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르치기 -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핀켈 교수의 새로운 교육법
도널드 L. 핀켈 지음, 문희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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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서토론리더과정 3차시 교재이기도 하고 작년 책통아 학부모독서토론 도서였다. 급하게 천천히 논제를 만들기 위해, 깊이 읽어보았다.

침묵으로 가르치기는 도널드 L.핀켈 교수가 21 년간 에버그린대학교에서 실천해본 교수법이기도 하고, 장자크 루소, 존 듀이, 피아제, 일리치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침묵으로 가르칠수 있을까?" 는 그 이전에 교육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배움이란 근원적이지만 우리교육현실에서는 소수외에는 질문해보지 않은 원론적 이야기를 건드린다. 그래서 이책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교육현실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수있다.

그는 " 말로 가르치기는 왜 틀렸는가" 를 통해, 말로 가르치기는 명백하게 틀렸다고 선언하고 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자잘한 지식이나 배워 오길 기대하는 부모도 없다. 교사와 부모는 모두 교육을 통해 아이의 이해력이 향상되길 바란다.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모들은 대개 말로 가르치는 방법으로는 아이의 이해력을 효율적으로 향상시키지 못한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p.25)

핀켈 교수는 '교육은 곧 말로 가르치기'라는 전제를 버리는 순간 새로운 교수법이 떠오른다(p.26) 고 말한다. 그것이 말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전제인식일것이다
그는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가르치는것은 고사하고 과연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이책은 이 질문에 답하려고 한다(p.28)고 밝히고 있다.
그가 질문하는 것처럼 좋은 교육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교육이란 좋은 스승, 교재등의 수동적 기제인것이다. 그는 " 교육에서 교사의 가르침인
아니라 학생의 배움을 제일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학생의 배움이 최종목표이고 교사의 가르침은 목표에 이르는 수단일뿐이다." 라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 교육" 을 바라보는 시각을 한꺼번에 뒤집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은 다름을 인정하고 발달단계별 분리, 교육을 실현하는 기존의 교육이 아닌 철저하게 학생의 주체적 활동과 탐구에 집중하고 있다.
ㅡ책이 말하게 하라
함축적 의미를 가진 우화에서 배우기

우화를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이유는 오직 스스로 깨달아야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따라서 교사는 침묵으로 가르쳐야 한다.학습활동을 이끌어 줄때만 말하고 나머지는 우화가 말하게 한다.(p.46)
학생들이 존재자체로 책을 읽는 그대로 읽으면 그것이 바로' 책이 말하게' 하는 기법이다
(p.72)

ㅡ학생이  말하게 하라

달리 말하면 믿을 만한 권위자가 지식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과정에서 지식을 발견해야 했다. 처음에 지식을 발견한 사람이 '새로운 과정' 에서 지식을 습득했다면 ' 과정' 이 중요하지 지식을 습득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아닌가.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과정을 '탐구' 라고 한다.(p.84)

그는 개방형 세미나가 학생들이 말하게 하라의 좋은 예시로 제시한다. 과학적 방법론인 " 과학으로 도출한'진리' 는 절대진리가 아니다."(p.90) 는 정신이 개방형 세미나의 바탕이 된다고 한다. 결국 교사가 전달하는 지식이 절대진리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학생들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면 충분히 과학정신을 실현할수 있을 것이다.

ㅡ교사와 학생이 함께 탐구하라

한 과목을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탐구 수업으로 진행한다면 학생들이 자연히 탐구하는 자세로 책을 읽고 토론하게 될 것이다
읽기, 쓰기, 연구과제,시험, 보고서, 토론, 실습,교사가 내주는 탐구활동을 비롯하여 수업시간에 일어나는 모든 활동이 탐구활동이다.(p.110)

탐구수업을 위해  여러기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1. 논증을 분석하는 법
2. 극적 행위를 분석하는 법
3. 반어법을 알아채는 법
4. 복잡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제기하는 법
5.보고서를 쓸 때 질문을 해결하고 명제를 옹호하는 법
6. 다른 학생의 보고서를 건설적으로 비판하는 법
7.  건설적이고 비판적이면서도 예의를 갖춰 대화를 나누는 법 (p.130)
을 익히게 하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ㅡ친숙한 글쓰기로 말하라.

