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반가운 메일 한통이 도착했다. 바로 “회생.파산 및 법률사무직 과정” 수료증이었다. 이제 막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섰음에도 가슴 뿌듯함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나만의 충만함은 아닐 것이다. 물론 아직 재취업의 목표달성은 못했지만 조만간 자리를 잡으리라 희망섞인 전망도 해본다.
수강동료인 젊은친구들과는 달리 나이에서 그리고 비법학도라는 점에서의 핸디캡을 극복하려면 기본기를 더욱더 확실히 갖춰야 하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만약 이 상태에서 법무분야에 나가 고객을 상담한다면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근거없는 자신감하나로 버티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데 염려하던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틀전 오래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간되면 지방에 한번 내려올 수 없겠냐는 주문이었다. 딱히 할일도 없고 해서 내려가보니, 친구 지인이 개입된 의료법인 경영권 분쟁이었다. 양당사자를 만나보니 한치 양보도 없는 말 그대로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병원경영은 엉망이고 쌍방간의 압류와 가압류 그리고 추심명령등 강제집행절차와 본안소송도 제기된 상태였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서로간의 약점이 있어서인지 아직 형사건으로 고소.고발은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사자 모두 한쪽이 포기하고 합의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런데 일방 당사자가 갑자기 질문을 해오기 시작했다. “의료법인 설립과정에서 재산증여가 이루어졌고 이를 다시 제3자에게 매각하는 과정에서 同의료법인의 재산으로 양수금을 지불했다면 불법이 아니겠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원칙적인 설명만 주절거리면서 위기를 모면하고 화제를 돌려 분위기를 전환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질문받은 당사자도 당황하게 되겠지만, 더욱 우려되는 것은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응당 나와야 할 소망스러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엉뚱한 답을 내리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케이스 스터디를 통하여 실무경험부족을 메꿀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오늘 소개할 책은 계약법을 채권법의 한 내용으로 파악하던 종래의 관념을 벗어나서 독자적인 법분야로 체계화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시도해 본 육군 장성출신 이상도 변호사의 “계약법 강의”이다.
법률행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계약에 대하여 실제 판례들을 소개하고, 그 판례속에 녹아있는 핵심개념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실판단->법적인 쟁점발견->비판과 결론도출이라는 플로우를 각인시키는 구성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 구체적인 책의 구성내용을 목차중심으로 정리해보자.
워밍업단계인 프롤로그에서, 초기의 계약은 어떠하였는가를 세익스피어 작품을 통하여 살펴보고 아울러 계약자유의 원칙과 공공복리에 대해서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제1장부터 제5장까지는 계약법 강의의 본 내용이 되는데, 계약이 성립하고, 효력을 발생하고, 목적을 달성하고 종료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제1장 첫번째 사례에서는 당사자의 표시, 당사자의 동일성, 내용증명의 의의, 입증책임을 다뤘고, 두 번째 사례에서는 대리권, 소의 주관적.예비적 병합, 착오, 비채변제를 소개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의사표시의 합치, 채권자 대위권, 조정사항 불이행의 효과, 이사회의 권한, 조광권등이다.
>>제3장 첫번째 사례에서는 법인격부인의 법리, 채권양수, 손해배상청구권의 양수, 과실상계, 가수금등을 다뤘고, 두번째 사례에서는 회사의 대표자와 대표자 개인의 당사자성, 단속규정과 효력규정, 도급과위임, 강제조정, 녹취록 등이다.
>>제4장 계약의 이행편에서는 신의칙, 약관의 설명의무,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 고지수령권자, 해지권의 제한 등을 다루고 있다.
>>제5장 계약의 종료에서는 청산의무, 해제와해지, 조건, 기부채납계약의 성격, 화해권고결정 등을 서술하고 있다.
이상의 핵심개념들을 함축하고 있는 사례들은, 저자가 미국 유학시절 갈고 닦은 합리주의적, 경험주의적 사고체계의 틀안에서 용해되어 엑기스만을 담아놓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넓은 법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풍부한 참고자료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 내용이 신선하고 다채로와서 케이스 스터디의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으리라고 사료된다.
특히 사례들을 통해 소송과정을 속속들이 체험할 수 있는 한편의 대서사시와 같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공격과 방어방법 및 여러가지 논점이 들어있는, 실례를 통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며 함께 해결해보는 맛을 느낄 수가 있다.
결론적으로 이책 “계약법강의”는 재미있다. 진짜 소송당사자가 나오고, 원고 대리인과 피고대리인이 법정에서 날카로운 공방을 주고 받았던 진짜쟁점이 들어있기 때문에 교과서에 있는 모델케이스와 달리 흥미진진한 긴장감이 배어있다.
법률사무직 혹은 법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중 리걸마인드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법적사고력이 향상되는 것을 느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끝맺음을 대신한다.
“현실은 교과서에 나오는 논리정연한 이론처럼 그렇게 원칙대로 전개되지는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의는 힘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지 힘이 없으면 정의도 발붙일 곳이 없다. 정의를 지키고 싶다면, 강자가 되라.“
육군소장 출신 이상도...“新兵은 전략을 논하고, 老兵은 병참을 걱정한다.”
- 나폴레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