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 피리 - 동화 속 범죄사건 추리 파일
찬호께이 지음, 문현선 옮김 / 검은숲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든 어린 시절 가족들과, 친구들과, 선생님과 또는 책상에 홀로 앉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동화를 읽었던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 가장 큰 기억으로 남은 동화는 해님달님이다. 그땐 책에 그려져있는 엄마 옷을 입은 호랑이가 그렇게 무서웠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호랑이는 무섭기보단 진짜 나쁜 놈이다. 남매를 먹여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돌아가는 엄마를 해하다니. 그것도 모자라 남매까지 속이려고 하고... 엄마는 또 어디에 계시는 건지.. 되짚어보니 그 호랑이, 좀 나쁜 놈이었다.

 

의식의 흐름은 접어두고 아무튼, 학년이 높아지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동화, 동요, 어린이 만화 같은 것은 어린이나 보는것. 유치한 것이란 이상한 자존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화를 봐도 예전처럼 순수하게 설레지 않았고 (위에 써 둔 것처럼..) 시기에 따라 교과서에 적혀있는 비문학이나 고전시가 같은 것들, 요즘 대세라는 소설과 잡지들을 들여다보기에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동화를 제대로 본 게.. 얼마나 오래 지났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왠지 동화는 어른이 읽기엔 유치하고 뻔하다고 생각했다. 특유의 발랄하고 귀여운 느낌이 언제부턴가 어색해지기도 했고, 긴장감, 호기심을 갖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동화에 대한 향수는 남아있었기에 색다른 느낌의 동화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다.

 

그래서 각색된 동화와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 같은 책들을 읽어보기도 했는데 내용(그냥 19금 성인물이었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아 나에게 딱 맞는 적당한 각색의 동화를 찾는 건 불가능한 걸까..”하고 동화는 아예 잊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미스터리, 추리 장르에 꽂혀 다음 책을 찾아 헤매던 내 앞에 아주 운명적으로 이 책이 나타났다. 찬호께이 작가의 <마술 피리>. 동화를 추리 소설로 재해석하다니! 딱 이거다 싶었다.


 

찬호께이는 범죄소설 <13.67>과 공포소설 <염소가 웃는 순간>등으로 유명세를 탄, 중국어권에서 크게 인정받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그는 우리가 어릴 적 한 번쯤은 읽어봤거나 적어도 제목쯤은 기억하고 있을 <잭과 콩나무><푸른 수염>, <피리 부는 사나이>를 현대적이고 영리하게 재해석해낸다. 책의 분량은 해설을 포함하여 꽤나 방대하게 느껴지는 600페이지다.

 

찬호께이 작가는 내가 지금껏 동화를 보면서 한 번도 떠올려본 적 없는 궁금증들을 손에 들고, 아주 적극적으로 동화 밑에 숨겨져있던 헐거운 틈을 비집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싶은 조각들을 모아 한편의 추리소설을 완성한다.


 

이야기의 주인공 라일 호프만과 한스 안데르센은 <잭과 콩나무>, <푸른 수염>, <피리 부는 사나이>의 배경이 된 나라 영국, 프랑스, 독일을 여행한다. 호프만은 고위 귀족이지만 안락한 침구와 산해진미보다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말솜씨와 눈썰미가 훌륭한 호프만과 그를 지키는 든든한 조수 한스는 마을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마주하고 그에 얽힌 단서들을 풀어나간다.

 

어떤 사건이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없어. 모든 게 연결되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존재 의미가 있는 법이라고.”

 

총 세 챕터로 이뤄진 이야기들 모두 원작 동화처럼 악인(or 속을 알 수 없는 자들)과 억울한 피해자(or 선인)의 대립구도로 이뤄진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호프만과 한스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소년과 살해 위협을 받는 귀족 부인을 만나기도 하고 소년, 부인과 반대로 거짓말을 술술 늘어놓는 교활한 귀족, 비밀을 가진 거인을 만나기도 한다. 사건들을 보면 대부분 분명한 선인과 악인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략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에 휩쓸린다. 하지만 호프만은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조용히 파고들어 끝내 뒤엉켜 있던 원인과 결과를 새롭게 풀어낸다.

 


이건 추리소설이다.”라고 생각하며 나름 촉을 세운 채 책을 읽었는데, 내 추리는 한 번도 제대로 된 방향을 가리키지 못했다. 내가 똥촉이란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똥촉일줄은 몰랐다. 되짚어보면 모든 게 복선이었고 원인, 의미였는데 빨리 결말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읽히는 대로 후루룩 넘겨서 그런지.. 작은 것들의 의미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다. <하멜른의 마술 피리 아동 유괴사건> 챕터의 결말쯤에 다랐을 땐, 눈치 없던 내가 괜히 머쓱해져 너무 자연스럽게 숨겨둔 증거들을 탓해보기도 했다.

 

<마술 피리>는 결국엔 권선징악이라는 동화의 결말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살림과 동시에 사건 안에 들어있는 일부분을 뒤집으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성인들을 위해 수위를 높이거나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며 과하게 원작을 훼손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마술 피리>는 어른들이 읽어도, 머리가 조금 자란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 만큼 대중적이고 범 세대적인 동화+추리 소설이었다.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동화들의 색다른 면을 보고 싶다면,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추리 소설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이 딱 알맞을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