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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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야마 유메아키는 이미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으로 한 차례 찾아온 적이 있는 작가입니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이 독자들로 하여금 극과 극의 평가를 낳았는데, 이번에도 상당히 갈릴듯한 작품이네요. 남의 일. 이미 제목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표지나 사양도 살펴보길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 책은 표지부터가 장난이 아니네요. 팔에 얼굴을 대고 살짝 이쪽을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이 어쩐지 섬뜩하네요. 그림은 분명 딸기가 그려져 있지만, 붉은색을 얼굴 이곳저곳에 묻힌 채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은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합니다.

표제작인 남의 일은, 사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벼랑에서 굴러 떨어져 뒤집힌 차 안에 갇힌 남자. 그의 옆자리에 앉은 여자, 료코와 딸아이인 아미는 모두 상처를 입어 움직일 수 없습니다. 특히 아미는 이미 중상인 듯 합니다. 빨리 신고를 해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 그 순간, 어느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 남자가 신고를 해 주겠구나- 안심하고 있는 가운데, 남자는 그러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이죽대며 말을 시작하죠. 내가 왜? 놀리듯이 아이의 상태를 말해주며, 빌어보라는 남자. 남자는 모욕을 퍼붓고 비웃습니다. 그 남자는 이 세사람에게 왜 이러는 것일까요?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이 호러에 가까운 이야기에 잔혹한 묘사를 특징으로 했는데, 남의 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남의 일 쪽이 더 불편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남의 일이란 제목처럼,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의미를 찾을 수 없는-그래서 더 무서운- 악의가 가득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양한 폭력에 노출됩니다.

표제작인 남의 일에서 나오는, 남자의 악의. 비웃음이라는 무형의 폭력에 주인공은 분노하죠. 어머니와 톱니바퀴에서는 아버지의 학대에 당하는 소녀가 등장합니다. 새끼 고양이와 천연가스에서는 낯선 사람들의 폭행에 당하는 시즈에라는 여성이 나옵니다. 그 폭력에 대한 정당성? 그런 건 없습니다. 그저 인간의 악의가 다른 사람을 상처입힙니다. 이유도 모른 채 상처입는 인간들에 대해 작가는 어떠한 탈출구도 만들어놓지 않습니다. 그들을 위한 영웅? 구세주? 그런 것 또한 없습니다.
갑작스런 폭력에 무기력해진 인간의 모습에 불쾌감이 듭니다. 이미 자행된 폭력에 대해 익숙해진 사람의 모습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작가. 띠지에 적힌 말이 대답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네요.

'공포란 과연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이거다 싶은 답을 떠올리지 못해 헤매다가, 정말 무섭다고 느꼈던 사건들은 대부분 신문기사를 통해 접했던 것들이었음을 깨달았다. 우리의 일상 속에 넘쳐나는 허무와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공포를 내뿜는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남의 일인 걸까요? 남의 일. 자신에게는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일들이기 때문에? 피가 튀고 살이 튀는 묘사보다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허무가 독자에게 공포를 자아냅니다. 이해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행동에 머리만 아파옵니다.

너무나 삭막한 느낌이 드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속의 세상이 이상하게 낯익은 느낌이라는 게 또 두렵네요. 뉴스. 혹은 신문에서 본 듯 한, 지금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부분부분 겹치는 게 너무나 무서운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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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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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반전이 있는 소설은 모르고 읽었다가 뒤통수를 맞는 편이 즐겁습니다. 방심하고 읽었다가 작가가, 이야기가 이끄는 대로 나아가다 결말에 이르렀을 때의 경악이 곧 즐거움이죠. 이미 반전이 있음을 알고 속지 않으려 무엇이든 의심하며 책을 읽어나간다면 즐거움이 1/2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결말의 반전으로 인하여 책이 독자를 끌어들이니 말이죠.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는 반전소설로 이름이 높은 책입니다. 표지만 본다면 연애 소설의 삽화마냥 은은한 느낌입니다. 제목 또한 서정적인 느낌이 강하죠. 그렇기에 모르는 사람들은 혹시 연애 소설이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작가와 표지와 내용이 서로 합심하여 독자를 속이고 있습니다. 읽기 전에 이미 속았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네요. 자신도 모르게 머리에 심어져 있는 고정관념을 이용한 트릭이 일품입니다. 내부의 적인 거지요.

