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디저트 - 우리 집이 베이커리로 변신하는 레시피
우치다 마미 지음, 김유미 옮김 / 테이스트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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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한다. 특정 시간대마다 풍겨오는 베이커리의 빵 굽는 냄새를 좋아한다. 그리고 달달한 디저트와 그를 즐기는 시간을 무엇보다 좋아한다. 일주일이 끝나갈 때쯤이면 달달한 쿠키나 케이크, 빵들을 구매해 내 여유로운 주말에 함께 곁들일 생각을 하며 탄내가 날 만큼 행복 회로를 돌린다.

 

지난 주말의 행복은 몇 종류의 쿠키와 이 책이었다. <홈디저트>

 

우리 집이 베이커리로 변신하는 레시피라는, 마치 마법처럼 홈 베이킹의 세상을 열어 줄 것같은 부제목과 달콤한 케이크로 가득 찬 표지로 한순간에 마음을 빼앗은 책 <홈 디저트>. 이 책은 저자 우치다 마미의 여러 추억들을 바탕으로 선정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어울리는 다양한 베이킹 레시피가 담겨있다.

 

책을 펴보기 전, 이 책의 외적인 장점과 단점을 훑어보았다. 그 결과, 아쉬운 부분이 딱 하나 있었는데, 책의 표지에 오염에 대비한 코팅이나 추가 후가공이 없다는 점, 하드커버가 아니라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레시피북은 오염에 강한 하드커버나 코팅된 표지로 제작한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소프트한 커버를 선택하며 깔끔하고 부드럽게 살려낸 표지 색감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만일 유연하게 접을 수 있거나, 이동하면서 또는 가방에 넣어 다닐 레시피북을 찾고 있다면 가벼운 커버가 오히려 큰 메리트가 될 수도 있겠다. 이 부분은 개인의 취향에 맞춰 선택하면 될듯하다.

 

, 여름, 가을, 겨울. 각각 다른 날씨와 그에 따른 무드에 맞춰 구성된 총 38가지의 디저트 레시피와 많은 레시피의 기본이 되는 잼, 스콘, 버터케이크 등을 만드는 방법. 그리고 없어선 안될 재료와 도구들까지. 야무지게도 챙겼다.

 

사실 나는 날씨에 맞춰 추운 날엔 국밥, 더운 날엔 메밀. 이런 식의 식사 고민만 해봤지 디저트는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왜냐면 일단 달달한 건 언제 먹든 맛있다는 생각이었으니까. 정말 간단한 알고리즘이었다.

 

책 안에는 디저트 레시피와 함께 디저트에 스며있는 특정 계절의 이미지들, 그리고 저자가 이 디저트를 처음 먹었을 때 느꼈던 맛을 설명하는 짧은 글들이 적혀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 글이 정말 매력적이다.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해당 디저트의 매력을 더해주는 표현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그 날씨와 디저트의 맛이 떠오를 정도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계절에 잘 어울리는 깊은 맛을 가진 웨일스 케이크, 느지막한 오후, 지친 몸을 위로해 줄 묵직한 달달함을 자랑하는 가나벨엘렌느, 뜨거운 기온 탓에 가볍고 상큼한 맛이 땡기는 여름에 어울리는 복숭아꿀레몬샹티, 레몬 마들렌. 등등 계절이 가진 단점을 상쇄하고 장점을 극대화해줄 디저트 메뉴와 그에 어울리는 몇 가지의 차에 대한 소개까지. 각 계절에 녹아있는 소중한 이야기들이 <홈디저트>라는 책 안에서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가을과 겨울의 사이쯤을 지나고 있는 지금, <홈디저트>에서는 두툼하거나 부드러운 달달함을 자랑하는 디저트 몇가 지를 추천하고 있는데, 난 그 중에서 시나몬 번에 확 꽂혀버렸다. 다음 주말은 시나몬 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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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 라이팅 시작하기 - 고객 경험 관리를 위한 메시지 가이드
권오형 지음 / 유엑스리뷰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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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속담이 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입은 살았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한다.”, “넌 말하는 것만 보면 장사꾼(or 사기꾼)이 딱이야.”

누군가는 말만 백날 천날 잘하면 뭐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이젠 말이라도 잘하고 글이라도 잘 쓰면 뭐라도 될 수 있는눈길 한 번이라도 더 끌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왔다.

 

기업의 특징과 목표마케팅 포인트를 잘 잡은 메시지 하나가 기업을 대표하고그 메시지를 통해 고객들이 기업을 인식하고 마음에 폭 품게 되는 그런 시대가 왔다는 말이다.