교사가 펜을 들고 글쓰기 모임에 동참하면 교육효과는 두배로 커진다
우선 글쓰기라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학생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두번째로는 글쓰기 모임에 적극 참여하면서 모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모임의 기틀을 잡아주고 다양한 의견이 오가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줄 수 있다. 교사가 참여하면 학생들이 모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p.169)

ㅡ학습을 일으키는 경험을 설계하라
ㅡ민주적인 선생님이 되어라

포드 박사가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 박사는 정치전 수업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앞에서 두번째로 제기한 질문, 곧 포드 박사가 대체 어떤 수업분위기를 만들어낸 걸까? 라는 질문의 답이다.포드 박사는 학생 혼자서 길을 찾길 바란다.정치적 목표, 곧 민주주의를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p.225)
탐구할 때는 진실을 찾기위해 권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혼자 탐구할때는 자신의 지적능력으로 올바른 결론을 끌어낼수 있다고 믿어야한다. 여럿이 탐구할때는 자기가 속한 집단의 지적 능력을 믿어야한다. 이 같은 믿음은 본래 민주주의의에서 나온 것이다.
. . .
그 보다는 교사의 임무는 학생의 성격개발에 힘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학생의 독립심,자신감,자율성, 판단력,책임감,집단의 일원으로 생산적으로 활동하는 능력을 길러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된다. 이런 성격 특질이 바로 민주시민이 갖춰야할 기본 덕성이다. 이런 덕성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목표로 삼는 '정치적' 교사가 추구하는 목표다.따라서 교사 스로 '정치적' 이라고 자각하지 않으면서 ' 민주적 수업분위기' 를 조성할 수 있다. (p.226)
모두 '상식' 에 뿌리를 둔 방법이다.침묵으로 가르치려면 우선 ' 가르치기' 를 거부할줄 알아야 한다. 교사에게 주어진 권력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p.254)

ㅡ동료와 함께 가르쳐라
앞장에서 민주적의사결정 과정을 스스로 익히는 과정이 권력을 학생에게 넘기고 권위를 유지하는 교사의 교수법이라면, 동료와 함께 가르치기는 더욱더 극적인 상황 제시이다.
다양한 권위가 존재함으로써 권력과 권위가 얼마나 다른지, 몸소 배우는 과정의 실현이 고무적이다
우리 학교현장에서도 이뤄지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ㅡ경험을 제공하고 생각을 불러일으켜라

「침묵으로 가르치기」는  제목의 생경함과는 달리 내용은 탐구수업,토론수업의 한 방법이다.
핀켈 교수가 침묵으로 가르치기를 제시한 가장중요한 것은 권위와 권력을 분리하는 민주적배움의 과정의 실천이 아니었을까?
민주적 교사로의 자각과 수업방식의 의사결정과 논의과정의 민주화가 결국 우리인간이 나아가야하는 인간존엄의 가장 기본을 배우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이 책이 아직은 한국사회에 교육현실에 시기상조라고 한다. 그 말로 얼마나 오랜시간 교육은 변함없이 우열을 가리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작하고, 다들 진저리치게 싫어하면서도 홀린듯 올인하는 대입이라는 괴물의 입에 스스로를 공양하는 짓은 멈춰야하지 않을까.
두고두고 가슴에 새겨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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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격 -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일상인문학 3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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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존엄성은 하나가 아니라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이 많은 것들이 한 인간의 삶에서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그것을 히해한다고 자부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간 존재의 광대한 지도를 그리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속에 있는 오만은 불가피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관대히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1901년 리스본
패드루 바스쿠 알메이다 프라두
<중요한 것에 대하여>

삶의 격을 지키는 문제는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독일과 미국에서 공붛고 교수로 저작활동을 하고 있는 페터 비에리는 우리에게 묻는다
존엄성이란 무엇인가?
그는
1. 독립성으로 존엄성
2. 만남으로서 존엄성
3. 사적 은밀함을 존중하는 존엄성
4. 진정성으로 존엄성
5. 자아 존중감으로서의 존엄성
6. 도덕적 진실성으로서의 존엄성
7. 사물의 경중을 인식하는 존엄성
8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존엄성
이야기하면서 많은 만남과 문학적 예시,실제 사례를 통해 인간이 찾고자 하는 ,아니 내가 찾고자 하는 '존엄성'이 무엇인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이책을 읽기 전에 읽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책 읽어 주는 남자> 의 한나가 자신이 문맹인데도 보고서를 썼다고 시인하여, 종신형을 받게 된 것과 18년의 형을 마치고 석방당일 스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인간의 존엄"이라는 관점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하나의 주체로서 갖는 자화상은 현재 우리의 모습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 그리고 되어야만 하는 모습도 해당된다. 주체가 가진 능력에는 스스로를 평가대상으로 삼고 행동과 경험이 만족할 만 한 것인지, 즉 기꺼이 받아들인 만한 것인지 내쳐야 할 것인지지 자문하는 일련의 과정도 포함된다. 현재 존재하는 모습과 되고 싶은 모습사이의 갈등을 체험하는 것도 주체가 가진 본질이다(p.25)