자유분방한 성격의 프리터 나루세는 지하철에서 자살을 시도하던 여자를 구해주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팔아 돈을 받아 쓰는 여자들을 경멸합니다. 원조교제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창녀와 다름없다고 생각하죠. 돈을 주고 하룻밤의 쾌락을 사지 않는 것은 그가 아직 순수한 사랑을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흔들릴 법한 연애와 사랑을 꿈꿉니다. 나루세는 지하철에서 사쿠라를 구해주게 되었지만 한 번의 만남이 끝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녀가 자신이 구해준 날 자살한다면 재수가 없을 거라 생각해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니 제발 오늘 죽지는 말라고 말을 지어내죠.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사쿠라와 다시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생일선물을 받고, 대화하다보니 그녀에게 흥미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 고등학교 후배 기요시의 부탁으로 뺑소니 사건의 진범을 찾는 일을 맡게 됩니다. 예전에 잠깐 있던 탐정 사무소 얘기를 했던 것을 후배가 기억하고 있다가 도움을 청합니다. 나루세는 후배가 반한, 자신도 안면이 있는 구다카 아이코의 할아버지가 뺑소니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떨결에 맡게 된 것이었죠. 이 일을 맡고 조사해가다 보니 호다이 클럽이라는 수상한 유령회사가 등장합니다. 호다이 클럽은 수상한 물건에 터무니없는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며 고가에 팔아넘기는 회사이죠. 과연 이 호다이 클럽을 조사하는 나루세는 어떻게 될까요? 사쿠라와는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미스터리의 전형적인 줄거리인 것 같은데, 도대체 이 소설이 반전으로 이름높은 이유는?

반전을 기대하지 말고 읽으시라 당부하고 싶지만, 이 책이 이름높은 것도 반전때문이라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요. 그러나 분명 기대하고 읽든, 기대하지 않고 읽든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아!" 하고 놀라게 되실 겁니다. 당신의 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고정관념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지 않으세요? 그렇다면 이 책을 집어들고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벚꽃이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이미 제목에도 깨알같은 미리나름이 숨어 있는 소설입니다. 작가는 절대 무언가를 숨기거나 하지 않습니다. 이미 힌트는 모두 책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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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필요 없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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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는 우리 나라에서도 꽤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입니다. 책도 많이 번역되어 있죠. 일본 미스터리를 추천해 달라고 할 때 빠지지 않는 모방범, 화차에서부터 데뷔작인 우리 이웃의 범죄, 마술은 속삭인다, 이름없는 독, 가모우 저택 사건 등등...미미여사의 팬을 자청하며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내고 있는 북스피어에서 제 2막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이는 외딴집, 괴이, 얼간이, 메롱 등의 시대물까지. 오늘 얘기해 볼 책은 대답은 필요없어 라는, 상당히 얇은 단편집입니다. 한국에서 번역되어 나올 때에는 출간순서보다는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상당히 뒤죽박죽 나오는 편인데 이 대답은 필요없어 또한 초기작이라 할 수 있으나 중간에 살짝 끼워 출간되었던 작품입니다.

미스터리 팬인 주제에 미리나름에 대한 두려움없이 맨 뒤를 펼쳐 해설이나 후기를 보는 버릇이 있는 저로서는, 이 책도 해설을 먼저 보았는데요. 미야베 미유키에 대한 엄청난 찬사로 가득한 해설을 보며 이 책에 대해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에 실린 단편은 대답은 필요없어, 말없이 있어 줘, 나는 운이 없어, 들리세요, 배신하지 마, 둘시네아에 어서 오세요 6편 입니다.

