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나를 품으며
가린(허윤정) 지음 / 자화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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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슬픔과 아픔, 외로움과 괴로움을 모두 내려놓고 안기고 싶은 표지 아래 '모든 나를 품으며'라는 책 제목이 떠있다. 아크릴 물감이 덧칠된 듯한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구름 낀 하늘 아래 밀밭 풍경(Wheatfield under Thunderclouds)이 떠오른다.


1890년 삶을 마감한 반 고흐는 인생의 마지막에 밀밭을 그렸는데, 이 작품은 많은 밀밭 작품 중 하나이다. 그는 '슬픔과 극심한 고독'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동시에 자연을 통해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들이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몰라. 예를 들면 내가 시골에 대해 건강하고 기운을 돋아준다고 느끼는 요소들 같은 거 말이야."라고 했다고 한다.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6720&docId=6120840&categoryId=46846)


가린 작가의 『모든 나를 품으며』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전달해 준다.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던 일에도 턱 걸리게 되고, 속이 비좁아지면서 여유가 사라지고, 누군가를 만날 때는 의심이 앞서나가고, 좋아했던 사람과도 멀어지게 될 때(18쪽)' 마음은 무너진다.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지만, 무너진 둑을 쌓는 일은 한 세월이다. 가린 작가는 자신의 슬픔과 아픔, 외로움과 괴로움을 꺼내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의 나는 계속 변하겠지. 어쨌든 그런 나도 나일 거라서 기대된다."(235쪽)




이 책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만 나이지만 않다는 걸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 모든 나를 품으며 나는,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23쪽)' 즉, 내가 좋아하지 않는 모습도 나라는 걸 받아들이라고 한다.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아.

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 자신의 못난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이겠나. 삶은 딱 떨어지지 않으니까. '만약 어떤 일에 1부터 10까지 숫자가 적혀 있다고 하면, … 나한테 1은 1뿐만 아니라 1.25, 1.34도 있는 거(41쪽)'라고 한 말처럼 삶은 예-아니오로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에는 유효기간이 없다."라는 문장(62쪽)처럼 잘 묻어놓은 1.25나 1.34 같은 감정들. 그 감정들 역시 눈을 감았다 뜬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떤 이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알아주는 게 필요하다(79쪽)'고 한 것처럼 자기 자신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는 게 필요하다.




나는 있잖아. 늘 행복을 지나오고 있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지만, 너만큼은 그 시간을 매일 지나고 있기를 바라. 그때 우리가 함께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나는 어딘가에서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을 거야.(83쪽)


한 문장 한 문장 지나갈 때마다 마음이 묻어있다는 게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글로 전하는 위로를 계속 받고 있으니 알 수 없는 마음이 자꾸 따뜻해진다.


제자리걸음만 반복한다고 해도, 걷고 있는 우리는 근육과 체력을 키우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어. 하지만 때로는 나 혼자만 뒤처진 것 같은 느낌이 몰려오겠지. 그런 날이면, 너는 너를 믿기로 해. 그 순간마저도 앞으로 가는 중이라고 말이야.(191쪽)


느리지만 좋아하는 것을 계속 찾아나가는 나처럼,

다른 느린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줄 밤의 편지 같은 책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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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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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교실 안쪽에는 한쪽 어깨에 대충 가방을 멘 남학생이, 바깥쪽에는 양갈래 머리를 한 여학생이 있다. 안과 밖의 경계를 사이에 둔 두 사람. 서로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서로 다른 시간에 머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사람이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을지 기대된다.


소설은 '처음 고등학교 교복을 입던 날 엄마는 눈물을 보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소리내 울지도 못하는 엄마, 그 옆에서 부자연스럽게 웃는 아빠, 그리고 무슨 말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나', 선우혁. 혁에겐 형이 있었다. 12년 전 형이 죽었고, 시간이 흘러 형이 죽었을 무렵을 나이가 되었다. 쌍둥이처럼 닮은 두 사람. 사람들은 혁에게서 죽은 형, 선우진을 본다.