 

국내 최초 UX 전문 출판사 유엑스리뷰가 출간한 <UX 라이팅 시작하기>는 많은 기업들이 무게를 두기 시작한 UX 라이팅이라는 분야의 기초와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UX 라이팅을 담당하며 쌓아온 저자의 노하우를 정리해둔 책이다저자 권오형 작가님은 쿠팡과 무신사에서 대고객 메시지 가이드를 정립하고 관리해 왔으며, 10년이란 시간을 직접 글을 쓰거나 검수하며 보낸 이 분야의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다이런 대선배(?) 님의 노하우가 담긴 책이라니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기업의 입장을 대표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시선을 사로잡는 강한 힘을 가진 글쓰기말만 들어도 골치가 아프고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이 분야에 대해 호기심이 있다면 이 책을 한번 집어보라 권하고 싶다노하우니 경험이니최초니.. 이런 단어들을 늘어놓는 걸 보면 얼핏 약파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일단 속는 셈 치고 한번 열어보시길 바란다.

 

놓치고 있거나 방향조차 잡지 못했던 라이팅의 바른 첫걸음을 떼는 요령부터 고객을 사로잡을 요소를 캐치할 수 있는 섬세한 눈길을 갖추는 방법까지라이팅의 기초부터 심화까지 이 얇은 책 안에 가득 차있다. 160페이지 정도의 분량 덕분에 막 이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햇병아리인 나에게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는데그렇다고 해서 또 날림으로 엮어낸 책은 아니었다현직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소 가볍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이 책의 제목을 잊지 말자이 책은 시작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책이다.

 

<UX 라이팅 시작하기>는 온전히 메시지를 담은 글을 쓰는 방법에 집중한다솔직히 일단 무엇이든 쓰고나면 다 글이 된다밑도 끝도 없는 말을 늘어놓고 히읗과 키읔을 남발한다 해도 그게 글이 아니라고 말하긴 애매하다어쨌든 쓰면 글이다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을 쓰는 건 쉽지 않다고려해야 할 문제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1장 <바로 알다>에서는 글의 틀을 잡는 방법과 언제든 단짝처럼 옆에 찰싹 붙여놔야 하는 국립국어원에 대한 소개를, 2장 <바로 쓰다>에서는 틀을 잡아놓은 글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을, 3장 <바로잡다>에서는 올바르게 쓰인 글을 더 읽기 쉽고 매력적으로 다듬는 방법을 소개한다.

 

UX 라이팅이라는 게 나만의 글을 쓴다기보단 고객과 기업을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 다른 분야들과 접점이 있으면서도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아무래도 가장 큰 차이점은 2개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쓴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내 이름만을 건 글을 올바르게 쓰지 못한다면 내 이름만 망치는 것인데기업을 대표하는 글이라니.. 나와 기업두 개의 이름을 걸고 글을 써야 하다니..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말 한마디로 기업을 먹여살릴 수도순식간에 기업의 이미지를 왜곡할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다.

 

<UX 라이팅 시작하기>는 많은 기업들과 마케팅 분야 종사자들이 UX 라이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음에도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책을 찾기 힘들었던 이 시점에서 용감한 선두주자로 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을 시작으로 더 다양하고 깊은 내용을 담은 메시지 가이드 책들이 출시된다면 더 없이 좋을 것 같다그리고 그 누구도 먼저 시도하지 않았던 ‘UX 전문 출판사라는 미개척지에 도전장을 내민 유엑스리뷰의 행보가 퍽 기대되는 순간이다언젠가 이 분야로 이직할 날을 꿈꾸고 있는 나에게 이만큼 든든한 동반자가 또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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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피리 - 동화 속 범죄사건 추리 파일
찬호께이 지음, 문현선 옮김 / 검은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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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어린 시절 가족들과, 친구들과, 선생님과 또는 책상에 홀로 앉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동화를 읽었던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 가장 큰 기억으로 남은 동화는 해님달님이다. 그땐 책에 그려져있는 엄마 옷을 입은 호랑이가 그렇게 무서웠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호랑이는 무섭기보단 진짜 나쁜 놈이다. 남매를 먹여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돌아가는 엄마를 해하다니. 그것도 모자라 남매까지 속이려고 하고... 엄마는 또 어디에 계시는 건지.. 되짚어보니 그 호랑이, 좀 나쁜 놈이었다.