표제작인 대답은 필요없어는, 하다 치카코라는 여성이 다키구치라고 하는 형사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녀는 연인과 헤어져 씁쓸함과 슬픔, 울분에 가까운 감정이 뒤섞여 있는 상태로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치카코는 뛰어내릴 작정으로 옥상에 올라갔다가 모리나가 부부와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모리나가 부부와 함께 기막힌 일을 계획하게 되죠. 바로 다이쿄쇼와 은행을 속여 이천만 엔을 뜯어낸다는 위험천만하며 대담한 계획이었습니다. 연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던 치카코가 결국 모리나가 부부와 범죄 계획을 짜게 되는 과정까지도 흥미롭지만, 그 계획에 대한 것이 사회를 향한 고발에 가깝다는 점 또한 참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역시 미야베 미유키라고 할까요. 과연 그들은 그 계획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까요? 다키구치 형사는 어떻게 치카코를 찾아오게 되었을까요? 미야베 미유키는 마지막에도 한가지 작은 반전을 심어놓습니다. 독자들을 들었다 놓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말없이 있어 줘는 나가사키 사토미라는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고달픔에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섞은 작품입니다. 그녀는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는 상사에게 결국 폭언을 쏟아내버리고 맙니다. 고민하며 돌아다니던 그녀는 어떤 자동차 안에서 자신을 보고 '저 여자다! 겨우 찾았어!'라고 하는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 차는 사고로 인하여 폭발하고, 안에 있던 사람은 모두 타버리고 맙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녀를 찾았던 것일까요? 나는 운이 없어는 낭비벽이 있는 사촌 누나가 잠깐의 실수로 빼앗기게 된 결혼 반지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들리세요, 배신하지 마, 둘시네아에 어서 오세요 까지 버릴 단편이 하나도 없습니다.


단편임에도 미야베 미유키의 특징이자 장점이 가득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야베 미유키 하면 사회파 미스터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가이죠. 그녀의 책을 읽으면 아직 세상은 살 만 하다는 긍정적인 희망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스터리답게 살인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은폐와 악의가 가득한 세상이지만 말이죠.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덮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포근합니다. 그러면서도 묵직한 것이, 역시 미야베 미유키다- 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 또한 그러하네요. 특징이라면 다른 작품들에서는 별로 두드러지지 않았던,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에 대해 좀 더 파고들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연인과 헤어진 여자, 상사에게 폭언을 들으며 자신이 여기에 있기에는 나이가 먹어간다는 서글픔을 느끼는 여자, 낭비벽이 심하고 철이 없는 예비 신부 등.... 이 사회에 있을 법한 여자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녀들의 이야기와 함께 짧은 분량임에도 결코 녹록하지 않은 미스터리가 숨어있는 단편들은 너무나 매력적이네요. 말 그대로 고민은 필요없어. 입니다. 그냥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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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팬더
타쿠미 츠카사 지음, 신유희 옮김 / 끌림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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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쿠미 츠카사의 금단의 팬더. 제목과 표지부터 상당히 재기발랄합니다. 금단의 팬더라니, 팬더가 뭐 어쨌단 말일까요? 표지에는 대나무를 우적우적 씹는 팬더에 양념을 치는 요리사가 있습니다. 도대체 뭔 내용인지 상상이 가지 않아 뒷표지를 봤습니다.

"그 냉장고 속에는 지금껏 당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끔찍한 재료가 들어 있다!"

이런 문구가 확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다면 워싱턴 조약을 피해 은밀히 팬더라든지 동물을 먹는 미식가들의 이야기들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고, 거기에 요리에 대한 맛있는 묘사가 나오는 책 또한 좋아하니 취향에 딱 맞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확실히 맛있는 묘사가 많이 등장하기는 합니다. 작가인 타쿠미 츠카사는 십여 년 넘게 요식업에 종사하며 발군의 실력을 쌓은 요리사라네요. 그런 전문가가 요리에 대해 썼으니 요리에 대한 묘사는 당연히 훌륭할 수밖에 없겠죠. 요리소설이라는 말에는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여러 요리가 등장하는데, 그 묘사를 읽으면서 침이 고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미스터리에 대해서는 어떨까요? 미스터리 부분은 '비스트로 코타'의 오너 셰프인 코타가 아내와 함께 참석한 결혼 피로연장에서 만난 신랑과 그 가족, 회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인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미식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확실히 대단한 것 같습니다. 더 새롭고, 더 맛있는 것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 인간은 살기 위해 먹지만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습니다.  그들은 지금에서는 전혀 허락되지 않는 금단의 재료에까지 손을 뻗치려 듭니다. 그게 과연 옳은 것인가는 둘째치고, 맛이 궁금해지는 것은 저 또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동물이자 미각의 쾌락을 쫓는 인간이기 때문일까요?

