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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 - 던져진 존재들을 위한 위로
민이언 지음, 제소정 그림 / 디페랑스 / 2021년 10월
평점 :
세상은 이미 불운이 차고 넘치는데 굳이 ‘불운’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읽어야 할까 처음엔 망설였다. 하지만 제발 오라고 빌어도 오지 않는 행운처럼 불운이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불운조차 콘텐츠다’는 말에 혹해서 책을 펴들었다.
행운이 나만 비껴가는 것 같을 때 불운으로라도 뭔가 플러스가 될 요지가 있을까 싶어서.
작가이자 편집자인 저자는 ‘내게만 일어나는 일’ 인 듯한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도 나름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한 짧은 글로 불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말한다.
우산이 있지만 펴지 않고 걸어가는 것과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걸어가는 것의 차이를 해석한 대목이나 헤어져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아도 안 헤어지자니 자신이 죽을 것 같은 담배 같은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어쩔 수 없다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사이에 각자가 느끼는 감정이 있고 해결책이 있다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불운조차 지나고 나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라는 말로 변모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아무리 삽질 같아도 그 끝에 어떤 미래가 걸려들지 모르니 모든 순간에 성실할 것을 당부하는 이유다. 어쩌면 행운이 더 많이 작용하는 지도 모르는데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을 더 많이 기억하는 법이라 자신이 불운의 아이콘이라 착각하는 경우의 수가 불운의 패를 더 많이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예기치 않은 순간을 마냥 기분 나쁘게 넘기지 않고 ‘저럴 수도 있구나, 나도 저렇게 해 볼까?’ 라고 한 그 순간이 불운이 행운으로 바뀌는 순간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가 불운이라는 정의를 가지고 책을 쓴 것만으로도 바뀔 여지는 충분하다. 행운은 행운 그 뿐이지만 불운은 골몰하고 상념에 빠지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확실히 콘텐츠가 될 만하다.
책 사이사이의 그림들도 전반적으로 어둡고 알 수 없는 형상들이라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는데 제소정 작가의 자신만의 철학이 가미되어 있음을 에필로그에서 잘 알 수 있다.
행운과 불운처럼 상반된 것들의 이중적 속성을 표현하고자 한 그림들이 보기 불편하게도 느껴지지만 작가는 그 또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게 함으로써 직시할 수 있게 하는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책의 제목과 표지그림이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일말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이점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런 점에서 작가들이 의도한 바가 어느 정도는 통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