 

의식의 흐름은 접어두고 아무튼, 학년이 높아지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동화, 동요, 어린이 만화 같은 것은 어린이나 보는것. 유치한 것이란 이상한 자존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화를 봐도 예전처럼 순수하게 설레지 않았고 (위에 써 둔 것처럼..) 시기에 따라 교과서에 적혀있는 비문학이나 고전시가 같은 것들, 요즘 대세라는 소설과 잡지들을 들여다보기에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동화를 제대로 본 게.. 얼마나 오래 지났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왠지 동화는 어른이 읽기엔 유치하고 뻔하다고 생각했다. 특유의 발랄하고 귀여운 느낌이 언제부턴가 어색해지기도 했고, 긴장감, 호기심을 갖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동화에 대한 향수는 남아있었기에 색다른 느낌의 동화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다.

 

그래서 각색된 동화와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 같은 책들을 읽어보기도 했는데 내용(그냥 19금 성인물이었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아 나에게 딱 맞는 적당한 각색의 동화를 찾는 건 불가능한 걸까..”하고 동화는 아예 잊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미스터리, 추리 장르에 꽂혀 다음 책을 찾아 헤매던 내 앞에 아주 운명적으로 이 책이 나타났다. 찬호께이 작가의 <마술 피리>. 동화를 추리 소설로 재해석하다니! 딱 이거다 싶었다.


 

찬호께이는 범죄소설 <13.67>과 공포소설 <염소가 웃는 순간>등으로 유명세를 탄, 중국어권에서 크게 인정받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그는 우리가 어릴 적 한 번쯤은 읽어봤거나 적어도 제목쯤은 기억하고 있을 <잭과 콩나무><푸른 수염>, <피리 부는 사나이>를 현대적이고 영리하게 재해석해낸다. 책의 분량은 해설을 포함하여 꽤나 방대하게 느껴지는 600페이지다.

 

찬호께이 작가는 내가 지금껏 동화를 보면서 한 번도 떠올려본 적 없는 궁금증들을 손에 들고, 아주 적극적으로 동화 밑에 숨겨져있던 헐거운 틈을 비집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싶은 조각들을 모아 한편의 추리소설을 완성한다.


 

이야기의 주인공 라일 호프만과 한스 안데르센은 <잭과 콩나무>, <푸른 수염>, <피리 부는 사나이>의 배경이 된 나라 영국, 프랑스, 독일을 여행한다. 호프만은 고위 귀족이지만 안락한 침구와 산해진미보다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말솜씨와 눈썰미가 훌륭한 호프만과 그를 지키는 든든한 조수 한스는 마을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마주하고 그에 얽힌 단서들을 풀어나간다.

 

어떤 사건이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없어. 모든 게 연결되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존재 의미가 있는 법이라고.”

 

총 세 챕터로 이뤄진 이야기들 모두 원작 동화처럼 악인(or 속을 알 수 없는 자들)과 억울한 피해자(or 선인)의 대립구도로 이뤄진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호프만과 한스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소년과 살해 위협을 받는 귀족 부인을 만나기도 하고 소년, 부인과 반대로 거짓말을 술술 늘어놓는 교활한 귀족, 비밀을 가진 거인을 만나기도 한다. 사건들을 보면 대부분 분명한 선인과 악인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략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에 휩쓸린다. 하지만 호프만은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조용히 파고들어 끝내 뒤엉켜 있던 원인과 결과를 새롭게 풀어낸다.

 


이건 추리소설이다.”라고 생각하며 나름 촉을 세운 채 책을 읽었는데, 내 추리는 한 번도 제대로 된 방향을 가리키지 못했다. 내가 똥촉이란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똥촉일줄은 몰랐다. 되짚어보면 모든 게 복선이었고 원인, 의미였는데 빨리 결말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읽히는 대로 후루룩 넘겨서 그런지.. 작은 것들의 의미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다. <하멜른의 마술 피리 아동 유괴사건> 챕터의 결말쯤에 다랐을 땐, 눈치 없던 내가 괜히 머쓱해져 너무 자연스럽게 숨겨둔 증거들을 탓해보기도 했다.

 

<마술 피리>는 결국엔 권선징악이라는 동화의 결말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살림과 동시에 사건 안에 들어있는 일부분을 뒤집으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성인들을 위해 수위를 높이거나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며 과하게 원작을 훼손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마술 피리>는 어른들이 읽어도, 머리가 조금 자란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 만큼 대중적이고 범 세대적인 동화+추리 소설이었다.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동화들의 색다른 면을 보고 싶다면,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추리 소설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이 딱 알맞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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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 - 시인이 보고 기록한 일상의 단편들
최갑수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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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굴곡 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감사하자싶다가도 갑자기 답답함이 훅-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생각한다. 떠나고 싶고, 벗어나고 싶고, 새로운 곳을 걸어보고 싶다고.