빌헴름 폰 훔볼트가 여기에 딱 맞는 말을 남겼다 " 왜냐하면, 일깨움이란 문제에 따르는 모든 가능한 해답을 앞에 제시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가장 적절한 것을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도록 준비시키거나 발생가능한 모든 장해요소를 그려봄으로써 스스로 해답을 찾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p.47)
내적 독립은 타인으로부터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아야 이룰수 잇는 것이 아니다. 내면 세계 안에서 독립적이라는 것은 섬이나 지하 방공호에 들어 앉은 것처럼 외부로 향하는 문을 닫은채 그의 영향으로부터 민감하지 않거나 무관심한 것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내면적으로도 셀수 없을 만큼 많이 타인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자기 계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 사이의 상호 영향은 존엄성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진정한 만남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p.77)
내면의 독립적 존엄성은 그것이 성공하느냐 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목표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부단한 노력에 달려 있다. 생각을 잘하지 못하거나 종종 실수로 넘어지는 바람에 사고가 홀로 서지 못한대 해도 존엄성을 다치지는 않는다. 누구나 생각의 과오를 저지르고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중략) 존엄은 사물의 기준으로서의 독립성이 시야에서 멀어질때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을때 상실된다.(p.81)
내적독립 : 생각하기
내적독립 : 의지와 결정
내적독립 ; 감정적 동요
내적독립 : 자아상과 검열
사람의 존엄성은, 내면의 독립성이라는 것이 모래처럼 깨지지 쉬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런 이해심으로부터 인간 사이의 언대감이라는 값진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다(p.100)
"그렇다면 존엄성은 무엇인가?"
"사적인 것에 대해서 말을 아낌으로써 타인과의 사이에서 유지되는 간격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간격이 필요한 이유는, 침묵의 경도를 조금 무르게 함으로써 사람 사이의 친밀감을 만들어 낼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리처럼 투명하다면 친밀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읻. 좁혀야할 거리라는 것이 애초부터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모두에 대해 다알고 그중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정해져 있다면 그것으로 이야기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p.245)
자신이 느끼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진짜이게 하는 의지 말이다. 거기에 한 인간의 참됨이 놓여 있다고 덧붙일 수 있다. 이 참됨을 이루는 것은 사실을 견디어 내는 용기다. (p.253)
자아 존중 유지를 결정짓는 한계선은 당사자가 스스로 긋는 다는 사실을 이예가 확인시켜 준다.자아 존중과 존엄에 대한 평가를 내릴때 타인에 의한 한계선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스스로 그은 경계이다 내가 견딜수 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똑탕니 느끼는 것은 아니다. 어떤 행동이 그 자체 만으로 존엄성이 결여되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에게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행위를 포함한다. 신념, 감정,의지.살아가는 총체적 방법등이 이에 들어간다. 이것은 타인과 자신를 구분짓는 능력과 용기를 의미한다. 이것은 또 다른 면에서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 강함을 뜻한다. 여기서 자기 존중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p.310)
사람의 존엄성은 공공의 이익에 견주어 지는 것이 아니오 .고통과도 함께 다루어 질 수 없소. 존엄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오. 그러니까 손댈수 없다고 하는 게 아니겠소.(중략) 국가은 인간의 존엄성을 관리 할 수없소 (p.357)
또한 그동안 살면서 자신에게 금지했던 것은 무엇인지,왜 금지햇는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숨겨진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또 그들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지, 방향 전환이 아직 가능한자. 그러기 위해서 어디서 용기를 얻어야 할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 이들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때마다 매번 달자질 것이다. 물음의 과정은 개방적이고 살아있는 과정이어야 한다.그리고 그 과정은 우리를 달라지게 할것이다. 이것은 독립성을 가진 존엄성의 한모습이기도 하다(p.395)

