런 작가가 필요한 게 아닐까. 돈 때문에 아이 때문에 사랑때문에 다 겪는 우리의 스노비즘을 아주 유니크하게 풀어주는 작가.....사실 매우 드물다.
김대중이 당선되던 98년년 대선을 가지고 낄낄거리며 쓴 듯한 <비밀의 화원>, 그후 10년이 지났다. 그런 식으로는 시대를 돌파할 수 없다는 걸 안 건지 그래서 도자기를 뚫는 벼룩의 심정을 운운한 건지는 잘 모르겟다. 하여간 그때 치기어린 소설보다 지금의 이 소설들이 훨씬 풍요롭다. 이제는 그녀의 장편을 읽고 싶어진다.
---전망좋은 집의 결말의 한구절, 별거 아닌 듯 흘리는 이런 문장, 따로 떼어놓고 보면 별거 아니지만 그 소설 전체와 어우려져 절묘한 문맥에서 나오는 이런 말을,글을 나는 고대한다. 이 시대 필부들의 속마음을 읽는 섬세한 사유에 나는 아아, 하고 무릎을 쳤다.
"근데 말이야 ... 난 참 그랬어. 이렇게 어이없게 한 세대가 바뀌는 건가 싶어서....참 그렇다. 너도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