 

코로나19의 유행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가장 먼저 일상과 여행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일상과 여행, 심지어 생계까지 잃은 일부 사람들은 점점 세상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일상과 여행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실 나는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여행에 대한 갈증과 그의 의미 또한 함께 잊고 있었다.

 

나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를 읽으며 생각했다. 지루한 일상에 두근거림과 기대감을 불어넣고 또다시 돌아올 일상을 준비할 힘을 주는 것.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 무거운 짐과 지쳐버린 몸에 일순간 후회하다가도 이 또한 내 선택으로 채운 내 시간의 일부고 인생의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란 생각에 다시 힘을 얻게 되는 것. 내가 잠시 잊고 있던 여행이란 건 대략 이런 것이었다. 설렘과 두려움, 상쾌함이 공존하는 여행을 해본 게 얼마나 오래됐는지. 이제 그의 소중함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여행에 대한 갈증이 잔잔하게 차오른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는 일상과 완전히 분리된 느낌이면서도 조금은 특별한 일상 같기도 한 찰나의 순간을 기록한 최갑수 작가의 단편들을 모아둔 책이다. 이 책은 낯선 땅을 밟고, 낯선 언어를 듣고, 낯선 얼굴들을 마주하면서 채워간 나의 언젠가를 추억하고 후회를 보살피며 인생과 외로움의 의미를 되짚는다.

 

최갑수 작가는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변할 나를 기대하며 여행을 준비하고 나만의 기준에 맞춘 여행 BGM을 들으며 길을 걷는다. 언젠가는 술술 잘 풀리는 날이 있고 언젠가는 모든 게 다 꼬여버리는 날도 있지만 그는 이런 여행과 일상의 하루하루에서 인생의 단면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이 수많은 낯선 도시를 걷고, 인생을 경험하며 알게 된 것들을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놓는다.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믿지 않는 것보다는 믿는 것이 좋다.”

젊음은, 청춘은 낭비하고 탕진하라고 있는 거지, 아껴두라고 있는 게 아니야.”

청춘이니까 저지르고 살아라. 그게 청춘의 특권이니까.”

실수는 실수일 뿐이니까.”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이 부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결국 인생이란, 청춘이란 새로운 것에 부딪히고 도전하고 또 실패해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거려나. 일상을 되찾는 때가 온다면 가장 먼저 청춘을 낭비할 바보 같은 여행을 떠나리라 다짐해 본다.

 

언젠가 다시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기가 온다면 그때는 가장 먼저 모든 부담을 내려놓고 홀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매번 다음 해엔 꼭 혼자 여행을 가봐야지.”라고 다짐하면서도 홀로, 가끔씩은 외로움을 느끼며 여행할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여행은 혼자 남는 것이고, 인생은 결국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보고 바로 새롭게 결심하게 됐다. 인생을 살아가려면 커다란 외로움도 이겨내야 하고, 새롭게 변하는 하루에도 적응해야 하는데 나는 그 순간들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하고 준비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다시 여행을 떠난다면 꼭 외로움과 새로움을 흠뻑 느껴봐야지.



 

여행은 우리가 먼 옛날 잃어버렸던 청각을 회복하는 일.”

 

매일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나 자신이 먼지만큼 하찮은 존재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발전하는 것도 달라지는 것도 없는 듯한 기분이 들면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이럴 땐 낯선 장소에 내 몸을 내던지고 평소에 아껴뒀던 돈을 펑펑 쓰며 색다른 하루와 여행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게 가장 빠른 회복 방법인데.. 당장 떠날 수 없으니 책에 담긴 단편들을 읽으며 마음을 위로해 본다.

 

단편과 시로 구성되어 있어 챕터별로 천천히 끊어 읽어도 좋고 글을 읽기 싫은 날이라면 담백한 시선으로 담아낸 여러 나라들의 사진들을 가볍게 후루룩 훑어봐도 좋다. 글을 읽지 않아도 마음을 가라앉히기엔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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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일
조성준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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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전부였던인생이 곧 예술이었던 이들의 이야기 

 

예술가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는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예전의 나는 화려한 인생독특함, 특별함, 자신만의 철학같은 단어들을 나열하곤 했다 예술적 재능을 열망하고 뭇 예술가들을 사랑하는 팬으로 그들을 나와 다른 존재로 추앙하던 나로서는 당연한 대답이었다왠지 예술가는 자신의 세계를 꿋꿋이 지켜온 완벽하고 신적인 존재 같았다힘든 시절도 예술에 대한 혼으로 훌쩍 이겨낸그런 초인적인 존재 같았달까.

