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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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교실 안쪽에는 한쪽 어깨에 대충 가방을 멘 남학생이, 바깥쪽에는 양갈래 머리를 한 여학생이 있다. 안과 밖의 경계를 사이에 둔 두 사람. 서로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서로 다른 시간에 머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사람이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을지 기대된다.


소설은 '처음 고등학교 교복을 입던 날 엄마는 눈물을 보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소리내 울지도 못하는 엄마, 그 옆에서 부자연스럽게 웃는 아빠, 그리고 무슨 말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나', 선우혁. 혁에겐 형이 있었다. 12년 전 형이 죽었고, 시간이 흘러 형이 죽었을 무렵을 나이가 되었다. 쌍둥이처럼 닮은 두 사람. 사람들은 혁에게서 죽은 형, 선우진을 본다.


"하루는 형에게 너를 맡기고 잠시 외출한 적이 있었어. 돌아왔더니 집은 장난감이랑 책으로 엉망이 되어 있고, 둘이 침대에서 마주 보며 잠들어 있지 뭐니? 순간 시간이 뒤죽박죽으로 섞인 기분이었어. 진이 어린 시절이 다시 돌아왔네. 혁이 미래가 코앞에서 잠들어 있네."(31쪽)


정작 혁은 형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혁은 고작 다섯 살이었고 뭔가를 기억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십이 년 전에 주인을 잃은 방은 시간이 지나도 열리지 않았(23쪽)'고 혁은 형의 방문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JIN 님, 반갑습니다. 가우디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혁은 그렇게 형의 가상세계에 들어가게 됐다.


진은 자신의 공간을 정성스럽게 꾸몄고, 그곳에 단 한 사람을 초대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보여주지 않은 자신의 한 조각을 그녀에겐 보였다. 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애교 많은 아들, 친구가 아플 때 달려와주는 친구, 조용하고 책임감 강한 학생으로 말이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모른 척 지낸 진과 그의 비밀친구 곰솔을 몰랐던 것처럼 각자 진의 한 부분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친구 도운에게 일어난 사건을 통해 상대방을 제멋대로 판단하는 건 잘못된 거라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내가 보는 상대의 일면만이 진실이고 전부라 믿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제멋대로 오해하고 혼자서 상처받는 아이가 생겨 버렸다. 남은 사람은 이유도 모른 채 한순간 괴물이 되었다.(174쪽)' 혁이 알고 있는 건 도운의 많은 모습 중 한 부분일 뿐이다. '너무 애쓰지 마. 나는 너의 이런 모습이 더 좋으니까.(187쪽)'


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슬픔을 슬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 책을 통해 사무치는 그리움을 받아들일 마음이 생겼다. 슬픔은 슬픔대로, 추억은 추억대로,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의 한 부분을 억지로 잊으려고 하지 말 것. 지금의 나에겐 흐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 귤을 싫어하지 않게 된 혁처럼.


"누가 그러더라고요. 귤을 좋아하면 겨울이 즐겁대요."(245)



처음 고등학교 교복을 입던 날 엄마는 눈물을 보였다. - P7

세상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그럴 때는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 누군가를 잊는다는 건,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잊힐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바위가 비바람에 조금씩 깎이고 닳아 없어지는 것처럼.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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