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
아쿠쓰 다카시 지음, 김단비 옮김 / 앨리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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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취미인 사람들에게는 눈이 번쩍 뜨이는 제목이다. 도서관이나 북카페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가게라는 것은 한 눈에 알 수 있다. 저자가 책에서 누누이 말한 바와 같이 기존의 장소는 책이 있다는 공통점 말고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태도에 중점을 두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몰입하는 독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한 번 쯤은 생각해봤을 듯한 책 읽는 가게만의 특별함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3부로 구성된 책의 1부는 저자의 책 읽는 장소를 찾기 위한 순례기다. 어떤 도구나 특정한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 책 읽기는 사실 장소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시간과 금전적인 부분이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라서 독서가 취미인 사람들은 여러모로 운이 좋다고 나름 생각한다. 요즘은 전자책으로도 나오니 IT시대에 뒤떨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곳에서 아무렇게나 독서를 할 수는 없다. 크기는 작아도 무한한 세계가 들어있는데 어떻게 가볍게 치부할 수 있겠나. 독서가 숙제가 아니라 유쾌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고의 취미이기 때문에 더욱 기쁘고 즐겁고 알차게 누리고 싶다는 저자의 마음을 십분 공감한다.

, 도서관, 북카페, , , 커피 체인점까지 적합한 곳을 찾기 위한 공들임은 진정한 독서인들을 대변하는 것 같다. 여러 곳에서 책을 읽어보고 파악한 문제점 역시 독서인들만이 이해함직하다. 저마다 목적을 갖고 바쁜 사이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는 이질적인 행위, 차를 시켜놓았지만 오랜 시간을 보내기에 괜한 눈치 보이기, 몰입을 방해하는 주위의 소음과 너무 어둡거나 너무 밝은 조명.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그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 간의 유대, 지속가능한 가게운영을 위한 길고 긴 규칙을 내세운 후즈쿠에라는 책 읽는 가게를 연 저자의 목적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책 읽는 가게는 책을 실컷 읽으려고 벼르고 오신 분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설계, 운영되고 있습니다.’ 안내문에 쓰인 문구가 가게를 연 전부다. 가게의 안내문과 메뉴가 열두 페이지나 되는 것도 오롯이 몰입하는 독서, 존중받는 독서, 나아가 손님과 가게 모두 손해를 보지 않아야 함으로써 오랫동안 책 읽는 가게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저자의 의지인 것이다.

독서가 취미여서 나 역시 기쁘고 즐겁고 자부심마저 느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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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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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 없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비상식적인 언동을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한다. 애초에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를 모르거나 실수라고 가볍게 여길 여지도 있다. 결과적으로 그에 따른 처벌이 법적으로 미비하다 생각되면 사회적 매장 수순으로 넘어간다. 보통사람보다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는 공인에게는 치명적이다.

최근 가장 많이 듣는 법적 용어가 무고죄인 걸 보면 저자의 의도는 매우 현실적이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직설적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며, 설사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한 번 달린 꼬리표 떼기는 결코 용이하지 않다.

문학평론가인 지성은 근래 정치평론을 하면서부터 문화평론가로 불리고 시간강사이지만 교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자신조차 정체성이 모호한 와중에 갑자기 기억의 오류가 난무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정권의 부정부패를 역설하며 친구에게 쓴소리 하다가 배신자로 찍혀 안팎으로 심란한데 술을 마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낯선 여자와 함께 있다. 오랜 동료이자 후배인 시인 민주는 하룻밤 지성과 보낸 후 고백을 하지만 지성이 거절하자 제 삼자를 통한 미투고발을 하고 얼마 뒤 죽음에 이른다. 순식간에 별거상태인 아내의 상습구타범이 되고 함께 일했던 편집자와 작가지망생에게서 미투선언이 연달아 올라오면서 모든 사회적 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지성이 그 모든 일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위사실 유포죄로 가능한 한 많이 고소하십시오.”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하는 지성은 당당함 반, 체념 반의 심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기억이 없고 이제껏 누릴 만큼 누렸다는 자포자기에 그래도 누명은 벗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남는다.