 

내가 보고 있는 그들의 재능엔 그것을 한껏 끌어올려 준 피나는 노력과 시대의 흐름을 타는 운 같은 것도 한몫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넘어야 하는 인생의 첫 커다란 관문입시를 겪으면서였다재능이 있다고 다 되는 것도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내가 무조건 우긴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었다수많은 관문을 넘어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고이것은 재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하는 예술가들도 이 수많은 관문을 넘은 나와 같은 사람이었고그들에게도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시절이재능을 뽐내기 위해 이겨내야 했던 한계들이가끔씩은 주저앉은 순간들이 있었다는걸. <예술가의 일>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예술가의 일>은 멀게는 1700년대(가쓰시카 호쿠사이)부터 가깝게는 2010년대(데이비드 보위박남옥어리사 프랭클린 자하 하디드이타미 준 등..)까지 활동 또는 생존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각 챕터엔 건축가화가영화감독피아니스트가수배우 등 여러 예술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의 삶을 응축해서 담아낸 글들이 담겨있다익숙한 이름도익숙하지 않은 이름도 있었고이름은 조금 어색하지만 알고 보니 그가 남긴 흔적 하나쯤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이 작품이 이 작가 거였어?!”하며 짐짓 놀란 챕터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영화와 연기 분야에 연관된 인물들의 이야기에 특히 마음이 많이 갔는데장국영 배우와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감독님의 챕터그리고 <벨벳 골드마인>의 모델이었던 데이비드 보위와 최근 영화 <리스펙트>를 통해 만나게 된 가수 어리사 프랭클린의 챕터에서 꽤 오랜 시간 머물러있었다조금 일찍 마무리되거나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낸 이들의 인생에서 난 몇 가지 질문을 떠올리고이들이 남긴 말들을 주워 담을 수 있었다.


 

<예술가의 일>은 현재 이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이 주인공인 책이다최근(10년 이내)까지 작품을 남긴 예술가도 있고몇 세기 전에 유작을 남기고 떠난 예술가들도 있다하지만 이들의 이름과 작품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기초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누군가의 인생이 변하고 마무리되는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이들의 재능과 열정,은 여전히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인생사를 훑으며 그들의 아픔열정그들이 살다간 시대상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고독과 사회적 차별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에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고오래전부터 그 불편함에 물음표를 찍고 목소리를 냈던 예술가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예술적 표현으로 세상에 저항했던 그들의 흔적은 퍽 아름답고 고귀하게 다가온다.

 

같은 여성의 눈으로 봐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특히 사회적으로 정해진 여성상에 맞서거나 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는 이유로 질타를 받아야만 했던 천경자박남옥페기 구겐하임과 같은 인물들의 인생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이들이 세상에 남겼던 질문들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순간 쓴맛이 올라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예술가들이 사회를 향해 남긴 질문들을 해소하는 것은 이들의 흔적을 통해 감동과 위로를 받았던이들의 흔적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몫일 터이다.


 

예술은 타고난 재능과 눈에 보이는 화려함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예술가들은 끝없이 노력하고 자신과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그리고 발전에 대한 열망과 진심인생의 일부를 떼어내 끝내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계량하기 어려울 만큼 가치 있는 작품들과 그것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예술가의 인생이 저물어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빛나고 있다.

 

삶은 짧고 예술은 길다.” 작가의 말에도 등장하는 이 말다소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만큼 예술가들의 삶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말이 또 없다예술가의 일이란예술가의 인생이란 이런 게 아닐까내 인생이 마무리되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는 흔적을 남기는 것 말이다.


 

예술가의 인생은 화려하기도 하고특별하기도 하고필요 이상으로 고독하고 슬프기도 하다예술이 전부였던인생이 예술이었던 33인의 예술가들의 인생을 담은 책 <예술가의 일>. 33인의 예술가들을 잘 몰랐던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33인의 에술가들 중  한 명쯤은 마음에 푹 품을 수 있을 것이다예술가이기 이전에 꽤나 인간적이었던 이들의 삶과 숨겨진 마음들을 알고 나면 그의 작품을 더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

 

책을 다 읽고 책 표지를 빛에 비춰보니 손자국이 꽤 많이 남아있었고앞표지는 살짝 들떠있었다그만큼 꽤 오랜 시간 이 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는 뜻이겠다오랜 시간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고나는 <예술가의 일>이라는 책을 그렇게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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