저자는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의 로먼과 <소피의 선택>의 소피 등,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의 예시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지를 이야기 한다.
이야기가 무척 쉽게 닥오는 것은 그가 든 예시와 그가 세밀하게 나누어 둔 세부 항목들 덕분일 것이다.
여러 책들에 묻혀 겨우 겨우 읽어 내렸갔다.
그러나 이책을 읽는 동안 그간 나에게 질문을 하게 한 많은 책속,영화 속 주인공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고, 내가 아직도 고민하는 여러 이슈들에 대한 나의 질문과 입장을 정리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존엄성이라는 문제를 개인의 자기 성찰이나 심리학적으로 풀어낸 책들은 기실 우리가 상황에 선택해야 할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할 만큼 의지 박약을 만들때도 많다. 물론 나의 논리적 근거가 기초 부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많지 않은 분량(451페이지) 로 개인적, 상황적, 사회적, 국가적 담론을 모두 존엄성이라는 측면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음에 감탄과 그것이 지구 다른 곳에 위치한 나의 질문과 상황에 밀접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인간의 존엄성, 자아존중, 삶이라는 것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들이지만 그것이 가진 깊이와 성찰의 고민은 아주 오래된것이다.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의 여러 글들은 두고 두고 새겨보고 다시 나의 질문으로 바꿔볼 예정이다.
p.s 마지막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존엄성 부분은 아툴가왼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사상 토대로 생각해 봄직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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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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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학내에 상주하며 학생들을 이간질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했던 경찰초소를 내손으로 때려 부순 날, 역사와 대중앞에 스스로 떳떳해졌다. 이후 평생 나에 대한 자존감을 갖게 되었으므로.
이미 충분히, 평생 넘칠 만큼 보상을 받았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나는 그 어떤 형태의 보상도, 인정도 더는 필요없는 사람이다.그러나 이 나라 정부와 사법부는 평범한 여대생이었던 나와 같은 이를 '죄인' 으로 낙인찍은 선고와 판결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만 하며 그에 대해 정당한 조치를 하고 역사를 바로 잡아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나의 유죄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는 근거이다. (p.282)

                                
1959 년 생 76 학번인 서명숙은 대한민국의 변방 제주도에서 ' 서명숙상회'의 딸로 태어나, 서울로 유학온다. 제주도에서 공부잘하는 딸, 학교에서 소문난 모범생이고, 교사가 되고자 했던 그녀는 76 학번으로 입학하여, 천영초 , 영초언니를 만나면서, 시대의 삶에 자신을 내던진다.
이 책은 수기다  엄혹한 시절을 산 청춘들의 수기이다
실존 인물인 천영초와 서명숙, 그리고 그때를 산 사람들을 증언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들이 외친, 자유, 민주, 평등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영초언니의 실존 인물인 ' 천영초' 씨의 삶은  꼭 독립투사들의 삶을 생각나게 한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졌지만 정작 자신의 가정은 돌보지 못해 빈한하게 살았던 후손들, 개인의 영달은 사치라고 생각했던 순진한 사람들은 참 불행한 일들의 연속이다 ,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의 귀절이 생각난다.

이 책은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한 여성에게 바치는 사랑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듣고 그녀가 조각난 기억의 파편을 온전히 맞추어내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ㅡ프롤로그 중 ㅡ

"오랫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시작하는 프롤로그는 정말 많은 이들을,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참으로 많이 잊고 살았다.
영화 1987 을 보면서 옛날을 기억하며, 눈물을 훔쳤던 우리는 1987 의 6 월 항쟁이 시작도, 종착역도 아니였음을 잊을 때도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욕망임에도 , 우리는 세상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 편리함에 또 다른 누군가의 억압을 만들지는 않는가. 촛불이후 광장은 증언대가 되었고, 기억의 자리가 되었다.
기억을 재생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정작 우리는 기억을 부둥켜앉고 그 기억속의 수많은 투사들이 '무엇'을 위해 자신을 바쳤는지 , 그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해야할 것 같다. 사람을 기억하면서, 그들이 투신한 본질을 도외시하는 것은 또 다른 역사의 오류를 범할수도 있을 것이다.
영초언니는 민주화 투쟁사에서 남성 활동가들의 증언록만 남은 상황에서 ( 기억되는 이라고 고치자.) 여성의 관점에서 운동권 여성들의 외부적, 내부적 편견에 맞서 싸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천영초씨가 한국에서의 삶이 평안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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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정미경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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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정미경 작가 전작읽기 두번째 책
-이상한, 슬픔, 원더랜드
제목에서 부터 스토리를 상상해 본다