반전의 반전이 있는 결과 역시 진실 반, 거짓 반이다. 허울뿐인 겉모습만으로 어떻게 타인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처음부터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한다면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게끔 말하고 행동했어야 하는 것이다. 지레짐작이 무고를 양산하는 듯하다.

지성도 마찬가지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혼자 있는 것보다는 좋으니 전혀 모르는 여자와 함께 생활하고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민주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자신이 오해할만한 행동을 먼저 해 놓고 유야무야 하니 상대방은 상처받고 혼자 아파한다. 오랫동안.

전문작가인 저자가 자신이 체험한 작가들의 세계를 배경으로 말하고자 한 것이 어떤 이슈 단 한 가지는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당사자가 될 수도 있고 구경꾼이 될 수도 있고 토론자도 될 수 있으니 항상 깨어있는 시각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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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진상 - 인생의 비밀을 시로 묻고 에세이로 답하는 엉뚱한 단어사전
최성일 지음 / 성안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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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단어에 대한 사유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각자가 겪은 경험이 다르니 고유어로써는 같아도 연상되는 내용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세상사가 엇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별 특별할 것도, 아주 아닌 것도 아니라는.

TV프로듀서인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았으므로 이제 단어들에 숨은 진상을 캐내보려고 한다고 말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진상보다는 공감이 더 어울린다. 일종의 연대의식조차 느껴지는 것은 역시 어느 정도 살았다는 전제가 매우 일리 있게 여겨지는 것과 같다.

제목이 빠진 시 한편에서 유추한 단어를 다음 장에서 확장된 에세이로 읽는 형식은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를 선사한다. 틀리면 틀리는 대로 맞히면 맞히는 대로 수긍하게 하는 것도 단어 하나에 여러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또 다른 의미의 진상일 수 있겠다.

어디서나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의 진상, 일상에서 부대끼는 생활의 진상, 희로애락을 말하는 인생의 진상. 저자가 분류한 3가지 단어의 진상에서 정답을 맞힐 확률이 가장 높은 분류는 무엇일까. 시를 먼저 읽으면 사물이고 에세이를 먼저 읽으면 인생이지 않을까.

너는 결코 나를 속일 수 없다며 숫자를 나열하는 저울, 인생은 다 그렇게 쓰다는 커피, 환상적인 효능이 가장 고귀한 거짓말이 된 박카스, 사물은 일관적인 면이 다분하다.

반면에 멍하니 혼자 밤하늘을 바라본다거나, 바람결에 떠나보내는 끈적한 이야기 하나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금방 감을 잡기가 어렵다. “그래도 인생 살 만하셨죠?” 라며 소회를 묻는 대상자가 누구인지 특정하기에 조금은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주안점을 둔 생활은 소주에는 비가 어울리는 듯 하고, 젖은 몸 뒤척이며 울 때는 자신이 빨래 같이 느껴지며, 누구에게나 이번 생은 처음이라 서투를 수 있다는 586세대를 위로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시와 에세이, 더불어 위트가 넘치는 일러스트까지 단어의 진상을 넘어 삶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는 독서였다. 어느 날 문득 글이 쓰고 싶어졌다는 저자의 바람이라고 확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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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 - 던져진 존재들을 위한 위로
민이언 지음, 제소정 그림 / 디페랑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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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미 불운이 차고 넘치는데 굳이 불운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읽어야 할까 처음엔 망설였다. 하지만 제발 오라고 빌어도 오지 않는 행운처럼 불운이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불운조차 콘텐츠다는 말에 혹해서 책을 펴들었다.

행운이 나만 비껴가는 것 같을 때 불운으로라도 뭔가 플러스가 될 요지가 있을까 싶어서.

