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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로 그린 초상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연기로 그린 초상은 서스펜스 소설의 마술사로 불리는 빌 S. 밸린저의 소설입니다. 이와 손톱, 기나긴 순간 등이 그의 대표작이죠. 그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하며 독자로 하여금 결말까지 후다닥 읽어버리게 만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기로 그린 초상 또한 그렇습니다.
시카고에서 수금 대행업을 하는 대니 에이프릴은 어느 날 젊은 시절 한눈에 반한 여자의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녀의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크래시 알모니스키라는 이름으로 주간 스톡야드 뉴스 미인 대회에서 수상한 적이 있었던 여자였습니다. 어느 엄청나게 뜨겁던 일리노이 주의 밤에 호수를 바라보던 그녀와 스쳐가듯 만난 것이 그녀와 대니의 가볍디 가벼운 만남이었죠. 얼마 안 되는 실마리를 쫓아 그녀의 뒤를 쫓으며 대니는 그녀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게 됩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쫓는 여정은 흥미롭습니다. 대니가 그녀를 쫓는 이야기와 크래시의 이야기가 교차로 펼쳐지며 과연 이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무척 궁금했거든요. 대니가 크래시를 쫓으며 여러 사람에게 듣고, 파헤친 이야기들은 크래시가 겪은 일과 같으면서도 무척 다릅니다. 대니에게 있어 그녀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때로는 힘든 일을 겪어 가련함을 가득 품었을, 한송이 꽃같은 크래시를 생각하며 대니는 그녀에 대해 환상을 갖게 되죠. 제목인 연기로 그린 초상은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연기로 그린 초상이란 다름아닌 대니가 쫓고 지금도 자신의 인생을 그려나가는 크래시의 일생을 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녀에 대한 환상을 키워가며 마음대로 크래시를 그려가던 대니가 결국 현재의 크래시를 만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그런 궁금증이 책을 읽을 수록 더욱 커졌고, 결국 대니와 크래시의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 너무 흥미진진하여 책장을 빨리 넘기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대니가 크래시를 만났을 때, 둘은 모두 서로에 대해 연기로 그린 듯한 초상입니다. 진실한 얼굴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니 또한 그렇습니다. 한 때 스쳐감으로 인해 빠져버렸던 여자의 앞에서 그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거든요. 그녀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그런 인물이기를 원합니다. 그렇기에 실제의 자신 대신 가면을 쓰게 됩니다. 크래시 또한 대니에게 가면을 쓰고 그를 대합니다. 그에게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연인이나, 크래시에게 있어 그것은 지금까지 써오던 가면의 일부일 따름이죠.
사랑의 달콤함에 취해있던 대니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사건에 발을 들이밀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크래시를 너무나 사랑하여, 그녀에게 잘보이고 싶던 마음으로 한 행동이 그를 위험에서 구하는 동아줄이 됩니다.
그가 사랑하던 크래시. 그녀는 멀리서 보기에 너무나 가련하고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마냥 약한 여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현실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하고, 벗어나고 싶어하며, 그것을 위해 주위의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는 여자였습니다. 마냥 아름답고 운이 좋은 여자가 아닌 것이죠.
아름다운 꽃에는 가시가 있다고 합니다. 크래시는 자신의 아름다움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는, 한송이 꽃 같은 명배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