왜 제겐 슬픔과 두려움이 똑같은 정서에 붙여진 다른 이름처럼 생각되는 거예요?
눈부신 것들이 사실은 두려워요. 저만 그런걸까요?
후회하지 않는 삶이 이런게 아니었던가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여기, 지금
그토록 꿈꾸던 원더랜드에 도착했는데 말이에요
정말 이상하지 않아요? (p.p318~319)

36살의 윤자가 26살의 윤자가 된 것은 원더랜드에 도착하기 위한 것일까?
원더랜드 ,놀이공원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입장권이 잇어야 하고, 입장권을 사기 위해 윤희는 고급콜걸로 산다. 자신이 성적 어필을 주무기로 하는 여배우로 인식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것은 원더랜드로 가기 위한 입장권을 어떻게 해서든 지불하고 싶은 주체적인 욕구임과 동시에 상승을 꿈꾸는 장자의 나비 같은 것인지 모른다.
작가는 경제학 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파생상품등, 많은 전문적인 지식으로 중호를 설명한다.또다른 원더랜드의 입장권을 사기 위해 타인을 파는 중호는 타인의 욕망을 진열하여 상품을 판다
중호가 가고자 하는 원더랜드는 윤희의 원더랜드와는 또다른 공간이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소년의 원더랜드, 편안히 쉴곳을 염원하는 나비를 사랑하는 중호의 원더랜드 .
치열한 운동권들의 그림을 그린 민중미술진영에서 대중미술진영으로 온 지원의 원더랜드는 무엇일까? 그녀가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라는 , 어쩌면 일상 실재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석, 동주, 그들의 원더랜드에는 무엇이 있을까
2002년 월드컵에 물들어 있던 우리 모두는 월드컵의 광품에 자신을 잊었었다. 방향을 잊어버린 우리는 휩쓸고 간 바람을 오랫동안 자신의 기억속에 붙잡아 두었지만 그것은 바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바람은 흔적을 남기는 것

중호는 월드컵의 열기에 이렇게 말한다
속없는 놈들 .꿈은 이루어진다고?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줄 모르는 인간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너서클에 들어 올수 없는 것이다. 중호의 눈에 거리의 인파는 내일을 모르는 하루살이처럼 보인다. 얘들 월드컵 끝나면 뭐하고 살라나 (p.13)

신랄한 냉소다. 그것이 끝은 아니지만 우리는 삶의 한고비마다 그것이 끝인것 처럼 산다.

여러분은 가정법 과거완료형의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바래요. 내가 거길 갓었더라면, 열심히 노력했었더라면, 좀더 공부했더라면, 등등 젋은 여러분에게 이런 문장은 어울리지 않겠지요? 다음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봐요(p.19)

가장 가정법 완료형 처럼 사는 남자 동주, 지원을 사랑했지만 그녀 옆의 선배를 보았고 , 자신의 인생을 후회와 그림움, 갈망으로 사는 남자가 동주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 페레가모 구두 대신 발이 편한 스니커즈를 신고 챙일 짧은 사파리 모자를 쓰고 나비를 채집하러 다니는 것이 중호의 꿈이다. 버려지지 않고 책꽂이에 꽂힌 내셔널 지오그래픽에는 나비사진이 꼭 들어 있다. 혼자 있을때면 콜렉션 해놓은 납의 생태 비디오를 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다. 그러나 실제로 나비를 잡으러 나선 적은 한번도 없었다. 늘 꿈꿀 뿐이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자면 언젠가는 나비를 잡으러 떠나겠다는 백일몽이 취미인 셈이다. (P.37)

중호, 그의 삶이 모두 백일몽이 아닐까, 그래서 그 속에소 자신의 존재를 거대 숫자로 증명하고 싶은 남자
그가 가고 싶은 원더랜드가 무엇인가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 무엇을'부터 '어떻게' 까지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 지금, 지원은 두렵다. 무수한 강요에 길들여진 자신의 세계를 어디서부터 허물고 풀어나가야 하나, 막막하고 두려웠다 (P.45)

