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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쇠를 당겼다. 섬광이 번쩍이며 폭음이 터졌지만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더는 어떤 것도 들을 수 없었다.



노래가 끝났다. 노래는 끝난다. - P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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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의 말이 떠올랐다. 죽음이 끝에 있다고 죽기 위해 사는 건 아니고 모두 헤어진다고 헤어지기 위해 만나는 것도 아니라고 했던.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삶은 죽음으로, 모든 만남은 헤어짐으로 흘러가고 순종했다. 사랑만이 그것에 반항했다. 거스르고 맞서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흘러가고 순종하는 것으로. 기꺼이, 그 한 단어에 의미들이 뒤집혔다. 흘러감은 선택이 되고 순종은 결행이 됐다. 내가 하진에게 시작하자고 했던 것도 하진을 사랑했기 때문이었고 지금 이렇게 그 그을음과 그림자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도 하진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기꺼이 헤어짐을, 죽음을 받아들인다. 음악이 기꺼이 침묵으로 끝나듯. 그리고 그 기꺼운 받아들임으로 사랑은 만남에서 헤어짐을, 삶에서 죽음을 완벽히 지운다. 음악이 시간에서 침묵을 완벽히 지워 버리듯.
침묵이 오는 건 오직 음악이 끝난 뒤다. 그게 끝이라는 의미, 상태다. 골분도 화장장의 연기도 아닌, 연극이 끝난 뒤의 암전.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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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토기에는 그리스 항아리의 서사구조가 없고 그림이 없다. 그 자리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구멍 안쪽은 멀어 보인다. 거기는 대낮도 아니고 밤중도 아닌 어스름이다. 그 시간의 질감은 초저녁이나 새벽과 같아서 밀도가 낮고 헐겁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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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과 취사에 관련된 연장들은 그 연장을 사용하는 인간의 동작을 표현하는 동사를 거느리고 있다. 언어는 행위에 바탕하고, 연장이 언어와 동작을 연결시킨다.
이 동사들은 ‘빨다, 찧다, 파다, 뚫다, 훑다, 썰다, 다지다, 갈다, 짜다, 헐다, 조이다, 고르다, 까불리다, 들이다, 감다, 말다…‘ 들인데, 연장과 더불어 살아 있는 언어다. 민속박물관은 활물로 가득 차 있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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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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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 불완전함과 불확실함, 배제되는 느낌을 견디는 일을 의미한다."
그것은 아름이 품어온 마음 그대로였다. 어른이 되는 시간은 그런 걸로 잔뜩 채워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다리는시간. 견디는 마음. 참는 눈빛. 삼키는 말. 모르는 척하는 시선. 아는 척하지 않고, 상대가 준 것까지만 받고, 상대가 모르게 더 받았어도 고마움을 견디고, 다른 것을 내밀고, 마침내 주고받고, 또다른 우리가 된다. 또다시, 또다시 생각하며, 그렇게 이어져오는 관계의 시간이 있었다. 내 중심이 흔들릴 때,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애정을 바랐다. 내가 나를 지탱하기 버거울 때, 그들의 목소리로,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지아닌지로 내가 선 자리를 확인받고 싶었다. 그리고 문득 사진이 좋아진 순간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사진은 날씨의 영향을참 많이 받았는데 아름은 그 점이 퍽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날씨에 따라 속절없이 컨디션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하니까.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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