"하루는 형에게 너를 맡기고 잠시 외출한 적이 있었어. 돌아왔더니 집은 장난감이랑 책으로 엉망이 되어 있고, 둘이 침대에서 마주 보며 잠들어 있지 뭐니? 순간 시간이 뒤죽박죽으로 섞인 기분이었어. 진이 어린 시절이 다시 돌아왔네. 혁이 미래가 코앞에서 잠들어 있네."(31쪽)


정작 혁은 형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혁은 고작 다섯 살이었고 뭔가를 기억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십이 년 전에 주인을 잃은 방은 시간이 지나도 열리지 않았(23쪽)'고 혁은 형의 방문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JIN 님, 반갑습니다. 가우디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혁은 그렇게 형의 가상세계에 들어가게 됐다.


진은 자신의 공간을 정성스럽게 꾸몄고, 그곳에 단 한 사람을 초대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보여주지 않은 자신의 한 조각을 그녀에겐 보였다. 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애교 많은 아들, 친구가 아플 때 달려와주는 친구, 조용하고 책임감 강한 학생으로 말이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모른 척 지낸 진과 그의 비밀친구 곰솔을 몰랐던 것처럼 각자 진의 한 부분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친구 도운에게 일어난 사건을 통해 상대방을 제멋대로 판단하는 건 잘못된 거라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내가 보는 상대의 일면만이 진실이고 전부라 믿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제멋대로 오해하고 혼자서 상처받는 아이가 생겨 버렸다. 남은 사람은 이유도 모른 채 한순간 괴물이 되었다.(174쪽)' 혁이 알고 있는 건 도운의 많은 모습 중 한 부분일 뿐이다. '너무 애쓰지 마. 나는 너의 이런 모습이 더 좋으니까.(187쪽)'


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슬픔을 슬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 책을 통해 사무치는 그리움을 받아들일 마음이 생겼다. 슬픔은 슬픔대로, 추억은 추억대로,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의 한 부분을 억지로 잊으려고 하지 말 것. 지금의 나에겐 흐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 귤을 싫어하지 않게 된 혁처럼.


"누가 그러더라고요. 귤을 좋아하면 겨울이 즐겁대요."(245)



처음 고등학교 교복을 입던 날 엄마는 눈물을 보였다. - P7

세상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그럴 때는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 누군가를 잊는다는 건,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잊힐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바위가 비바람에 조금씩 깎이고 닳아 없어지는 것처럼.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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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랑을 하면 우리는 복수를 하지 안전가옥 오리지널 25
범유진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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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가족을 위해 밥을 차린 여자가 있다. 그녀는 가족을 위해 밥을 차리고 집안일을 한다. 가정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대접을 받으며 산다. 그런 그녀에게 한 남자가 나타난다. "남편을 혼내 주고 싶으세요? 혹시 그럴 생각이 있으면 여기로 전화를 걸어 보세요." 천사처럼 해사하게 웃는 남자는 명함을 건넨 뒤 사라진다.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더니 "복수를 하고 싶으신가요?"라고 묻는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복수를 하겠다고 대답한다.

복수를 하고 싶다고 말한 여자는 오랜 시간 가정 내 평화를 위해 희생을 자처했다. 평화를 위해 희생양이 된 사람. 여기서 말하는 희생양은 '속죄의 염소(scapegoat)'이며, 심리학에서는 사회 문화의 심리적 희생자를 의미한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에게 특정한 역할을 부여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이 역할에서 벗어나면 비난하죠. 그렇게 해서 속죄의 염소가 된 한 명을 제외한 다른 가족끼리는 결속을 다져요. 예를 들면 자녀 중 한 명을 '문제아'로 낙인찍어요. … 부모가 계속해서 그렇게 말을 하면 주변도 그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받아들이죠. 속죄 염소가 된 본인마저 말이죠."(43쪽)

염소 클럽은 이처럼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된 사람들을 대신해 복수를 한다. 이제부터 염소 클럽의 복수가 시작된다. 복수라고 하니 손가락이라도 썰 것처럼 무시무시하지만,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방법을 사용한다. 이래서 어떻게 복수라고 할 수 있나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방법은 성공적이었고, 희생양이 된 사람들 또한 자신을 살리는 방향으로 복수를 한다.

한편, 살인 사건이 발생한 곳에서 실마리를 찾는 형사가 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핸드폰 갤러리에는 염소 그림이 있다. '이 세상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 없지. 어떠한 사건이든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169쪽)'라며 사건을 추적한다.