지원

전시란 결국 내가 보여주려는 것과 보는 사람의 착시 그간격을 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월드컵 특지에 묻혀 전시 기사가 쪼그라들어버렸다면 미스 최는 투덜거렸지만 어차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P.46)
바로 그때 , 그 순간처럼 삶이 신비롭게 피어나는 때가 있을까.다른 생의 길을 질주하던 두 영혼이 맞부딪치며 달려오던 가속도로 뒤섞이고 회오리쳐 끝내 분리될 수 없는 새로운 화합물로 변하는 순간 . 그 부닺함은 다른 모든 존재들을 지워버렸다.
두개의 낯설고 오만한 세계가 섞일 때 저항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신생의 별처럼 탄생했다. 낮과 밤이 삶을 섞는 일몰의 시간 , 혹은 여름과 가을이 서로 섞이는 그 형이상학적인 시간처럼. 연애를 시작하는 두 사람이 상대방이 아니라 그 두세계가 부딪치는 순간의 광휘에 먼저 매혹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P.69)
그날은 언제였을까. 지나간 역사의 어느 순간? 혹은 아직도 오지 않은 어느날? 어제의 어느 한순간이었을 수도. 다가올 어느 하루일 수도 잇겠지만 여전히 오늘은 아니다. 현오는 뛰어내리며 제 목숨과 함께 지원의 속에 잇던 어떤 것도 가져가 버렸다 지원의 가슴속에는 무언가가 빠져나가면서 생긴 검은 흔적이 남았다. 동주의 가슴속에도 똑같은 흔적이 남았을 것이다. (P.73)

책속에서 인용된 구스타프 르봉의 말은 여러 의미를 생각나게 한다.그러나 우리를 감싸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백일몽
삶은 꿈이다. 어쩌면 꿈보다 못한 꿈속에서 사는지 모른다
정미경 작가의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는 각자의 슬픔속에 존재한다
원더랜드의 회전 목마를 돌리는 것은 자신들의 슬픔과 아픔으로 잉태된 눈물의 회전목마임을 독자들은 알지만 정미경이 그려내는 책속의 인물만이 모를 뿐이다. 중호와 윤희만이
인간의 욕망을 냉철하게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백일몽을 꾸는 중호와 자신을 성형한 윤희만이 그들의 원더랜드의 실체를 알뿐이다.
운동원 세대인 ,야학 교사 출신인 한석, 동주 지원이 그들을 가르쳤던 윤희보다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허위에 사로잡힌 것은 어쩌면 월드컵열기와 같은 시대적인 열망이엇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준비되지 않앗으면서도 타인을 가르치려 했고, 그들은 이제 변태를 거듭하여 자신의 과거를 발판 삼아 뛰어 오르는 부나비가 되어 간다.
한석
등장 인물 모두가 결코 실체를 알수 없는 한석과 연결고리를 가진다는 치밀하고 묘한 연관고리는 작가의 담백하면서도 군데더기 없는 문체로 살아난다. 한석이 그들의 원더랜드의 입장권임을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독자는 알게하는 작가의 영리한 짜임이 감탄하게 한다.
놀이공원이나 서커스에는 그들을 호객할 가장 우스꽝스런 삐에로가 존재한다.
정미경 작가의 많은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고 싶은 아쉬움은 그의 책을 읽을때마다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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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정미경작가는 작년 1월18일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창비블로그에 작가의 1주기 유고집이 나온다는 알람을 받기 전에는 한번도 지나치지 않는 작가이다.
나의 책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갑자기 단체톡 방이 들썩들썩 하면서 '정미경 전작읽기" 방이 만들어 졌다.
여러 상도 받으면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작가인데, 그녀는 이제  작품으로 그녀 삶의 치열한 사유를 남기고 있다.

< 나의 피투성이 연인> 은 단편집이다.
나랏빛 사진의 추억
호텔 유로, 1203
나의 피투성이 연인
성스러운 봄
비소 여인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표제작은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지만 나는 맨 마지막 수록작인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가 가장 가슴에 와닿는다. 작가는 인간관계의 허위, 욕망을 담담히 그려 낸다.

" 그런데 영화를 찍어가면서 ,어떤 고통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일상의 잔인한 영속성을 미옥씨에게서 보았어요. 그걸 기록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건 아니에요. 내가 원했던건 ,이처럼 일순에 삶을 뒤엎어 버리는 가짜 같은 드라마가 아니었어요. "
" 산다는 건,싸구려 픽션보다 더한 굴곡을 늘 이면에 감추고 있을 뿐이에요. 승우씨나 나 역시 마찬가지고, 그것까지가 삶이에요 ."
(p.242)
....
몇 번이나 본 필름이었는데 어쩐지 화면들은 처음보는 것 처럼 눈길을 붙들었다. 치자 꽃이 귀에 꽂은 미옥의 얼굴이 클로우즈업 장면에서 나는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 알지 못했던 ,표지석처럼 저토록 뚜렷햿으나 내가 보지 못했던 아픔의 프로필이 거기 있었다. 누군가를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엔 보지 못하는 것이 거기 잇었다. (p.245)
....
"대부분의 우린, 별이 아니라 ,스스로 빛나지 못하는 차갑고 검은 덩어리예요. 존재란 스스로 빛날 수 없는 것,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만월도 되고 때론 그믐도 되고, 그런것 같아요
(p.245)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중 -