금단의 팬더에 대해 독자들이 평가는 상당히 냉혹한 편입니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 라든지, 너무 약한 거 아니냐? 라든지. 저 또한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2008년 제6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치고는 너무 평이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냉장고 속에 들어있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끔찍한 재료는 확실히 끔찍하고 징그럽습니다. 결말 부분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도 섬뜩하긴 합니다. 하지만 미스터리 소설들의 잔인한 묘사라든가 반전에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요? 미스터리의 장르적 특성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런 소재는 많이 채택되어왔죠. 그래서인지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지금은 대나무를 씹으며 한가롭게 노니는 팬더가 이 소설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그 옛날 팬더는 무엇을 먹고 살았던 것일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길. 미스터리 부분은 약간 취약하지만, 요리의 묘사에 흠뻑 빠져들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소설 금단의 팬더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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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로 그린 초상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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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로 그린 초상은 서스펜스 소설의 마술사로 불리는 빌 S. 밸린저의 소설입니다. 이와 손톱, 기나긴 순간 등이 그의 대표작이죠. 그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하며 독자로 하여금 결말까지 후다닥 읽어버리게 만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기로 그린 초상 또한 그렇습니다.

시카고에서 수금 대행업을 하는 대니 에이프릴은 어느 날 젊은 시절 한눈에 반한 여자의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녀의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크래시 알모니스키라는 이름으로 주간 스톡야드 뉴스 미인 대회에서 수상한 적이 있었던 여자였습니다. 어느 엄청나게 뜨겁던 일리노이 주의 밤에 호수를 바라보던 그녀와 스쳐가듯 만난 것이 그녀와 대니의 가볍디 가벼운 만남이었죠. 얼마 안 되는 실마리를 쫓아 그녀의 뒤를 쫓으며 대니는 그녀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게 됩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쫓는 여정은 흥미롭습니다. 대니가 그녀를 쫓는 이야기와 크래시의 이야기가 교차로 펼쳐지며 과연 이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무척 궁금했거든요. 대니가 크래시를 쫓으며 여러 사람에게 듣고, 파헤친 이야기들은 크래시가 겪은 일과 같으면서도 무척 다릅니다. 대니에게 있어 그녀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때로는 힘든 일을 겪어 가련함을 가득 품었을, 한송이 꽃같은 크래시를 생각하며 대니는 그녀에 대해 환상을 갖게 되죠. 제목인 연기로 그린 초상은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연기로 그린 초상이란 다름아닌 대니가 쫓고 지금도 자신의 인생을 그려나가는 크래시의 일생을 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녀에 대한 환상을 키워가며 마음대로 크래시를 그려가던 대니가 결국 현재의 크래시를 만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그런 궁금증이 책을 읽을 수록 더욱 커졌고, 결국 대니와 크래시의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 너무 흥미진진하여 책장을 빨리 넘기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대니가 크래시를 만났을 때, 둘은 모두 서로에 대해 연기로 그린 듯한 초상입니다. 진실한 얼굴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니 또한 그렇습니다. 한 때 스쳐감으로 인해 빠져버렸던 여자의 앞에서 그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거든요. 그녀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그런 인물이기를 원합니다. 그렇기에 실제의 자신 대신 가면을 쓰게 됩니다. 크래시 또한 대니에게 가면을 쓰고 그를 대합니다. 그에게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연인이나, 크래시에게 있어 그것은 지금까지 써오던 가면의 일부일 따름이죠.

사랑의 달콤함에 취해있던 대니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사건에 발을 들이밀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크래시를 너무나 사랑하여, 그녀에게 잘보이고 싶던 마음으로 한 행동이 그를 위험에서 구하는 동아줄이 됩니다.

그가 사랑하던 크래시. 그녀는 멀리서 보기에 너무나 가련하고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마냥 약한 여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현실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하고, 벗어나고 싶어하며, 그것을 위해 주위의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는 여자였습니다. 마냥 아름답고 운이 좋은 여자가 아닌 것이죠.

아름다운 꽃에는 가시가 있다고 합니다. 크래시는 자신의 아름다움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는, 한송이 꽃 같은 명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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