소설은 염소 클럽과 희생양이 된 사람들, 형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가정 폭력을 다루는 만큼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 방송에서 '러시아에서는 남편에 대해 어떠냐고 물었을 때, '우리 남편은 나를 안 때려.'라고 했다고. 그리고 안 때리는 게 장점이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가정 폭력이 수면 위로 올라와 처벌을 받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많은 가족들이 있을 것이다. 소설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한 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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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 보면 웅진 모두의 그림책 49
김지안 지음 / 웅진주니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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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주변으로 반짝이는 홀로그램이 박힌 표지가 예쁜 책. 달리고 달려서 어디로 가는 걸까. 호기심과 기대로 펼친 첫 장은 피곤함 그 자체였다. 삐비빅- 울리는 알람에 눈도 못 뜨고 일어난 뚜고 씨가 있었다. '오늘따라 더 피곤한 뚜고 씨의 출근길.' 그 문장 위로 뚜고 씨의 출근길이 시작된다.


그날은 날씨가 아주 좋은 날이었다. 하늘은 푸르고 강은 맑게 반짝이는, 출근하기 딱 싫은 그런 날 말이다. 다크서클이 잔뜩 내려온 채 운전하는 사람들 사이로 뚜고 씨도 간다. 극심한 정체에 영혼마저 탈출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 와중 정말로 탈출한 건 따로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내비게이션에서 탈출한 노별. 노별이 알려주는 대로 운전을 하는 뚜고 씨.


막막 터널을 지난 뒤 쾌속 주행이 시작된다. 뚜고 씨와 노별을 따라 꽃도 피어난다. 몽글몽글. 동글동글. 폭신한 솜뭉치처럼 보인다. 잠도 푹 자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도 든든하게 채웠다. "어디든 상관없어." 뚜고 씨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한참을 달렸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두 눈을 가득 채우는 바다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뚜고 씨처럼 가야만 하는, 즉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게 아닐까 싶다. 잘 살기 위한 목표 아래 잠깐의 고통은 참기로 한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간다. 시간은 계속 달린다.


책은 나에게 ' 너무 바쁘지?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너무 바쁘지만 오늘 하루쯤은 쉬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같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눈을 돌려 여유를 갖게 하는 책이다. 열심히 달리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책을 쥐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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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멧 : 계절이 지나간 자리 - 2021 볼로냐 라가치 미들그레이드 코믹 부문 대상작 스토리잉크 2
이사벨라 치엘리 지음, 노에미 마르실리 그림, 이세진 옮김, 배정애 손글씨 / 웅진주니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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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았을 때부터 표지가 눈에 띄었다. 붉은빛과 대비되는 푸르름. 텐트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아이. 정적인 사람과 동적인 사람. 서로 달라서 대비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책의 시작은 밤. 어두운 밤, 땅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 하나 있다. 금강초롱을 닮은 이 꽃을 비춘다. 이 꽃을 의미 있게 잘 기억해두길. 책 곳곳에서 발견될 테니 말이다.

긴 금발 머리를 한 루시. 루시는 빨간 텐트에서 한 소년을 보게 된다. 발을 쭉 뻗어 신나게 내달리는 모습을 보고 동그란 토끼 눈이 된다. 텐트 밖으로 나온 루시는 소년을 따라간다. 부스럭 소리와 함께 사라진 루시.

헝클어져 뻗친 머리를 한 로망. 로망은 배낭 하나 메고 캠핑장을 신나게 내달린다. "나를 따르라!" 나무칼을 솩 내지르며 친구와 놀기도 한다. 그러던 중 자기처럼 버려진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편안하고 조용한 루시와 호기심 많고 모험심 강한 로망. 생김새도, 성격도, 사는 곳도 다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같은 계절을 걷는다. 두 사람이 보내는 한 계절은 무슨 모습일까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각자가 가진 상처의 크기가 눈에 들어와 마음이 시큰하기도 했지만, 루시와 로망과 함께 걸은 계절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말로 다 표현되지 않은 두 사람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특히 좋아하는 장면은 루시가 옷을 훌훌 벗고 물속에 들어가 누워있는 장면이다. 그림책을 열어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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