이토록 슬픈 사랑가가 있을까?
사랑이란 ,삶이란 무엇인가요? 에 코엘료는 '오자히르' 를 쿤데라는 농담속의 '페이소스'를 말한다면 정미경은 그녀의 소설 자체가 형용 모순의 페이소스를 준다.
어느 블로그에서 정미경의 글은 우울하다는 평은 일견 맞아보인다.
삶의 탈출구는 보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치달아가는 나는 결국 어쭙잡은 사랑을 버리고 나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유로호텔로 향하면서 깨지 않는 신데렐라의 꿈을 꾼다.
가지지 못한 것은 탐하는 것은 죄악이지만,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서 소유하는 것은 정열이라고 우울하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우울함,슬픔을 담은 웃음조차 웃음이라고 호텔 유로의 나는 말한다. 나보다 10여년이나 어린 배우가 입은 옷을 사 보는 것은 욕망과 사치가 아닌 내 존재의 이유인 것이다. 유로 호텔 1203호로 들어서면서 ,

나는 망설이지 않고 초인종을 누른다. 가슴이 두근러겼지만 두려운 건 아니다. 일생 동안 열등감 따위는 느껴본적이 없는 듯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라면,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느끼는, 내가 이 도시에서 열등한 존재라는 느낌을 흔적없이 지워줄 무언가를 갖고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는 내 말에 이제 주먹만을 꼭 쥔채 어두운 골목에 서서 울고 있는 남자, 말을 더듬지 않으면서도 더듬는다는 인상밖에 주지 못하는 남자는 결코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p.70)
-유로호텔 ,1203

현재를 중시하는 나에게 그의 사랑도 그의 울음도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짊어져야 하는 것은 결국 아이와 살아가는 내 현재의 삶이므로,

6.13
나의 어디가 좋아
모르겠어
말해 줘
모든게 좋아. 너의 모든 것
그렇게 많이 (p.92)
...
아아, 인생을 일천 번이라고 살아보고 싶다. 이처럼 아름다운 세상이 아름다우니까(p.94)
-나의 피투성이 연인 중

' 아아 인생을 일천번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는 환희 목소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이 나로 연유함이 아님을 알았을 때 나의 연인은 행복한 과거의 연인이 아닌 죽은 날 나를 떠난 피투성이 연인으로 되뇌이게 될 뿐이다. 낯선 이로 피를 흘리는 그는 더 이상 나의 연인이 아니지만 , 그가 죽은 이순간 그의 모든 것을 그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차지한 나의 승리다.

그가 있었고 내가 있었다. 둘 사이엔 깊은 우물이 있었다. 그가 옆에 있을 땐 우물의 존재를 몰랐다. 너무 가까이 있는 건 보지 못하는게 인간의 시력이니까. 그 심연 속에 많은 것들이 있었다. 사랑도 , 결핍도, 원심력도, 구심력도, 피로한 감정의 순간도, 은닉된 삶의 조각들도. 그 조각들을 다 맞추어도 기어이 떠오르지 않는 지난 생의 밑그림. 둘 사이의 우물은 너무 깊고 어둡고 그리고 차갑다.
인생은 생각이 있는 놈이기라도 한 듯 종종 숨겨진 현실을 일깨워 주곤 한다. 문제는 그 방식이 잔인하다는 것. (p.96)
-나의 피투성이 연인 중