작가이자 편집자인 저자는 내게만 일어나는 일인 듯한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도 나름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한 짧은 글로 불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말한다.

우산이 있지만 펴지 않고 걸어가는 것과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걸어가는 것의 차이를 해석한 대목이나 헤어져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아도 안 헤어지자니 자신이 죽을 것 같은 담배 같은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어쩔 수 없다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사이에 각자가 느끼는 감정이 있고 해결책이 있다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불운조차 지나고 나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로 변모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아무리 삽질 같아도 그 끝에 어떤 미래가 걸려들지 모르니 모든 순간에 성실할 것을 당부하는 이유다. 어쩌면 행운이 더 많이 작용하는 지도 모르는데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을 더 많이 기억하는 법이라 자신이 불운의 아이콘이라 착각하는 경우의 수가 불운의 패를 더 많이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예기치 않은 순간을 마냥 기분 나쁘게 넘기지 않고 저럴 수도 있구나, 나도 저렇게 해 볼까?’ 라고 한 그 순간이 불운이 행운으로 바뀌는 순간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가 불운이라는 정의를 가지고 책을 쓴 것만으로도 바뀔 여지는 충분하다. 행운은 행운 그 뿐이지만 불운은 골몰하고 상념에 빠지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확실히 콘텐츠가 될 만하다

책 사이사이의 그림들도 전반적으로 어둡고 알 수 없는 형상들이라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는데 제소정 작가의 자신만의 철학이 가미되어 있음을 에필로그에서 잘 알 수 있다.

행운과 불운처럼 상반된 것들의 이중적 속성을 표현하고자 한 그림들이 보기 불편하게도 느껴지지만 작가는 그 또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게 함으로써 직시할 수 있게 하는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책의 제목과 표지그림이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일말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이점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런 점에서 작가들이 의도한 바가 어느 정도는 통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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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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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도 전염병과 같이 보이지는 않지만 빠르게 퍼진다.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불안이 공포의 실체일수도 있겠다. 평소에는 밑바닥에 침잠해 있다가 해일 한 번에 수면으로 올라온다.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작이라는 이 공포소설집은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이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저자가 생각하는 공포는 일상의 균열이다. 저자가 후기에 쓴 가난과 같은 말이다. 하루 한 끼 먹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가난해지는 것이 공포 그 자체인 것이다.

혹은 공공연하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은밀한 욕망이 행동으로 발현되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론이다. 끝이 좋을 수만은 없는. 그것도 아니면 끝이 시작일수도 있다. 아기천사라는 뜻을 가진 어린유령이 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땅에서 파낸 앙헬리타>의 이야기는 끝맺음이 더 공포스럽다. ‘썩어 문드러진 발에 하얀 뼈가 드러나 보이는아이가 쫓아오는 상상만 해도 무섭다. 어쩌면 고모할머니인지도 모를 유해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지 못하는 게 안타깝고 후회스럽지만 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소녀들의 질투와 적의, 호기심이 빚어내는 위험하고 모호한 상황의<호숫가의 성모상>,<죽은자들과 이야기하던 때> 내용은 미성숙한 10대들의 불안정한 심리를 엿보게 해준다. 유령을 불러내는 놀이는 어디서나 통용되는 그 나이대만의 전유물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얼룩 한 점이 전체로 퍼져가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쇼핑카트>의 이야기야말로 공포의 실체를 들여다본 느낌이다. 노숙자에게서 뺏은 카트 하나가 온 동네에 가난과 불행을 몰고 오는 전개는 그야말로 형체도 없는 전염병과 같다. 카트가 실질적으로 뭔가를 한 것도 아니고 단지 동네의 한 구석에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불쌍한 노숙자에게 전부일수도 있는 카트를 뺏었다는 사람들의 양심과 죄책감이 불운의 기운을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공포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밤에 읽을 수 없어 낮에만 읽어야 할 정도의 공포소설집다운 은근히 무서운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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