남은 생을 되뇌이며 살것이다. 피투성이로 죽어간 그는 유선에게도 잔인한 피를 남긴다. 피라는 것은 우리가 모르게 수많은 혈흔을 남긴다. 그것이 물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잔인한 기억일 지 모른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때는 확실히 그런 순간이 있어. 사랑이란 어떤 것에 대해서는 너무 예민하게. 어떤 것에 대해서는 너무 둔감하게 만들어버리는 감정의 알러지 상태가 같은 것이니까.(p.109)
...
널 위해서가 아니야. 당신은 내 속에서, 언제까지나 ,마지막 보여주었던 그 모습처럼. 나의 피투성이 연인으로 남아 잇어야 해. 지나고 보니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게 인생이고 어떤 일도 견뎌내는 게 인간이더라. 뭘 못 견디겠어. ...
차갑긴 했지만 마지막 보앗던 당신의 얼굴을 껴안고 말이야. 당신은 언제까지나 나를 물어뜯으며, 나의 연인으로 남아 있어야 해. 피투성이의 연인,잔혹한 연인, 당신이 특별히 가혹한 사람이란 생각은 안해. 모든 연인은 더 사랑하는 자에게는 잔혹한 존재니까 (p.136)
-나의 피투성이 연인 중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잔인하지만 비천하고 미약한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 견디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쉽고 쉬운 명제지만 사랑은 ,삶은 우리에게 한순간 모든 것을 빼앗고 잔인하게 시험에 들게 한다.
<성스러운 봄> 과 <비소 여인>, <나릿빛 사진의 추억>은 훨씬 현실적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기억에 대한 기억들 ,
그것은 오로지 기억하는 자의 몫이다. 기억을 거부하는 자는 기억이 혐오기고 지우고 싶은 그 무엇인가 일 뿐이다.
기억이 맞지 많은 인생의 변곡점은 과거를 파괴한다.
과거를 잊는 것, 기억하는 것은 여러모로 우위를 점하기도 하지만 정미경의 기억은 슬픔이 물처럼 배어나온 하얀 광목천 같다. 사랑이 이뤄지지 않으면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인어공주의 사랑처럼 정미경이 전하는 사랑들은 자신을 태우는 부나비 같다.

같이 여행가서 찍은 필름을 맡길 돈도 없을 만큼 내가 어렵다는 걸 알고 여자는 처음에는 괜찮다고 말했고 좀 지나자 한숨을 쉬기 시작했으며 그 다음엔 이유 없이 울음을 떠뜨리곤 했었다. 여자가 떠나고 나서야 나는 그녀가 우리의 이별을 생각하고 미리 울었다는 걸 알았다. (p.11)
그랬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로 이루어진게 인생이었다. 그 말은 발포정처럼 내 머리 속에서 거품을 내며 천천히 풀어졌다. (p.37)
...
우주의 이면에 닿을 수 없는 것처럼, 가장 가까웠던 타인의 경우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윤미 역시 지금 내가 사진을 돌려주겠다고 불러놓고 그 사진을 다시 찍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p.38)
-나릿빛 사진의 추억 중

독으로 주변사람들도 죽이는 고 스스로 죽어가는 (의문이지만) 것은  결국 윤이의 사랑일까, 명백하게 그것은 죽은 이로 얻어지는 것이 있으니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죽음의 중독일 것이다. 교미 후 수컷을 먹어야 하는 암컷 사마귀는 수컷의 머리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면서 최후의 쾌락을 느낄 것이다.

" 처음 만난 날 당신이 햇던 말이 생각나. 개미는 자신의 생을 사랑할까. 그들에게도 삶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자신의 생을 오래된 우물처럼 덮어버리고 들여다 보지 않는 존재란 개미와도 같아. 우린 닮았어. 그날 처음 만났을때 난 그걸 알았어." 형태없이 흐물거리는 녹조류처험 외면하고 싶은 의문이 여전히 우리 사이에 있었다. (p. 197)
...
그렇지만, 이 여자가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잠들어 있는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누구를 상처 입히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발등에 들고 있는 돌을 떨어뜨리고야 말 것 같은 얼굴. 창백하고 소심해 보이며 누군가의 상처를 제것처럼 아파할 것 같은 얼굴. 이 얼굴로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물어보지 못할 것이며 물어보지도 않을 것이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은 기억의 회로에서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잇는 건 그것까지이다.(p.197)
-비소 여인중

남자를 이해하는 여자는 남자의 폭력과 질투에 스스로를 내맡기고, 시를 사랑하는 나는 시를 버리고 호텔로 향하는게 하는 정미경의 이야기는 인간의 깊은 우울감과 사랑의 이기를 증명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녀는 '막막히 살아가는 ' 삶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주인공들은 다 그렇게 산다. 인생이 뒤틀어지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산다. 그래서 정미경 소설이 우울하다는 데는 우울과는 다른 것이 더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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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2-03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그 단톡방이 그런 활용도가 있었네요!^^ 전 한번 들어갔다가 이게 뭐지..하고..그냥 나왔는데..전작읽기 넘 좋죠.. ^^
이 책도 좋아하는 책이라 들여다보고 갑니다 . 잘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